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와 나는 어린 시절 부당하게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경험이 있다. 그리고 방에 갇힌 경험이 있다. 제인은 붉은 방에 갇혔고 나는 푸른 방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방에 갇힌 이유와 방의 성격은 매우 달랐다. 제인의 붉은 방은 외숙모와 외사촌 존 리드가 학대하여 몰아넣은 그 집에 있는 방이었고 나의 푸른 방은 세대를 거쳐 흘러온, 전쟁 트라우마의 후유증과 슬픔 그리고 장손제일주의에서 밀려난 여성의 아픔과 무력감으로 도배된 공간이었다. 나의 푸른 방은 내가 마음속에 지은 방으로 세상에는 없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이 두 개의 방은 지어진 재료, 즉 벽돌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벽돌을 놓은 사람도 달랐다. 제인은 다른 사람에 의해 붉은 방에 갇혔지만 나는 스스로 나를 푸른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트라우마의 기원
나와 제인의 내면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상처는 그 형태와 기원에서부터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제인의 트라우마는 명백했다. 리드 부인과 존 리드라는 가해자, ‘붉은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리고 “너는 나쁜 아이야”라는 언어적 낙인. 신체에 가하는 폭력 등 그녀의 상처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학대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싸움은 처음부터 명확한 외부의 상대를 향해 있었고, 자신의 존엄성을 짓밟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나의 ‘푸른 방’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다. 나를 옭아매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집안에 배인 애도되지 않은 슬픔의 기류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 제도란 사회적 구조였다. 마른 천이 젖은 천의 물을 흡수하듯 가족이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에 젖고 말았다. 또 사회적 구조는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휘몰아간다. 한 사람이 그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 호우에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처럼 말이다. 나는 작은 나뭇가지처럼 떠내려왔고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슬픔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나는 가부장제도가 주는 폐해를 받았고 그 폐해가 주는 영향을 고스란히 살아냈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 어디 성한 데가 없었다. 나는 세대를 따라 흘러 내려온,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와 고모의 눈물에 젖어 내 감정과 분리를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이런 환경에 내던져졌다.
나의 슬픔은 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말하자면 ‘세대 간 트라우마’였다. 나의 투쟁은 외부가 아닌, 내 몸에 스며들어 이젠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슬픔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만 했다.
나는 세대를 흘러온 슬픔의 상속자였고, 제인은 직접적 학대의 생존자였다." 나는 "내 안에 강물이 고여서 넘쳐흐르는" 내면의 홍수와 싸워야 했고, 제인은 자신을 가둔 붉은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워야 했다.
폭력의 형태에 따른 두 개의 투쟁 전략
제인과 나는 부당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고 투쟁한 것은 같지만, 그 투쟁방식은 매우 달랐다. 제인과 내가 맞서 싸워야 했던 세계의 법칙이 달랐기에, 우리가 생존을 위해 벼려내야 했던 생존전략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싸움은 그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 법칙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인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었다. 제인, 그녀는 피해자였고 제인의 고통은 리드 부인과 존 리드라는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 직접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였다.
리드 부인은 냉정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제인을 꾸짖고, 얼음장 같은 눈길과 말로 압박하며 “너는 더럽혀진 존재”라거나 “너 같은 아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존 리드는 제인을 때리거나 몸을 밀쳐 겁을 주며, 육체적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폭력을 당한 제인이 억울하게 붉은 방에 갇혔다. 그녀는 붉은 방에 갇힐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힌 리드 부인과 존 리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제인과 달리 협박하거나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옥죈 것은 남아선호사상, 장남제일우선주의, 여자는 출가외인이고 시집가면 그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그 시대의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보이지 않은 사고와 삼촌이 전사한 후 세대를 전해 내려온 슬픔을 보탠 복합적이지만 보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육이오 전쟁에서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처음에는 할머니와 아버지와 고모도 이태원 참사를 당한 가족처럼 울었을 것이다. 한번 혹은 몇 번 크게 운다고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 때문에 가족들이 더 슬퍼할까 봐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눈물을 참아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슬픔이 우리 집에 배경 음악으로 깔려 있었을 것이다.
제인은 맞서 싸울 '가해자'가 있었던 반면, 나에게는 맞서 싸울 대상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뭔가가 감지되는데, 그것에 무엇인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위기가 정서 기본값이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적화된 비극
제인과 내가 겪은 고통은 당대의 사회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제인의 고통은 19세기 영국 사회의 견고한 계급 구조와 젠더적 억압의 산물이었다. 가난한 고아 여성이자 가정교사로서, 그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력한 존재였다. 그녀의 투쟁은 사회가 부여한 여성성과 계급의 한계를 벗어나,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의 비극은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트라우마 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삼촌의 목숨을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주고는 ‘나 몰라’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쥐꼬리도 아버지에겐 없었다. 그 이유는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형제여 서다. 아버지에겐 아들 같은 존재였는데.
그리고 육이오 기념행사를 할 때 전사자 가족 중에 초대받는 자가 있었고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초대받지 못한 가족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이 국가적 행사에 한 번이라도 초대받았더라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유공자 가족을 초대한 현충일 기념행사와 이와 비슷한 행사를 할 때면, 어린 나도 ‘삼촌도 전사했는데, 왜 할머니와 아버지는 저기 초대받지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행사를 국가적으로 성대하게 벌일 때, 그곳에 초대받아 참석한 사람들과 이것을 보는 사람은 감동할 것이다. 나는 가족이 전사했는데도 불구하고 초대받지 못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 행사를 저들끼리 잔치로 보인다. 그래서 씁쓸하다. 저 사람도 나도 가족을 전쟁에서 잃었는데, 왜 나는 늘 배제되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같이 하나뿐인 목숨을 나라에 바쳤는데 어느 사람은 공이 크고 어느 사람은 공이 적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나. 초대받은 사람도 가족을 잃었고 초대받지 못한 사람도 가족을 잃은 것은 같은데. 왜 차별을 하는가. 초대받은 사람은 늘 초대받고 기억하고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늘 초대받지 못하고 잊힌다. 이는 같은 목숨을 바쳤는데 불합리하다.
나는 한번 초대받은 유가족은 제외하고 초대받지 못한 유가족을 돌아가며 초대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전사자 모두는 전사자 중의 한 명이 아니다. 전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 가족에게는 사랑하는 자식이고 형제이고 보고 싶은 삼촌인데. 그 개인들은 전사자 중 한 명으로 취급된다. 이것이 유가족을 아프게 한다.
나도 자라면서 삼촌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꼈고 삼촌의 전사가 준 그 슬픔을 물려받았는데 국가에서는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현충일이면 육이오 전사자 가족이 버스를 대절해 함께 현충원에 가기도 했다는데, 농촌에 사는 아버지는 늘 혼자 혹은 가족 몇 명만 같이 갔다. 다른 전사자 가족들과 교류했다면 혹은 국가적 애도 행사에 초대되었더라면 슬픔을 조금이라도 더 덜었을 수도 있을 텐데.
우리 가족의 비극은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가난이란 이유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성장 서사를 위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족의 슬픔을 버려두었다. 바로 공식적인 영웅으로 호명되지 못한 삼촌 같은 수많은 죽음은 침묵 속에 잊혀갔다. 국가의 애도에서 배제되었기에, 우리 가족의 슬픔은 온전히 한 집안이 감당해야 할 고립된 **‘사적 비극’**이 되었다. 우리 집과 같은 유족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할머니는 굿이란 주술로 무당에게 그 애도를 표현하게 하기도 하고 담배 연기로 애도를 날려 보내면서 살았다. 아버지의 현충원 순례는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규율 속에서 허락된 유일한 방식, 즉 침묵과 의례를 통한 남성적 애도였다. 결국 나의 이야기는 국가적 비극이 한 가족의 내면을 지배하는 미시사이자, 가부장제가 슬픔마저 어떻게 통제하고 분리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회학적 기록이다.
우리 가족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당했고 제인은 ‘사회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한’ 존재였다. 나의 이야기가 국가적 비극이 어떻게 한 가족의 내면을 수십 년간 세대를 넘어가며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미시사(Micro-history)라면, 제인의 이야기는 억압적 사회 구조가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옭아매는지를 보여주는 계급투쟁의 기록이다.
분노라는 검 vs. 관찰이라는 렌즈
제인과 내가 사는 세계의 법칙이 달랐기에, 우리의 영혼이 벼려낸 생존전략 또한 아주 달랐다. 제인은 분노라는 검을 들고 싸웠다. 그녀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외부의 부당한 침입으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자신을 학대하는 리드 부인을 향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순간, 그녀는 분노를 통해 자신과 억압하는 세계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긋고, '나'라는 존재가 파괴되지 않도록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검을 휘둘렀다.
내게는 대놓고 폭력을 내게 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대항해 직접 싸울 사람이 없었다. 내게 불합리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관찰이라는 렌즈'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이는 부당한 외부 세계에 속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밀려오는 고통을 줄여 주는 달콤한 진통제였다. 진통제가 병을 낫게 하지 않듯 나의 전략, 관찰하기는 부당한 상황을 개선시켜주지 않았다. 나는 항거하기가 무서워서 안전한 관찰자의 자리로 도망간 것이다.
제인 에어는 내면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괜찮은 척하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의 전략은 ‘관찰이라는 렌즈’를 들이댄 것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었다. 고통받는 ‘경험하는 나’와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관찰하는 나’로 나 자신을 분리하는, 어린 영혼의 필사적인 자기 방어적 해리(解離)였다. 나는 고통스러운 세상과 나 사이에 차가운 얼음벽을 세웠다. 그 벽 안에서 나는 외롭지만, 안전한 관객이 되었다.
즉 나는 ‘무대 위에서 춤출 기회, 즉 주인공의 삶’만이 아니라 엑스트라 역할도 하지 못하는 관객으로 전락하게 했다.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기쁨과 분노, 환희와 같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모든 감각의 문을 걸어 잠갔다. 직접적인 상처의 붉은 피 대신,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푸른 방’을 만들었다. 세상과 나 사이에 세운 그 관찰의 벽이야말로, 내가 만든 푸른 방의 견고한 벽돌이었다. 나의 관찰자의 자리가 바로 푸른 방의 얼음벽이다.
제인은 서툴렀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었고 나는 꼼꼼히 계산한 뒤 전략을 폈지만, 문제를 덮어두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제인은 비교적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삶,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나는 문제를 묵혀두었고 곪아 터지고 난 후에도 버려두었다. 이제 노년에서야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내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투쟁의 목적: 애도를 위한 것인가? 자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이렇듯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나와 제인이 추구하는 궁극적 해방도 서로 달랐다. 제인의 여정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확립해 나가는 자아 확립의 투쟁으로 그녀는 "나는 새가 아니고, 어떤 그물도 나를 잡을 수 없다"라고 선언하며,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도 자신의 독립적인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해방은 과거의 상처와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여정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나의 이 슬픔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푸른 방에 갇힌 이유를 먼저 알아내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나의 슬픔과 가족의 역사를 연결 짓는 실마리가 되었고, 나의 탐구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책 쓰기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집단 애도의 과업’을 내가 이어받아 마무리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그 슬픔이 내 자녀들에게 또 다른 형태로 대물림이 되었음을 자각한 순간, 나는 트라우마가 단절이 아니라 변형과 반복을 통해 세대를 건너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개인의 해방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지를 절감했다.
제인의 해방이 과거로부터의 '단절(severance)'을 통해 온전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서구적 자아의 투쟁이라면, 나의 해방은 과거와 '연결(connection)'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나는 흩어진 기억을 회수하고 세대의 슬픔을 이해함으로써 자유를 찾는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할머니와 아버지의 못다 한 애도를 완수하고, 내 아이들에게 이 슬픔의 강을 다른 이름으로 물려주기 위한 연대적 해방의 여정이다.
제인 에어의 서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보이지 않는 상속’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 이것이 나의 투쟁이다. 그리고 이 투쟁의 방식은 수동적인 '관찰'이 아니다. 바로 지금, 펜을 들고 이 이야기를 쓰는 행위 자체가 나의 첫 번째 '저항'이다. 글쓰기는 얼어붙은 푸른 방을 녹이는 불꽃이자, 침묵의 강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의식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과거와 화해하고, 마침내 나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바로 유산, 곧 애도되지 못한 슬픔의 집합적 기억이 어떻게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를 이어 후대에 대물림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즉 심리학에서 말하는 세대 간 트라우마 전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거울이 된 제인의 붉은 방
제인의 붉은 방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내가 갇힌 방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제인의 방에 비진 내 방은 슬픔이란 빙하로 둘러싸인 푸른 동굴 같았다. 슬픔이 고드름처럼 길게 늘어져 있고 난로마저 슬픔이 활활 타오르는,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그 푸른 방에 엎드려 나는 이 글을 쓴다. 등에 뚝뚝 떨어지는 슬픔이 녹아 흐르는 얼음 방울 차갑다.
남아선호사상, 장손제일주의, 출가외인 같은 사고와 육이오가 준 아픈 상처가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는 데다가, 내가 쌓아 올린 푸른얼음벽 안에서 그냥 살겠다고 버티는 내가 새롭게 살겠다는 지금의 나와 둘이 서로 제 맘대로 살겠다고 다툰다. 지금의 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제인 에어의 삶과 내 삶을 비교 분석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푸른 방은 허무는 것이 아니라 녹여내야 하고, 푸른 제단은 허무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