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서, '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
<Intro>
안녕하세요. 몸이 위축될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요가 낭독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가낭독회 - 사색'을 기획한 옥정은 씨입니다. 오늘의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선생님께서 감옥에서 보낸 20년 동안 집필한 서신을 엮은 책으로 그가 느낀 삶과 사회,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고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관계성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옥을 억압된 공간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과 성장, 그리고 내적 자유를 얻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 성찰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모습은 불안정한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요가 낭독회는 많은 서신의 내용 중 저의 가슴 한편에 깊은 울림을 준 내용으로 준비하였습니다.
< Theme >
[ 창랑의 물가에서- 아버님께
저는 낮으로는 줄곧 공자수들이 출역하고 난 빈 방에 건너와서 종일 붓글씨를 쓰며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방은 저희들이 있는 방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몸에 얼룩진 벽에는 고달픈 보따리들을 올망 졸마 아 매달아 두었고 방 한쪽 구석에는 간밤의 체온이 밴 침구가 반듯이 개여 식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방의 주인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들어올 때까지 이 작은 공간의 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공방(空房)의 정밀(靜謐)은 정토(淨土)의 청정(淸淨) 같은 것
어느 때 창랑의 물처럼 마음이 맑어지면 심혼은 다시 갓끈을 씻으려 할 것인가. 생각은 공방을 다 메울 듯합니다. 옥죄이는 징역살이 속에서 이나마 조용한 시공을 점유한다는 것은 흡사 옥담 위의 풀처럼 '귀한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라는 것이 결코 사람의 처소가 아님을 모르지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의 응원 속 격려와 지탄과 애정과 증오의 와중에서 비로소 바르게 서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천수고 불감불구, 하늘이 비록 높아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막연어는 막현어미, 아무리 육중한 벽으로 위요(圍繞)된 자리라 한 더라도 더 놓은 시점에 오르고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도 일식처럼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일우가 비록 사면의 벽에 의하여 밀폐됨으로써 얻어진 공간이지만, 저는 부단한 성찰과 자기부정의 노력으로 이 닫힌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감으로써 벽을 침묵의 교사로 삼으로 합니다.
필신기독(必愼其獨), 혼자일수록 더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
* 정토: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 위요: 어떤 지역이나 현상을 둘러싼 부처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일
* 일우: 한쪽 구석, 모퉁이
* 필신기독: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은 '참나'를 만나는 시간, 혼자 있을 때 반드시 삼가 지내라, 깊은 산속 닫힌 공간일 망정 부단한 자기 성찰과 열린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함
오늘 요가낭독회의 주제는 '필신기독'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고 나 자신이 단단해지기 위한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를 돌보고 다독이며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어 나의 가치에 대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Breathing and Concentration>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깨우기
편안한 호흡과 함께 물라다라 차크라에 대해 알아봅니다.
- 물라다라 차크라 인지하기
"내 삶은 흔들리지 않고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의 인내심은 무한하다."
"나는 내가 믿는 것을 지킨다."
"나는 대지에 발을 견고하게 딛고 있다."
"나의 길은 스스로 나에게 나타난다."
"나는 정확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비워내고 긍정적인 말을 되뇌도록 합니다.
<Warm up>
- 물라다라 반다
'반다'는 꽉 죄다, 잠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다는 영적 깨달음을 목적으로 특별한 부위에 에너지를 전환하여 흘러가게 합니다.
무릎이 바닥에 닿도록 '싯다사나' 명상자세를 취해 보겠습니다.
'싯다사나'는 해탈의 자세, 성취의 자세, 깨달음의 자세라고 합니다.
한쪽 다리를 구부려 발뒤꿈치가 항문과 생식기 사이에 있는 회음부 가까이 둡니다. 그 위에 반대쪽 발을 올려놓은 채 두 발뒤꿈치가 잘 포개어지도록 합니다. 호흡은 편안하게 의식의 초점을 회음/질 부위에 두고 골반바닥의 근육을 끌어올려 압박하고 다시 이완합니다.
['나'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에 억눌려 무척 작아졌을 때 일어나는 불티같은 순간의 생각이며 물에 이는 거품과 같은 것, 찰나이며 허공인 나를 버림으로써 대신 무한히 큰 나를 얻고, 더 큰 고통을 껴안음으로써 작은 아픔을 벗는 진지와 해탈은 불꽃을 돌에 돌려주고 거품을 물에 돌려주고 빈비사라 완의 마음을 백성들의 불행에 돌려주려는 싯다르타의 뜻과 한 뿌리의 열매입니다.]
- 명상
나의 호흡에 집중하며 생각을 비워 냅니다.
[버림과 키움- 아버님께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광상이 원시로 묻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사물이나 인사를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10년,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
*질곡: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Main>
- Sitting
[움직임 속에서도 고요함을 찾아야 한다.]
* 단다 아사나 : 나의 다리가 바닥에 단단히 밀착이 되고 나의 상체가 꼿꼿한 나무가 되어 바르게 앉아 봅니다.
* 받다코나아사나
* 소머리 자세
* 소고양이 자세
* down dog
- Standing
[나무는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깊은 뿌리가 있기에..]
[나는 나의 내부에 한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 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되고 거두어줄 손길도 창백합니다. 염천과 폭우, 엄동설한을 어떻게 견뎌나갈지 아직은 걱정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무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제 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 ]
* 타다아사나
* 트리코나아사나
* 우띠따트리코나아사나
* 프라사리타 파오타나아사나
* 머리서기 도전
[진정한 싸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된다.]
<Finish>
* 브리지
* 할라아사나
* 사바아사나
[여름 징역살이 낭독- 유튜브 더불어 숲 TV https://youtu.be/Y07 rxYg_cog? si=JNUuPfjWeRQhpvVJ
<Epilogue>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 모서리에 적혀 있는 2000년 10월.
25년이 지난 지금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가 궁금했습니다.
25년 전에는 책의 표지가 예뻐서 손이 갔던 것 같고, 감옥 안에서 지식을 쌓고 깊이 있게 통찰하는 신영복교수님을 마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동경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25년이 지나 다시 펼쳤을 때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한 문장한문장 곱씹고 모르는 한자어는 사전을 찾아보며 읽었습니다.
자기 성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고귀하게 느껴졌고 여전히 가족의 사랑이 깊게 배어 있는 서신들은 여전히 가슴 깊이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고된 일들이 가끔은 나를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무기징역수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신영복선생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글들을 접하니 우리가 느끼는 감옥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출소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감옥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운다면 나의 감옥들이 성장과 삶의 지혜를 주는 선생님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요가를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더없이 따뜻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유연한 사고, 침착한 행동, 단호한 결정
내가 가야 할 방향성을 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며 성숙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10년 후, 20년 후 다시 만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어떻게 와닿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서도와 필재(筆才)-형수님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筆才)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를 벗어나기 어려운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그 위에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이는 흡사 여의봉 취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관념적으로나 상정될 수 있을 뿐, 필재가 있는 사람은 역시 오리새끼 물로 가듯이 손재주에 탐닉하게 마련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서도는 그 성격상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연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글씨의 홀륭함이란 글자의 자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묵속에 갈아 넣은 정성의 양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