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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 하루로 채워줘

고요한 일상의 소중함

by 연하나

두 달 전, 나에 대해 써보자고 결심했다.

썼다기보단, 붙잡고 놓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열여섯 편의 글이 나왔다.

매번 마음을 꺼내야 했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만져야 했다.

쓰는 동안 자신과 투명하게 마주한 시간이었다.


글을 쓰며 깨달았다. ‘언젠가 작가가 되어 사람을 울고 웃게 하리라’ 다짐했던 건, 꽤 오래 전의 꿈이었다는 걸.


쓰는 동안, 몸과 마음의 통각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식의 삶에서 부모가 되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은 내게는 옛 역사 속 사라진 어느 나라의 흥망성쇠보다도 더 거대한 일이 있었음을.


세월의 풍화를 겪고 나면 휘발될 기억들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더욱 선명하게 맺혀놓았다.


조건 없이 사랑을 받기도 했을까. 이유 없이 미움을 받기도 했을까. 때때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로 정의되고 있지 않았을까.

글 끝에서 만나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없었고, 어린아이 같은 바람만 가득하진 않았나.

오늘 아침은 조금 특별했다. 요즘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컨디션으로 휘청이는 나에게 소중한 시작이었다.


푹 잘 수 있었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 보냈다. 여유로운 리듬에 몸을 내 맡긴 듯 일이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전날 밤에 다짐했던 대로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운동하러 나갈 수 있었다.


트레드밀 위에서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불현듯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차올랐다.


그럼 오늘만큼은 누군가를 불러 함께 밥을 먹으며 일상을 나눌 수 있다면 좀 더 충만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일순 엉덩이뼈가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헬스장 공기가 갑자기 탁하게 느껴졌고, 나는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보폭을 넓혀보기도 했지만 통증이 나를 다시 세웠다.

완벽한 하루란 말은 어디에서 불쑥 튀어나왔을 까. 이제는 내게 허락되지 않을 단어.


나는 쿨다운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속도를 늦추고, 경사를 낮추는 동안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고, 달려가려는 마음은 제동을 걸면서. 하지만, 이런 생활이 나쁜 걸까.

풀다운 머신에 앉아 팔을 당기며 숫자를 셌다.
하나, 이 정도면 괜찮아.
둘, 별거 아니잖아.
셋, 잘못된 건 아니야.
넷, 어제보다 나아.
귓가엔 음악이 흘렀지만 소란스러운 말들이 비집고 나왔다. 다섯… 여섯… 이내 사그라드는 생각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냉장고에서 어젯밤 해놓은 반찬을 꺼내 혼자 점심을 먹었다.

아프고 나서 어느새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 둘 물러나자 정막함과 외로움이 함께 몰려왔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다.

안전과 평온이 깃든 나의 공간이 단단해지고 있다.

잠들기 전, 짧게 글을 쓰며 오늘을 되짚을 것이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쫒으며 치열하지도, 색다른 자극을 찾지도 않는 요즘의 내가 마음에 든다고 적을 것이다.

오늘 하루를 별일 없이 지내는 것, 그거면 내겐 완벽한 하루라고 남길 것이다.

무너지지 않은 하루가, 다시 돌아오면 충분하다.

그런 날들로 채워갈 수 있다면,

나는 오늘, 내일의 나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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