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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뿐사뿐 걷기 Oct 24. 2021

봄 산행

- 마흔 육아일기 04

 친구는 앞산에 벚꽃이 한창이라고 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을 골라 함께 등산을 하기로 했다. 친구는 등산이라고 하기엔 산이 높지도 않고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정도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등산을 한지는, 아니 심장이 빨리 뛸 정도로 운동을 해본 적이 요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꽃구경을 간다는 기대감이 컸지만 과연 내가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도 되었다.


 산길의 초입에 있는 공원에는 큰 벚나무 몇 그루가 꽃을 한가득 머리에 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둘이서 꺄아 거리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산행. 친구의 뒤를 따라 걷는데 시작부터 계단이 꽤 많다. 계단을 오르고 나니 구불구불한 흙길이 이어진다. 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은 작은 풀을 경계로 구분되었다. 길 밖에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들이 돋아나 빼곡했다. 마치 초록 융단의 호위를 받으며 황톳길을 밟고 가는 것 같다. 저건 민들레인가? 저건 쑥인가? 그런데 민들레 잎도 먹을 수 있다며? 우린 우리 마음대로 초록 풀들의 정체를 가늠하며 소녀들처럼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길옆으로 보이는 나무와 풀을 가리키며 어제는 저렇게 꽃이 피지 않았는데, 세상에 하루 만에 이렇게 잎이 쑥 올라오다니. 감탄하며 나에게 설명하느라 바쁘다. 첫 산행인 나는 지금의 상태와 비교할 어제의 기억이 없으므로 고개만 끄덕인다. 길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진다. 주고받던 대화는 어느새 친구가 주로 말을 하고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대신한다. 잠시 스탑. 나는 앞서가는 친구를 불러 세운다. 목 안이 건조하다 못해 찢어지는 것 같다. 슬링백에서 물통을 꺼내 한 모금 마신다. 많이 마셨다간 몸이 더 무거워져 결국 퍼져 버릴까 봐 아껴가며 마신다. 


 내가 물을 마시는 동안 친구는 흘러내린 스포츠웨어 레깅스를 다시 정돈한다. 역시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은 패션부터 달라라고 생각하다가도 사실 운동할 때 입는 레깅스는 나도 갖고 있잖아. 다만 너무 달라붙은 레깅스만 입고 감히 집 밖에 나설 엄두를 못 내는 게 진실이지. 다시 고 고. 친구의 발뒤꿈치를 따라 가파른 계단과 산길을 오르내리며 인내심의 바닥이 보일 때쯤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한다. 이제 거의 다 왔어. 10분 정도만 더 가면 돼. 나는 말없이 물통을 꺼내 또 한 모금 마신다. 


 전원주택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 안. 우린 차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친구와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 발견한 카페인데 내부 인테리어가 미니멀하고 깔끔했다. 차도 케이크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일부러 다시 찾았다. 결국 중간에 주저앉는 일 없어 산행을 마무리했다. 도착하면 다리가 풀려 꼼짝도 못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몸이 가뿐해진 것 같아서 의아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자 친구가 소리쳤다. 야 너 혈색이 달라졌어!! 거울 좀 봐. 친구의 호들갑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내 얼굴을 확인했다. 광대뼈 부분이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에구 촌스러워 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많이 흥분해 있었다. 볼 터치한 거 같잖아. 사진 찍어봐. 이럴 때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와. 친구의 야단법석에 나는 속는 셈 치고 셀카를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건강하고 생기발랄해 보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가 돌아왔다. 역시 마흔이 넘으면 그런 걸 기대하기 무리지. 이젠 틀렸어라며 체념했던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운동의 힘인가.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헉헉대며 산행한 보람이 있었다. 친구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셀카를 한 장 더 찍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확인해보니 2년 만의 셀카였다. 


 기억에 남는 꽃은 산 초입에 봤던 벚꽃과 카페 맞은편에 서 있던 벚꽃이 전부지만 내 얼굴에 봄이 살아난 것 같았다. 마흔세 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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