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다시 시작된 이야기
둘째 아이까지 학교에 가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물 한잔을 마셨다. 아이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치우려고 다용도실문을 열어보니 여태 버리지 못하고 쌓여있는 분리수거함 속 쓰레기와 빨래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치우고 정리하지 란 생각에 미치자 일단 오늘은 아니야 하고 미뤄두기로 했다.
병을 진단받은 지 1년, 대학병원 진료 날이었다. 초진을 보았던 의사가 정년을 맞아 떠나고 새로운 의사를 만나는 날이었다. 지난번 진료 때 간호사는 후임 의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환우회 카페에서 자주 거론되던, 평판이 좋은 다른 의사를 선택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한 댓글에 ‘좋아요’가 많았고, 그 아래 “저도 그분께 진료받아요”라는 댓글이 몇몇 달려 있었다. 이전 의사가 퇴임하여 자연스레 바꿀 수 있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모니터에는 내 뼈 사진이 떠 있었다. 옆에는 내 이름. 분명 내 것이지만 어딘가 낯설었다. 의사는 약간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직성 척추염 진단받으셨네요. 허리 많이 불편하시죠?”
이전 의사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최근 증상만 간단히 묻고는 늘 먹던 약을 그대로 처방했다. 나의 짧은 증상에 대한 말을 듣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등을 토닥이던 사람이었다. 환자들 사이에선 ‘편한 삼촌 같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딱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병의 완치보다 안정이 먼저인 이 병의 특성상 그 평가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새로운 의사는 조금 달랐다. 그는 나를 처음부터 다시 살피려는 듯 보였다. 내 뼈 사진을 천천히,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진료 대기 시간이 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년 전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 병은 완치가 어렵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며, 피검사와 염증 수치를 정기적으로 봐야 하고,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쏟아지던 설명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낯선 병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죽는 병은 아니래. 다만 계속 아픈 병 이래.’
그렇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던 초진 때의 일.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요즘 증상은 어떠하냐 는 새로운 의사의 물음에 나는 지금 좀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아진 건 없었다.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설명되지 않는 고통은 여전히 있다 하고 다시 말을 정정했다. 어설픈 말들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내 상태를 설명할 땐 말이 흐트러진다.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CT를 다시 찍자고 했다. 조영제를 쓰지 않는 방식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차근차근 덧붙였다.
“무릎도 안 좋으실 거예요. 족저근막염 증상은 없으셨어요? 염증이 잘 생기거든요. 아, 척추측만도 심하시네요. 오래 앉아 있지 마시고, 누워 계세요. 체중이 덜 실리면 통증이 좀 나을 거예요.”
통증은 그가 말한 대로, 휘어진 척추에서 시작해 무릎과 발바닥까지 나를 지치게 했다.
예전의 나는 이 병을 ‘고치고’ 싶어 했다. 완치라는 말에 집착했고, 작디작은 희망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고통은 불편한 동거인처럼 자리를 잡았다.
약국은 병원보다 붐볐다. 휠체어를 탄 노인, 낡은 점퍼를 입은 중년, 피곤한 눈의 학생들. 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아마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이 익숙한 풍경 안에서 나는 이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약국 직원이 두툼한 약 봉투를 종이 가방에 담아 내밀었다.
“약 바뀌셨네요. 의사 선생님 바뀌셨어요? 약효는 같아요. 항염제, 근이완제, 위장약. 잘 챙겨 드세요.”
병원을 나서자, 보이지 않던 푸른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에 들어설 때는 없던 풍경이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바람에 초록이파리들이 가볍게 춤을 추듯 몸을 흔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이 대학 시절을 지나 결혼 전까지 한동안 사라진 적이 있었다. 관해 상태. 완치는 없지만 병의 진행이 멈춘 상태.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단을 받았지만 통증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 나도 그때 관해 상태였던 걸까.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이 고통도 멈출 수 있을까.
하지만 거리에 늘어선 무성한 잎의 가로수를 보며 문득 어떻다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자꾸 누우려는 건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기력한 내 마음이 몸을 아프게 느끼고 계속 누워있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사의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 만으로도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야. 아픈 거야.
쉬면서 회복하려고 그런 거야 하고 다독였다.
모처럼 마음 편히 누워 손가락으로 유튜브 쇼츠를 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 시간이 흐르자 눈은 화면을 쫓고 있었지만 마음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분명 무기력한 나에 대한 면죄를 받지 않았나. 충분하지 않아?
아무도 없는 방 정적 속에서 스르르 스며드는 서늘한 외로움은 여전히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현관 비밀번호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
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데려왔을 까.
“엄마, 오늘 학교에서 내가 만든 거야! 이거 봐, 진짜 멋지지?”
나는 웃었다. 아니, 애써 웃었다. 아이는 내가 짓는 웃음이 진짜인지 살피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일부러 힘껏 칭찬했다.
“어머, 너무 잘 만들었네. 어떻게 이 생각을 했어? 정말 멋지다.”
아이는 조그마한 뽑기 기계를 들고 있었다. 직접 설계하고,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건넨 선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작은 상자에 색연필을 쥐고 알록달록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채워 넣은 아이의 손을 보았다.
"엄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그 순간, 나는 다시 엄마로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꼭 안았다.
살았다. 정말로.
깊은 수면 아래 잠겨있던 나를 끌어올린 건, 그 무엇도 아닌 아이의 작은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