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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이야기하다

식물은 내 마음보다 먼저 회복되었다

by 연하나


물먹은 솜처럼 몸이 축축하고 무거운 날이었다.

전날, 통증에 뒤척이다 잠들지 못하고 처방된 추가 진통제 한 알을 삼켰다. 그렇게 뜬 눈으로 몇 시간을 보내었던 걸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얕은 잠을 끊어 내야 했다.


전날 남겨두었던 식빵 몇 조각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핑계인지 모르겠으나, 국이고, 반찬이고 다시 할 기력이 없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늦게 일어난 탓에 식탁에 올려진 것들을 먹을 새가 없다고 했다.

나는 부랴부랴 오트밀 가루를 탄 잔을 건네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고 물통을 챙겨 나갔다.

엄마가 늦잠을 자면 아이들도 덩달아 늦장을 부리게 된다.
헝클어진 아침 시간은 모두 내 탓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가방을 제대로 챙겨 갔을까, 머리는 단정했을까.

아이들이 등교하고, 덩그러니 그대로 남아있는 초라한 상차림보며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제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내가 앉은, 그 자리 그대로 푹 꺼진 듯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충분히 컸고, 어쩌면 내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아니야, 아이들은 여전히 너의 도움이 필요해. 엄마가 잘 보살펴주는 애들과 아닌 애들은 표가 난다고 하잖아.'


이런 말에 옮고 그름이 없다는 것, 그저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을 자꾸만 채찍질했다.


더 잘해 낼 수 있었잖아 하고.


지금, 여기 나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디뎠다.
거실 창 밖 작은 초등학교를 바라보았다.

푸른 산에 둘러싸인 운동장을 봤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어두운 마음을 가까이했다. 몸이 아프고 나선 그늘은 더 짙게 자주 드리워졌다.


누군가 말했다.


"커다란 행복을 가끔 느끼는 것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접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아요. "


나는 거실 창 옆 식물들을 보았다. 스파트필름, 얼마 전 하얀 꽃을 피운, 식물은 풍성한 입사귀를 자랑하며 우아하게 앉아 있다. 그리고 칼라데아가 있다. 거실 책장 한편에 놓았다. 핑크빛 잎사귀에 반해 데려왔다. 높이 뻗어 자라는 잎사귀는 고상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풍겼다.


식물들은 어느새 노랗게 마른 잎, 축 쳐진 잎사귀가 생겼다. 떨어진 이파리도 눈에 띄었다. 한동안 내 손이 닿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무 종이 넘는 식물들을 키웠었지만, 내가 아픈 동안 몇몇은 죽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또 몇이 사라졌다.

지금은 열다섯 종 남짓한 식물들이 남아있다.


식물 키우기.

누군가는 소확행 같은 거냐 하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희망의 징표다.


귀찮은 건 질색인 내가 이렇게 식물을 돌보게 된 데엔 소확행이란 이유 말고, 남다른 사연이 있다.


10여 년 만에 새집으로 이사했을 무렵, 그러니까 2년 전
엄마는 집들이 선물이라며 인도 고무나무 하나를 들여왔다.


"집에 생명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렇게 낯선 초록색 생명이 우리 집 거실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짐처럼 느껴져, 내내 방치해 두었다.


그 무렵 나는 이유 모를 통증으로 거의 보름은 누워 지냈고, 짧게 입원도 했다.
퇴원한 후 나의 간호를 위해 오랜만에 집을 찾은 엄마는 고무나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랐는데, 아무도 물 한 번 안 줬구나.”


엄마는 식물도 엄연한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된다며 애정을 갖고 잘 돌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마치 내 몸처럼, 한번 망가져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거 아닌 가 하고 생각했었다.
포기하면 덜 상처받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엄마는 나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죽어버린 잎을 뽑고 말라버린 흙에 물을 흠뻑 주었다. 언제 사 오셨는지 식물에 영양제도 꽂아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 까.
거실에 햇볕을 쐬러 나오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겨우 침대 밖을 나왔을 때 엄마가 여기 보라며 고무나무의 연둣빛 새싹을 가리켰다.
믿기 어려웠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니, 정말 새 잎이 돋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슴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다 죽은 줄 알고, 버리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였구나.


어쩌면 내 몸도… 내 삶도…
조금만 더 어루만지고 돌보면 달라질까.


지금 그 인도 고무나무는 우리 집 거실에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의 건강도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식물을 보면 집에 들이고 싶어졌다.

어떤 화려한 꽃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록의 생명에 물을 주며, 오래 돌보지 못했던 나를 정성스레 다듬기로 했다.


때론 가만히 식물을 바라보며 건강한 푸른 잎사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힘없이 늘어진 잎, 말라 버린 잎을 뽑아내며, 아픔과 상실을 조금 더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곁에 두고 자주 보다 보면, 죽어버린 잎조차 덜 외롭고, 덜 슬프게 다가왔다.


식물은 단지 초록의 생명을 빛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곁에서 나는 삶을 관찰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푹 꺼진 지면에서 다시 나와 굶주리고 있던 식물들에게 물을 줬다.

물먹은 식물은 한껏 푸르름을 뽐내며 더욱 선명해진 초록의 빛을 발한다.

나는 알아채기로 한다. 어둡고 깊은 마음은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그저 마음을 다 잡고 물을 주는 간단한 행위로도 가벼이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임을 알기로 한다.


나는 곧 슬픔이 아니고, 슬픔을 느꼈을 뿐이라는 걸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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