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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07. 2024

새로운 시작이 어려운 건 당연한 것이다

요즘 나는 지난 3년의 시간을 자주 돌아본다.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삶의 교훈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기 위해서다. 나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 잘 알 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존재했던 큰 장벽이 있다. '시작.' 유독 나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이것. 오늘은 이것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보려 한다. 


아무래도 주 활동 반경이 온라인이다 보니 콘텐츠를 통해 주로 보게 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마디로 '나 잘났네'하는 사람과 '답답해 죽겠네'하는 사람. 나는 언제나 후자에 속했다. 감정적 공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답답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빠르게 툭 툭 툭 건드려 보다 한 방 제대로 날리는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툭툭 건드리는 것조차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그땐 내가 정말 모자란 사람 같아 보였다. 이럴 땐 괜스레 어린 시절을 소환시켜 트집 잡기를 시작하곤 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 초중고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고, 성적도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중 상위권은 꾸준히 유지했어. 대학교 나름 괜찮은 학교에 갔고, 석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꾸준히 노력했다고. 학업도 교우관계도 교내 생활도 모두 흠잡을 것 없이 원만하게 잘했는데 왜 유독 새로운 시도 앞에서 겁을 내고 머뭇거리다가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거냔 말이다!?' 


사실 '그게 뭔 상관인데?'라는 속마음이 올라오는걸 여러 차례 눌러 삼켰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해야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게 된 건 새로운 시작이 어려운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내면에는 누구에게나 자기 검열관이 존재한다. 이 검열관은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과거의 나의 모든 행적을 다 꿰뚫고 있다. 마치 치부책이라도 들고 있는 건가 착각하게 될 만큼 내가 부족했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 


평상시엔 잠잠하다가 꼭 뭔가를 시도하려 마음먹고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오를 때 검열관은 시커먼 옷을 입고 마음속에 등장한다. 그러면서 꼭 이런 고정 대사를 날린다. '네가 그걸 하겠다고? 고작 네가?' 그러면서 과거의 기록을 읽기 시작한다. 두루마리는 끝이 없이 풀린다. 점점 나는 풀이 죽게 되고 결국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후-' 불어 꺼뜨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검열관은 나의 과거를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린 쉽게 설득당하는 거고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매번 시작을 못하거나 겨우 하나 둘 해보는 정도에 그치고 말기를 반복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 안에 나를 막아서는 검열관은 오로지 나의 실수들과 연약한 점들에 대한 기록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작은 성취들, 뿌듯했던 기억들, 뭔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했지만 결국 풀어낸 기억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검열관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비판의 화살을 날릴 때 그것을 빨리 알아채고 얼른 성취의 기억들을 소환해 내야 한다. 스스로 '이런 것까지?'라고 생각이 드는 그것까지도 다 끌어 모아야 한다. 원래 부정의 목소리는 소리가 크고 색이 진해서 또렷하다. 그러나 긍정의 목소리는 늘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그래서 쌍끌이 어선이 바닥을 끌고 가듯 다 끌어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점점 검열관의 두루마리 속 기록이 하나 둘 지워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전보다 반 걸음이 쉬워지고 또 반복하다 한 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해볼까?'라는 마음이 '고작 내가?'라는 마음을 앞지르게 된다. 


나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3년의 시간이 지났다. 물론 지금도 검열관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둔 건 아니다.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검열관이 상당한 우세였다면 지금은 팽팽한 접전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작을 못하는 게 내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런 태도는 그냥 버려 버리자. 그동안 시작을 망설였던 진짜 이유는 내 안에 가득한 부정의 셀프 스토리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부정의 셀프 스토리를 대체할 성취 스토리를 찾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기억이든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꺼내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평소에는 부정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관점을 달리해보면 성취의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일단 '해보자'라고 말을 내뱉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긍정의 답을 내뱉은 다음 '어떻게'를 고민하면 뒤이어지는 생각은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한 시간이 이어질 테니.


내일은 또 어떤 시작을 해볼 것인가? 


뭐가 되었든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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