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50%가 조기퇴사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 첫 직장의 입사 동기들도 입사 3년 만에 절반이 그만뒀다.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 일이 너무 많다, 비전이 안 보인다, 선임이랑 대판 싸우고 사무실 엎었다는 등... 다른 회사나 공기업에 붙어서 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너무 힘들다며 계획 없이 무작정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힘들었던 서류전형, 인적성, 면접들을 거치고 합격한 회사라 아까울 만도 한데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게 뭘까?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굉장히 놀란 포인트가 있다. (나름 대기업임에도) 매우 많은 부분이 주먹구구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신입사원이 조직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시스템이 부족했다. 다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내가 있던 회사는 미팅 몇 번 따라다니다 업무에 밀어 넣고 안 맞으면 네가 나가라는 식의 문화였는데, 제조업 기반의 군대문화까지 더해져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보통 신입사원이 조직 내 들어오면 선임 사원을 사수로 붙여주는 멘토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수와 신입 사원의 궁합에 따라 신입들의 적응도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선임 사원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업무를 하며, 신입사원을 케어하게 된다. 그러니 멘토링은 일종의 부가 업무가 되고 대충대충 챙겨주다 보면 멘토링 기간이 끝나고 실무 투입 시간이 된다. 선임은 나때도 그렇게 다 배웠다고 말하고, 신입은 신입대로 가르쳐준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 불안한 상태가 된다.
물론, 회사는 학원이 아닌 돈 버는 곳이므로 신입사원이 알아서 잘 따라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신입사원을 제대로 육성하여 잘 정착시키는 것이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교육시키는 비용과 에너지, 시간을 생각해보자. 또 흔히 관리자들은 조기 퇴사하는 사원을 보고 '이제 조금 쓸만하니까 나가네'라고 아쉬워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제대로 된 육성 시스템이 있었다면 진작에 쓸만하게 되었을 것이고 조기퇴사 비율도 낮았을 것이라고 본다.
뉴스에서는 신입사원들의 주요 퇴사 이유가 '역량 성장 결여'와 '세대 갈등'이라고 한다. 역량 성장 결여라는 말은 조직에 있는 선배들을 살펴보니 내 미래가 안 보인다는 의미이고, 세대 갈등은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성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옛 직장 관리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신입사원 면접 때는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라고 하더니 우리 팀원들은 왜 이리 일을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또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내가 취준생 입장에서 생각했던 '뭐든'의 범주와 실제 회사일이 다른 경우가 많다.
정직원이 되면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고 싶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맡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같은 팀의 선배들이 어떤 커리어적 성취를 이뤘는지, 어떻게 워라밸을 관리하는지 등을 보며 이 고통(?)이 감내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계산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르바이트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자괴감 느끼는 사람도 있고 이건 대학교 교수님을 대려와도 해결 못할 것 같은데 왜 나한테 시키지?라는 생각이 들어 절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또 본인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못한 모습을 조직 내 선배들이 보여주고 있다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입사원들이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업무적으로 성취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적으로 업무의 난이도나 기준이 정리되어서 신입이 해낼 수 있는 업무가 부여되어야 한다. 또 업무가 끝난 뒤 성장을 위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일례로 신입사원이나 인턴이 들어오게 되면 과제나 결과물의 긍정적인 부분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 방식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이 생겨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조직 차원에서 개인의 커리어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 영역을 넓히기 위해 팀 전체가 주기적으로 Role을 전환한다든가, 업무 조정을 해서 다 같이 세미나를 들으러 간다든가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중요한 건 개인의 커리어 성장을 위한 장치들이 신입의 눈에도 보여야 한다. 또 더 좋은 조건으로 잘되어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현재가 불만족스러워도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요즘 신입사원들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인재들이다. 경력 같은 신입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일을 배우는 속도나 성실성은 기본으로 갖추었다. 그런데 어째 인턴이나 신입사원들을 뽑아 놓고 팀 내부에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혹시 조직의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인 건 아닐까?
우선, 요청하는 사람이나 지시하는 사람 머릿속에도 명확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커뮤니케이션 단계가 많은 경우, 신입사원에게 전달된 내용이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명확한 기대사항이 전달되도록 문서화해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 안되면 신입사원이 직접 해당 내용을 메일로 작성해 사수에게 보낸 뒤,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또,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은 '나에게 당연한 게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제 막 들어온 사람에게 본인들의 언어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앞뒤 설명 없이 전달된 내용을 기준으로 신입은 엉뚱한 결과물을 가져오게 되고 이 사태가 신입의 탓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라고 몰아붙이면 신입은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대로 이해가 된 게 맞는지 상호 확인하고 신입이 중간에 물어볼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신입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고 해당 의견을 존중해주려고 해야 한다. 로봇처럼 시키는 일만 하다 보면 주도성이 떨어지고 재미도 없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옛 직장 선배 중 후배 육성에 대한 철학이 뚜렷한 분이 계셨는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후배가 마음대로 해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수를 해보더라도 그러면서 배울 것이고 본인이 선택해서 일을 처리해봐야 성장한다는 지론이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인걸 보면 의미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딱 3년만 버텨보자는 말이다.
보통 경력으로 이직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은 최소 3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 또 만 3년 정도 되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최소한의 전문성은 갖추는 것 같다. 그러므로 만 2년을 채우고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져 여유시간이 생기면, 더 일을 잘하기 위한 개인적인 공부를 시작하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3년을 버텼는대도 나랑 안 맞는다고 느낀다면? 아예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나도 2년 8개월 일한 뒤 완전 다른 직군으로 이직을 했는데,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커리어 전환에 있어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멘탈을 세게 붙잡고 3년만 버텨보면 어떨까?
P.S 기업들이 현재는 일자리 대비 구직자가 많은 상황이라 다시 뽑으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5년, 10년 뒤 뒤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고등학생들은 더더욱 수직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세대가 아닐까?) 도태되지 않는 기업이 되려면 일하고 싶은 직장이 되어야 할 텐데 신입사원 퇴사율이 50%인 지금, 각 인사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