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
밥 한 끼 하자고 했다.
차 한잔 하는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밥을 먹자는 것은 밥 먹고 차도 마시자는 의미이며 차 한잔 하자는 것은 차만 마시자는 의미인 게 맞을 거다.
밥을 먹이자면 돈이 더 들고 때론 정성과 에너지를 들여 영양을 공급해 주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어서 내가 먹는 자가 될 경우 밥값을 하는 쪽으로 관계가 흐른다.
밥은 몸속으로 스며 온갖 호르몬이 제 일을 하도록 돕기 때문에 음식을 제공한 자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들게 된다. 게다가 맛까지 훌륭하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 반대로 맛이 없다면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물론 맛이 부족하더라도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어서 마음가짐을 정돈해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밥 한 끼 하자고 말하고 싶을 때 생각해 보자.
밥을 얻어먹고 싶은 건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은 건지, 각자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만 함께 하고 싶은 건지.
왜 밥을 함께 먹고 싶은 건지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나눌 땐 그냥 주는 법은 없다.
좋아해서 주는 거다. 난 철저히 계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계산법은 나만의 공식이 있는데 기호화할 수 없어서 학습시킬 수는 없다.
누구나 나름의 공식이 있지 않겠나.
차 한잔도 훌륭하게 마신다면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을 때도 있다.
서로에게 부담은 주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 밥을 살 필요도 에너지를 들일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나쁜 의미인 것 같지만 밥 먹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영혼을 나누자는 뜻일 때도 있다.
'자고 가'라는 것은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밥 먹고 차 마시고 반복해도 좋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고 가라는 말을 잘한다. 그래서 참 많이 먹였었다.
요즘은 웬만해선 요리를 하고 싶지 않다.
힘이 들어서 사 먹자고 하는 게 좋다. 냉장고의 숫자를 줄였고 내부도 가볍게 정리하고 있다.
밥 한 끼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 것보단 맛있는 요리 가게를 발견했을 때 함께 하는 것도 지혜인것 같다.
지난해 송년회 때는 녹두빈대떡을 해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먹였는데 그들의 호르몬이 움직인 것은 잘 모르겠고 내 사랑만 커진 것 같아서 실패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르몬을 움직이지 못해서 인기가 없나 보다.
밥은 맛집에서 사 먹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