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10:29 경북 P시 북구 북쪽 6km지역 규모 6.7 지진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P시는 내 고향이었다.
6.7? 아니, 잠시만. 6.7? 그 숫자에 놀라 어느정도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강의실 바닥이 약간 흔들렸다. 긴급재난문자를 보고 깜짝 놀란 몇몇 학생들이 의자를 박차고 강의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순식간에 강의실이 어수선해졌다.
나도 당장 본가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밖으로 나왔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복도에 나와 있는 몇몇 학생들은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했다. 나도 계속 엄마 폰, 아빠 폰, 집 전화에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강의실에 앉아 있어도 전혀 집중하지 못할 게 뻔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엄마 개안나? 아 왜 전화가 안 되노.”
옆에 있던 남학생이 통화 연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복도에서 통화를 하는 학생들이 일제히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어 심각한 와중에 조금 웃겼다. 나는 계속 신호자체가 가지 않았지만, 걸고 또 걸면서 끈질기게 시도했다.
"여보세요."
"어, 엄마! 괜찮아?"
엄마의 목소리는 놀라우리만큼 차분하고 태연해서 받자마자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런데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응, 괜찮아. 우리집은."
정말 괜찮아 보이는 목소리라 나는 안도했다.
"다친 데 없고?"
"응, 전혀. 아빠랑 엄마 둘 다 멀쩡해."
나는 안심하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여전히 다소 어수선했다. 그때 또 한 번 삐, 삐, 삐 하고 긴급재난문자 알림이 울렸다. 여진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기상청]10:56 경북 P시 북구 북서쪽 5km지역 규모 4.6 지진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아, 나참 무슨 여진 가지고 경보를 울리고 그러나. 수업 방해되게.”
교수의 짜증 섞인 푸념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교수님, 여진이 더 무서운 거 모르세요? 아, 문과대 교수님이라 모르시려나. 무려 4.3의 강도라구요. 매 수업 시간 자랑하는 약대 다니는 당신의 딸(수업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매시간 언급된다)이 있는 곳에서 난 지진이라도 그렇게 반응할 수 있으세요? 아, 겪어보지 않은 미래라 모르시려나.
인간이 갖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란 종국적으로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며 어쩌구 저쩌구……아아, 교수의 설교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수업에 ‘방해’가 되었다면 당신부터 애초에 휴대전화 같은 건 수업 시간에 좀 꺼놓지 그러셨어요.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 폰 없으면 살지를 못하나 봐. 다들 디지털 치매야 어쩌구 저쩌구 하시기 전에. 아, 급한 연락이 언제든 올 수 있는 ‘바쁜 몸’이라 모르시려나. 나는 속으로 한껏 교수를 비아냥 댔다. 얼른 수업이 끝나고 집에 제대로 연락을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까처럼 부모님은 차분하고 아무 일 없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찾아본 뉴스 기사 사진에서 본 참담한 모습들을 확인해서 인지 가슴이 뛰고 두려웠다. 무너진 아파트,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 말만으로도 무서웠다. 단독주택인 우리집은 사정이 어떨지 조바심이 났다.
아빠는 애초에 꼼꼼히 내진설계를 해둔 덕분에 집이 멀쩡하다고 했다. 담에 금이 가고, 발코니 타일이 좀 깨진 것, 2층 거실 바닥이 조금 울퉁불퉁해진 게 전부라고. 떨어진 물건 하나 없고, 열린 서랍 하나 없이 아주 멀쩡하다고. 옆집은 산산조각이 났고, 앞집은 찬장이 박살이 났는데 우리집만 너무 멀쩡해서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과연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안전성을 제일 중시하는 보수적인 우리 아빠다웠다. 아빠는 마치 지진이 나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집을 지을 때부터 많은 비용을 들여 내진설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아빠가 보낸 사진을 보니 우리 집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든 집들이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주변에 무너진 아파트도 많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체육관을 임시대피소로 지정해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고 했다.
이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부모님은 계속 집에 머물러도 되는지 걱정이 됐는데, 부모님은 집이 제일 안전한 것 같다고 농담 반 진담반으로 말했고 그 말에 납득이 됐다. 서울에서도 여진 조심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고 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P시에서 한반도 육지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 발생.'
그날 밤 뉴스 헤드라인은 단연 P시 지진이 장식했다. 뉴스에서는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며 떠들어댔다.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을 주로 다뤘다. 긴급재난문자가 신속히 전달돼 수도권에서는 미세한 여진이 느껴져도 당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쓸데없이 길게 보도됐다. 하지만 사망자, 부상자, 이재민과 관련된 내용은 자세히 다루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화면이 붕괴된 건물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서 계속 전환됐다.
뉴스에서는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하고 곧이어 규모 4.6의 여진이 발생했다는 앵커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앵커는 부산, 울산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 등의 수도권에서도 지진을 감지했다고 덧붙였다. 내가 아침에 느낀 게 지진이었나. 역시, 내가 그냥 어지러워서 그랬던 게 아니었어. 어쩌면 지진이 나 엘리베이터에 갇힌 꿈도 진짜 침대가 흔들렸을 때 꾼 걸지도 몰랐다.
뉴스에서 행정안전부는 P시 지진과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가동했다고 했다. P시에서는 지진상황실을 운영 중이며 지진 여파로 경부고속철도(KTX)와 경부선 일부구간 등 P시 인근지역을 운행하는 열차는 서행 중이라는 내용도 나왔다.
"행안부는 관계부처, 지자체와 긴밀하게 협조해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면서 피해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입니다"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라. 믿어도 될까…….
하루종일 신경을 쓰고 긴장한 탓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불을 환하게 켜고 뉴스를 틀어 놓은 채로 깜빡 잠이 들었다.
와장창창! 쨍그랑! 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잠에서 깼다.
실내가 지나치게 향기로웠다. 눈을 떠보니 찬장에 올려 둔 캔들이 죄다 쏟아지면서 깨져 박살이 나 있었다. 그 사이 꽤 규모가 큰 여진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지진이 계속되고 있구나. 서울에서 이렇게 강하게 느껴질 정도면 진원지가 P시가 아닌 걸까. 나는 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탓인지 자꾸 쓸데없이 향기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진은 시끄럽고 향기롭다.
이 여진의 규모는 어떻게 될까. 물건이 떨어질 정도면 규모가 5쯤은 된다는 건데. 나는 책상 밑에라도 들어가 있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깨진 캔들을 별 생각없이 맨손으로 치웠다. 그러다 유리 조각에 손이 베이고 말았다. 빨간 피가 솟아 오르자 갑자기 또 눈물이 났다. 오른손에만 두 개의 상처가 있었다.
심신이 너무 지쳐있는 걸까. 지쳐있는데 눈물은 또 왜 난담. 진짜 지치면 울 에너지도 없는데 말이야.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나는 미련하게도 여전히 맨손으로 훌쩍거리며 남은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내 인생은 지금 몇 점 몇의 강도로 흔들리고 있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