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by YT

사우디 우리 집 주위로 커다란 나무들이 있다. 해 질 녘 마그렙 기도시간이면 낮 동안 삼삼오오 흩어졌던 새들이 한꺼번에 나무로 몰려든다. 새들이 몰려드는 몇 분의 시간은 온갖 종류의 높고 낮은 새소리로 주변은 소음 홍역을 치른다. 그리고 그 몇 분이 지나면 매우 극적으로 나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 속에 잠긴다. 새들은 해 떨어지기 직전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다음날 해 뜰 때까지 계속 잠을 잔다. 가끔 나무를 타는 고양이의 심심함이 없다면 해가 떨어지고 나서 새소리를 듣는 것은 실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해 질 녘에 벌어지는 소란과 갑작스러운 절벽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오르게 했는데, 왜 새는 밤에 이동하거나, 울지 않을까? 여름철 뻐꾸기는 밥에도 우는데…, 텃새 종류는 뻐꾸기와는 다른 것인가? 왜 그럴까? 새는 밤눈이 어두운가? 그럼 밤에 사냥하는 올빼미는 무엇인가? 새의 시각의 문제인지, 습성 때문인지, 아니면 종마다 다른 것인지 알고 싶은데, 쉬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실에는 별로 벌어지지 않지만, ‘밤새’라는 역설적 표현은 몇 가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밤에 우는 새’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고 있는데, 임 그리워 우는 새, 사연이 많은 새 등으로 해석된다. 밤에 우는 새는 실제로 거의 볼 수 없지만, 밤에 서럽게 운다는 이례적인 표현은 어떤 슬픈 상황과 연결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표현으로 새소리를 SING으로 파악하는 서양과는 달리 울음으로 파악하기에 외로움, 기다림 등의 슬픈 감정과 연결되는 듯하다

또 다른 경우는 최근에 읽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인데, 마르케스는 몸 파는 여자들을 밤새에 비유한다. 이 표현 역시,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혹은 못하는) 실제 새의 습성과는 배치된다. 이 거리의 밤새들은 밤이면 화려하게 몸을 치장하는데, 이것은 남미 특유의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새의 외관 때문에 생긴 은유인 듯하다.

밤새는 우리나라에서는 소리로, 콜롬비아에서는 행위로 은유되는 데, 이것은 밤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 그리고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실제 새의 습성에 반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이런 역설 때문에 밤새의 은유는 더 강렬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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