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밀튼버그 (Miltenberg), 독일
피터와 일세와는 5년 전에 일면식이 있을 뿐이었다. 스티븐이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울리(Ully)라는 할아버지를 통해 5년 전에 하루 종일 함께 구 동독을 여행한 적이 있다. 2년 전에 울리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서 스티븐이 다시 연락을 재개하면서 여행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다. 우리가 가서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놀랍게도 자기들이 소유한 스튜디오 아파트가 있으니 와서 묵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루 본 것이 다인 우리를 믿어주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그들이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들을 오늘 다시 만난다. 그 전에 그림 같은 중세마을, 어제 도착한 밀튼버그(Miltenberg)를 잠깐이라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돌 깔린 바닥을 걷는 기분은 참 좋다. 마치 내가 중세 시대로 잠깐 타임 슬립을 한 것 같다. 숱한 말과 사람들이 다니고 밟았을 이 돌길은 아무리 걸어도 발과 다리가 아프지 않다. 좀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늘 든다. 밀튼버그는 중세 마을답게 돌바닥과 중세의 성과 타워가 두드러지고 다운타운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였다.
독일 마을의 특징은 마을마다 중심에 뾰족하게 솟은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주황색 지붕으로 가득한 마을 중심에 교회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독일의 작은 마을의 특징이다. 그런데 독일에는 중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한 마을이 아주 많다. 그래서 처음 독일 지방을 여행하게 되면 선입견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화 속 마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대부분의 중세마을은 사방으로 통하는 마을 입구에 중세에 세워진 타워들이 위용 있게 서 있다. 이 타워를 통과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고 이 타워 안에는 집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았었다고 한다. 마을마다 그 기준이 달랐겠지만 주로 예술가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 밀튼버그는 강을 끼고 오른쪽 산 등성 위쪽까지 생성된 마을이다. 마을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인 타워를 지나면 강 건너 다리를 건널 때 지나야 하는 두 번째 타워가 눈에 두드러진다.
산 등성이에 세워진 고성은 더할 나위 없이 멋스럽고 신비롭다. 성아래로 크고 작은 건물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아, 여기서 살고 싶다!" 이런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특별히 우리는 은퇴하면 독일에서 매년 3개월을 살자고 한 터라 방문하는 마을마다 여기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러던 차에 밀튼버그를 방문해 보니 정말 이런 아기자기한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5시쯤 만나자고 약속한 피터와 일세를 만나러 떠났다. 2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아주 작은 마을, 에닝엔 운터 아캄 (Eningen Unter Achalm). 슈투트가르트에서도 40분 정도를 더 남쪽으로 가야 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도착해서 보니 그들의 집은 신식으로 지어진 주택이었다. 마을 전체가 오래되고 독일 전통적인 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댁은 다른 주택 구조라서 눈에 띄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집은 아주 모던하게 꾸며져 있고 특별히 주방의 기기들이 매우 신문물이라 미국 촌놈들인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구경을 했다.
피터와 일세의 집 건물
속으로 우리가 묵을 곳을 궁금해하고 있는데 마침 피터가 설명을 시작한다. 은퇴하고 집을 팔고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1층에 3집, 2층에 2집, 3층엔 한 집이 살도록 지어진 다세대 주택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살고 있는 집은 커다란 방이 두 개, 거실과 주방이 있는 제법 큰 주거 공간이었다. 다만 방 한 개를 서재로 쓰고 있어서 손님방이 따로 없었다. 대신에 이분들은 같은 1층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를 하나 더 구입해서 손님용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주방까지 구비되어 있는 이 스튜디오 아파트가 안성맞춤으로 좋았다.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모였다 헤어졌다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삶도 있구나 하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남편의 친구인 빌도 은퇴하면서 몬태나에 집을 아주 고급지고 크게 지었다. 그런데 이 부부도 자기 집에는 침실 하나 서재 하나만 만들고 손님이 오면 바로 옆집인 아버지가 사시던 집을 손을 보아 손님용으로 쓴다. 빌 부부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피터와 일세를 보니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이런 삶의 방식도 괜찮겠다 싶다.
그들은 우리를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은 유쾌하고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커플이다. 일세는 늘 웃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피터는 늘 농담을 해서 웃겨준다. 남편이 농담을 하면 일세는 재미있어하면 깔깔 웃어주고 좋아해 준다. 그래서 그런지 40년 넘게 함께 산 이들은 아주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멸시하거나 무시, 비난하는 언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이 사이좋은 부부의 비결을 찾아보려고 다음 며칠 동안 잘 관찰해 보았다. 남편이 참 착하다. 아내는 남편을 존중한다. 남편도 아내를 존중한다. 이 다이어그램이 내가 찾아낸 비결이다. 부부간에 예의를 지키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결혼 철학이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방도 듣기 싫어한다. 나에게 무례하면 화가 나듯이 상대방도 내가 무례하면 화가 난다. 이 간단한 이치가 어떨 때는 실행하기 참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이 이치를 잘 지키는 금슬 좋은 노부부가 자주 보인다. 아직도 서로를 매우 존중하고 아껴주는 모습이 귀감이 되서 자주자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녁을 함께하고 스튜디오 아파트로 돌아오기 전에 내일 아침 식사와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 사람들은 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아요?"
예전에 스티븐이 독일을 여행했을 때 어떤 아저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뭐, 뭐라고요? 아, 흠, 어, 음,....."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끝끝내 말을 잇지를 못했다고 한다.
스티븐말에 의하면 정각에 기차문이 슈우욱~하고 닫히고는 가차 없이 떠난다고 한다.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침 9시 아침 식사. 늦잠은 없다. 여긴 독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