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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Nov 24. 2022

망했다는 직감

네가 떠올라

이따금 난 망했다는 것을 직감해

이를테면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떠올릴 때?


첫 번째 소원 

엄마와 부둥켜 끌어안는 것

두 번째 소원 

네 품에 종일토록 안겨 있는 것


하늘에 있는 사람도

하늘 아래 함께 숨 쉬는 사람도


누구도 

맘껏

끌어안을 수도

안길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난 망했다는 것을 직감해


쓸쓸해


텅 빈 시선으로

텅 빈 방을 스윽 훑으면 


저기 침대가 놓인 자리

찬 방바닥에 누워 공간을 재던 네가 떠오르고

쥐색 이불 위를

뒹구르르 구르며 행복해하던 네가 떠올라

맛있는 냄새 못이겨 

부엌 근처를 서성이는 모습도


망했다는 직감 끝에서 네가 떠올라


그러면 

그러면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옅은 숨과 함께 

웃음을 내쉴 수 있어


이렇게 너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완전히 망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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