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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06. 2024

불안도 익숙해지기 나름이다

2021년 10월 말에 퇴사를 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안의 파도 앞에 꼬꾸라졌던가. 이제야 겨우 그 파도를 타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 건 숱한 시간을 물살에 휩쓸려 이리저리 내동댕이 쳐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서핑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나름 운동 신경도 있겠다 좀만 하다 보면 금방 적응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강습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탈 땐 발이 닿지 않는 정도까지 나갔다. 문제는 파도를 기다리기 위해 보드에 앉아야 하는데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들 편하게 앉길래 쉬운 줄 알았는데 앉기만 하면 혼자 좌로 우로 허우적대다 빠지기를 반복. 이미 힘은 다 빠졌다. 아무래도 아닌 듯싶어 다시 팔을 휘저으며 해변으로 돌아왔다. 


근데, 원래 파도는 경계에서 가장 세다는 것을 잊었다. 파도가 치면서 해변 위의 모래를 쓸고 내려가는 힘이 엄청나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나는 그대로 모래바닥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에 다시 서핑을 할 기회는 없었던 터라 제대로 파도를 타본 적은 없지만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파도를 잘 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친구는 이렇게 답을 했다. "네가 바닷물을 먹은 만큼 잘 타게 될 거야." 


지난 3년간 경험한 불안감은 그날 경계에서 느꼈던  파도와 같았다. 정신 못 차리고 이리저리 뒹굴거렸던 그때처럼 불안감은 나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나의 불안은 대부분 경제적인 불안정에서 시작된다. 카드 결제일, 대출이자 결제일, 세금을 내야 하는 시기 등, 피해 갈 수 없는 지출이 언제나 작동 버튼이다. 작동 버튼이 눌리면 지금까지 이 정도를 감당할 만큼 돈벌이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무능력감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때부터 하염없이 SNS를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무자본 창업' 또는 '디지털 노마드', 아니면 '월 얼마 벌기'와 같은 구체적인 수입을 드러낸 콘텐츠 제목을 보면 혹해서 정신없이 콘텐츠를 읽는다. 마치 그곳에 이 모든 불안을 한 방에 끝내버릴 답이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를 안고서. 


결국 그 끝은 자괴감으로 연결된다. 


이번엔 자괴감이 바통을 이어받아 전력 질주를 시작한다. 갑자기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시간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온갖 것들을 반성한다. 


'저들은 해냈는데 왜 나는 못했을까?' '내가 너무 쓸데없는 것들에 시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정작 돈 버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냥 내가 무능력해서 그런 거야.' 폭죽이 터지듯 부정적 감정은 쉴 새 없이 터진다. 다 터지고 나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불안은 다시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3년간 이런 시간을 수차례 반복했다. 퇴사 후 2년간은 바닥이 어딘지 모를 만큼 꺼지고 또 꺼졌던 것 같다. 3년쯤 되니 이제야 균형 잡기가 가능해졌다. 마치 바닷물을 먹은 만큼 파도를 잘 타게 될 거라는 친구의 말처럼 수차례 얻어맞아 보니 이제야 나의 불안에 대처할 유연함이 생겼다.


지난 시간을 통해 배운 건 불안감이 일어날 때 '불안' 그 자체에 몰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작동 버튼이었는지를 빠르게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 그다음은 버튼을 끄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주변에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좋은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같은 불안의 순간을 겪어본 이들인 만큼 누구보다 나의 현재를 잘 이해해 준다. 


그다음엔 글을 쓴다. 글 속에 감정을 담아 객관화하면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절대로 피해야 하는 건, SNS와 거리 두기다. 절망이 없는 공간에 오래 머물면 나만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것 같은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똑같다는 게 진실이다. 인생은 멀리서 바라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멋져 보이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바로 적용할 대처 방안이고, 다음의 두 가지는 평소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생산자로 살아야 한다. 직장인이든 백수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시간만 반복하면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무엇이 되었든 생산자라는 감정을 일으켜주는 활동을 해보자. 가령 글쓰기라던가 콘텐츠 제작, 그림 그리기 등. 


그리고 가족과 돈독한 시간을 자주 쌓아보자.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족은 최후의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다. 그리고 나를 가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감을 수시로 경험한다. 그러나 전과 다른 건 그 감정 상태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은 누구나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불안은 늘 우리 삶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안을 대하는 나만의 방법을 연마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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