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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dough bread is only bread

2025/02/04

by Stellar Feb 05. 2025

'Sourdough bread is only bread'


뉴질랜드에 있을 때 더니든의 'Yours'의 빵코너에 붙어있던 문구다. 그때야 그냥 본인 가게의 빵에 대한 자부심이구나 하고 귀여운 유머로 받아들였는데 사워도우의 세계에 입문하고 보니 이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스턴트 이스트가 없었을 땐 다들 이렇게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구웠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 반죽을 치대고 발효를 기다리고 숙성을 하며 빵을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배워갔겠지.


르방을 키워놓고 나니 매일 디스카드(덜어서 버려야 하는 르방)가 생기게 되어서 이제 충분히 튼튼한 르방이 되었다고 판단해 어젯밤에 처음으로 호떡을 만들었다. 빵에 비해 덜 예민한 반죽이라 시작했지만 반죽이 완성되는데 다섯 시간은 걸렸다. 그래도 결과물이 아주 만족스러워서 오늘은 아침에 빵 반죽을 시작해 보았다. 잘 부풀어 오른 르방과 밀가루, 소금과 물을 섞어 반죽을 해놓고 중간중간 폴딩을 해준 뒤 발효가 되기를 기다렸다. 실온에 두었더니 발효가 너무 더뎌 오후에 살짝 보일러를 틀었더니 반죽이 잘 부풀어 오후 여섯 시 반에 저온 숙성을 위해 냉장고로 옮겼다. 이렇게 하룻밤을 숙성시키고 나면 내일 아침에 빵을 구울 수 있다. 시간이 정말 많거나 빵에 진심인 사람이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 사워도우 빵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은 분명히 단점이지만 반죽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시간을 들여 적당한 상태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즐거웠고 어떤 면에서는 숭고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다. 주식인 빵을 굽기 위해 매일 다른 일과 사이사이에 반죽을 살피고 적당한 온도의 장소를 찾아 옮겼을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밀가루와 물을 섞었을 뿐인데 공기 속에 떠다니던 미생물들이 포집돼 자라기 시작한다니. 미생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자라는 것을 실시간으로 모니터 하다 보니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내 몸속에 온통 살고 있는 이 녀석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긴 시간을 들인 만큼 내일 아침에 괜찮은 빵 하나가 구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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