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루관 교체 시술
지난 10월 14일, 아들 위루관 교체 시술(배에 구멍을 뚫어 위로 영양을 바로 공급하는 수술)을 했다. 이 일은 우리에게 큰 산을 넘는 것과 같아서 몇 달 전부터 긴장하게 된다.
2012년 자전거 사고로 아들은 중증 환자가 되고 말았다. 3년 동안은 콧줄로 경장 영양식을 투여했다. 그러다가 의료진의 권유로 콧줄 대신 뱃줄(위루관)을 시술했다. 뱃줄을 시술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그 뱃줄은 6개월에 한 번 정도 대학병원에 가서 교체해야 한다(관련 기사 : 아들 밥 구하러 약국 8군데 찾아가는 부모 마음, 찢어집니다).
초기에는 인지 없는 환자이니 고통을 모를 것으로 생각하여 수면 마취를 하지 않고 위루술을 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몸부림치며 입을 앙 다물어서 시술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때로는 수술실 안으로 보호자를 호출해 도와 달라고 하기도 했다. 환자의 입에 마우스피스를 장착한 후 식도를 통해 위루관을 교체한다. 그 방법으로 하는 시술은 환자도 힘들고 의료진도 힘들다. 한 번은 시술하다가 아들의 턱이 빠졌다. 그래서 턱이 덜렁거렸다. 이 때문에 다시 응급으로 병원에 가서 턱을 고정시키고 한동안 턱관절 밴드를 착용했다.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빠졌던 턱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 일 이후부터는 '수면 마취를 한 후'에 위루술을 하고 있다. 시술 날 아침은 금식이다. 그래서 이날 아침 경장식을 온장고에 넣어 두지 않았다.
물 한 모금에도 왈칵, 걱정이 태산이었다
담당 의사는 시술이 끝나면 당일 점심부터 경장영양식을 투여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퇴원 후 저녁에 물을 반 컵만 넣어도 곧바로 토했다. 시술 후에 구급차로 싣고 오는 동안 멀미를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침상에 눕히지 않고 휠체어에 앉혀 오기도 해 봤다. 그렇게 하려면 별도로 휠체어를 실은 차도 따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토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술을 하고 돌아온 날은 초 비상사태가 된다. 물 한 모금만 투여해도 왈칵 토하니, 환자복은 물론 침대 커버나 시트까지 다 젖는다. 아들도 오물로 범벅이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들의 몸을 닦고 침상을 정리한다. 오물 묻은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세탁한다. 침대에서 토한 오물 뒤처리를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다시 세팅해 놓으면 또다시 분수처럼 토한다. 세 차례나 반복해 침대를 수습한 적이 있다. 그 과정도 힘들지만 토한 오물이 기도로 넘어갈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시술 당일 저녁에 차라리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맘이 아파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들의 저녁도 온장고에 넣어 두지 않았다. 텅 빈 온장고 안을 들여다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겨우 허여멀건 경장영양식으로 연명하는데, 시술 후 통증이 극심한 밤에 배고픔까지 견뎌야 하는 아들이 너무 안쓰럽다.
지난해는 시술한 날 밤 열이 38도까지 올라가더니 아들이 덜덜 떨었다. 물도 못 먹이는 상황이니 해열제는 더더욱 줄 수 없었다. 응급실로 가려고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챙겨 입혔다. 얼음찜질을 해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올해 시술 예약을 할 때 담당 의사에게 부탁했다. 시술한 날에 차라리 아들을 입원시키고 싶다고. 그런데 그런 사유로 입원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대신에 올해 시술 때, 에어(공기)를 좀 빼겠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른 해보다 좀 나을 것 같았다.
위루관은 버튼형, 풍선형이 있다. 아들은 풍선형이 적합하지 않다. 강직이 심한 편이라 힘을 쓰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 일을 반복할 수 없다. 중증 환자가 한 번 집을 나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은 버튼형 위루관을 시술해 오고 있다.
"앞으로는 아무래도 풍선형으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시술하기도 힘들고 환자도 너무 고통스러워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러면 그게 빠져나올 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잖아요?"
"그렇더라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진퇴양난인 격이다.
위루관 시술하는 날, 새벽부터 아들은 배고프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쩝쩝댔다. 그런 아들을 보자니 참 힘들었다. 배고프다고 무언으로 하소연하는 아들을 수술대에 올려놓은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대기실에서 시술 장면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 시술이 무사히 끝나기만 기다렸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애간장이 녹는다. 십 년 감수한다. 피가 마른다'... 이런 표현들은 그런 순간을 보내면 힘들어하는 자를 위하여 만들어 둔 말이었다.
"아들아, 우리도 때론 금식할 때도 있고 통증으로 고통당할 때도 있어. 힘들겠지만 잘 견뎌다오, 이 또한 지나갈 거야. 날이 밝으면 식사할 수 있어. 제발 이 밤을 잘 견뎌다오."
기도하는 대신에
그렇게 아들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 제목: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서 오마주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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