학교 수행평가에 대한 아이러니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현실

by 대치동 비둘기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준하여

과목별로 학생들이 도달해야하는

<성취기준>에 맞추어

매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국가에서 정해진 학년별 <성취기준>이

수행평가나 지필고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대치동 가는 길
잘함
보통
노력요함



학교별로 다르지만 대부분 3단계 또는 4단계로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평가한다.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과 경쟁하거나

내가 더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하는 구조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평가를 하지 않아

학부모들은 아이의 정확한 위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불안해하며

전국 단위의 학원 레벨테스트에 의존하고,

아이의 성취도를 평가받기 위해

학원 문을 두드린다.



3단계의 평가가

유명무실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실은 지금의 어른 세대가

어린이 일 때 <수,우,미,양,가>

5단계 평가를 받아왔고,

그 평가는 몹시도 냉정하고 정확해서

간혹 연예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받았던 성적표에 기재된

평가 항목과 선생님이 서술해준

행동특성 발달 상황을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게다가 꽤나 모범생 중에 하나였던

나 조차도 '미'나 '양'으로 기재된 항목이 있었던

기억으로 볼 때,

평가의 정당성과 객관성은 꽤나

정확한 척도로 서술되었던 것 같다.



못하는데 못한다고 평가하면 민원이 들어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교사로서 학생을 평가하는데 있어

'객관적'인 척도로 평가하고 나면,

오히려 민원 전화와

성적 의의 신청을 받게 되었다.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모두를 합산해보아도

성취기준 도달을 하지 못한 아이를

'노력 요함'도 아니고 '보통'을 준 것 뿐인데,

(실상은 노력 요함 수준이지만)

우리 아이가 어디가 모자라서 '잘함'을 받지 못하는지

증거를 내놓으라던지,

시험지를 보여달라던지,

다시 평가를 해달라던지,

다양한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학원에서는 냉정하게
등수를 평가받기 원하고,
학교에서는 잘한 것으로 기재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잘한 것이
진짜 잘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학원을 찾아가 무엇이 부족한지 상담받는다.



평가 시기가 되면

학생들도 나도 곤두서지만,

못하면 못하는대로 그냥 두지 않고

<재시험> 기회를 주면서

심지어 같은 시험지로 여러번 기회를 주면서까지

학생의 성적표에 '잘함'이 나오도록 만들어준다.




그것이 학생을 위한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학부모들의 요구가 그러하고

사회의 요구가 그러하다.




공식적으로 남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우리 아이가 '잘함'이 아니라 '보통' 또는 '노력 요함'으로 기록되는 것 자체는

생각만해도 갑갑하고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쓰이는 곳이 없다고 해도,

요즘은 한 가지나 두 가지에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다방면을 잘하는 육각형 인재를 기대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행평가'를 객관적으로 기재할 수 없다.



재시험 있어요?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수행평가를 한 주 전에 공지하고,

쪽집게 선생님처럼 밑줄을 쫙 그어줘가며,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시험 당일이 되면 공부를 못했다고,

재시험이 있냐고 당돌하게 묻는 학생들이 있다.




생각같아서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 재시험 기회를 안 주는 바람에

'잘함'이 아닌 '보통'이나 '노력 요함'을 받았다고

통지표를 손에 받자마자

성적 의의 신청을 받게 될까봐

선생님들과 협의해보겠다고 말하

속으로는 몇 번이고

도대체 재시험을 봐야하는 수준이면

'잘함'이 맞는가 생각한다.



수행평가를 지필로 보든, 기능적인 측면을 관찰 평가하든

그 어떤 것도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실험하거나 모둠 활동을 했던 중요한 개념이나 원리들을

알고 있는지 평가하게 된다.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 중에서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이지 당연히 100점만 나올 것 같은 수행평가지에

어처구니 없는 답안이 속출하고,

공부할 걸 이라는 이상한 메모나,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단어들, 반대로 쓴 개념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답안을 하나하나 다시 알려주며,

비슷하거나 동일한 시험지로 재시험 기회를 주면서

어떻게 해서든 '잘함'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2~3개 학년을 거뜬히 선행하고,

원어민 뺨 치는 영어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정작 국가 교유과정에서

지금 속한 학년에 준하는 성취기준에 비추어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알게 되더라도

'그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고, 실수한 것이다' 그러니

다시 평가하거나 성적을 수정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행평가지

최근,

어쩌면 조금 불쌍한 사실을 알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해서든 '잘함'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애써주는 것도 초등학교가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옆 학교는

국어 중간고사의 평균점수가 60점대이고,

수행평가가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어려워서,

수행평가를 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평가'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고 최선은 다하지만

의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 했다.



중학교의 실상을 듣고 보니,

아이들이 너무 온실 안에서 나약하게 학교를 다니다가

냉정한 경쟁 교실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짠하기도 하고,

굳이 이렇게 애써줘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다음주에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시절을 마음껏 즐기라'고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나 역시도 요즘 학부모라 그런 면이 있지만,

아이가 잘 못하거나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 것이 부모인 나에게 주는 평가인 것만 같아서,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하는 편이다.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옛말처럼

냉정한 평가가 때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공교육 기관에서는

냉정한 평가를 거절하는 그 마음은 정말이지 아리송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서로의 평화를 위해 더 좋음을 잘 알고 있다.

곧 입력할 학생들 개개인의 성적도

냉정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그리고 객관적이지 않고 흐린 눈을 하며

적장히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아마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수없이 평가될테고, 부족한 것을 그곳에서 정확히 캐치하고 보듬어주는

좋은 학원을 찾아갈테니까 말이다.

keyword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