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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애수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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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May 26. 2024

애 수

7화

새벽 4시. 

휴대폰 알람 소리가 고요한 침실을 가득 채운다. 찬혁은 반사적으로 눈을 뜨고, 재빠른 몸짓으로 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는 옆에서 자고 있는 은미를 슬며시 쳐다보며, 인기척에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온다. 계절은 봄이지만 아직은 새벽 기온이 쌀쌀하다. 찬혁은 몸을 움츠린 채 화장실로 가서 서둘러 세수를 하며,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고개를 저어본다.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회사 문제 때문이었다. 세수를 마치고 나온 찬혁은 가방에 초코파이 두 개와 은미가 준비해둔 두유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혹시라도 은미가 잠에서 깰까 봐 도둑고양이처럼 최대한 살금살금 움직이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방문이 열리고 은미가 한쪽 눈만 뜬 채 눈을 부비며 나왔다. 은미는 잠에서 깰 때 한쪽 눈만 뜨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모습이 찬혁에게는 은미의 귀여운 매력 중에 하나였다. 은미가 한쪽 눈을 부비며 찬혁에게로 다가가자, 찬혁이 은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에구구 졸려요? 공주님. 조심한다고 했는데 깨웠네 미안해.. 다시 어서 자.”

“우 씨 놀리기야? 두유 챙겨가..”

은미가 피곤해 보이는 찬혁의 표정을 살피며 먹거리를 챙겨준다.

“그래 챙겼어 어서 들어가서 자.”

“피곤하지?.”

“괜찮아 일찍 일어나는 게 이젠 익숙해.”

“아침도 못 먹고 매일 새벽에...”

“이 시간에 출발해야 그나마 주차도 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게...”

“봉봉아 갔다 올게. 저녁에 봐.”

“응 운전 조심해.”

“그래 알았어.”

찬혁은 은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선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매서운 새벽바람이 몰아쳤다. 찬혁은 계절에 어울리지 않은 바람을 느끼며 아직은 따뜻한 봄바람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어디쯤 일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지난날을 생각하며 웃을 봄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찬혁은 옷깃을 세우고 가방을 둘러맨 후 걸음을 재촉한다. 골목에 주차된 차 앞에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2층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서글픔이 몰려옴을 느꼈다.

‘요즘 왜 이럴까?’

찬혁은 어두운 새벽 골목의 풍경과 집을 번갈아가며 둘러본다.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찬혁이 내뿜은 담배연기가 쓸쓸함을 더해주는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을 향해서 팔을 벌리듯 올라가, 가로등을 부둥켜안고 보듬는다. 차에 올라탄 찬혁은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회사를 정한 후, 깊은 한숨을 내뱉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해뜨기 전 도로와 거리는 한산했고 아침 일찍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 성경 책을 가슴에 품은 채 걸어가는 아주머니, 해장국집에 혼자 앉아서 이른 아침식사를 하는 아저씨... 늘 보는 거리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강물에 가라앉은 돌멩이 한 개가 마음 한쪽에 자리한 듯 묵직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가속을 하자, 가로등과 주변 풍경이 오색 물감의 데칼코마니처럼 번지는 듯 늘어지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여전히 아침을 밝혀줄 해는 아직 뜨기 전이었고, 사랑하는 은미가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부천은 점점 멀어져 갔다. 

차가 인천 남동공단에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삭막한 공장 모습이 뿌연 안갯속에서 음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출근시간이 한참 남았기에 주차할 자리는 여유가 있었다. 찬혁은 출퇴근길의 교통체증과 주차난 문제 때문에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었다. 원하는 자리에 주차를 한 찬혁은 시동을 끈 후 운전석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무릎담요를 허리 아래로 덮고 점퍼에 달린 지퍼를 목 끝까지 잠그고 눕는다. 멀리 보이는 공장 건물들과 그 위에 펼쳐진 하늘 끝에는 서서히 붉은빛이 어두운 새벽 커튼을 감청색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으로 대략 한 시간 반가량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여전히 허전하고 싸한 마음을 움켜쥐고 눈을 감아본다. 찬혁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의 차량이 찬혁에게 인사를 하듯이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전조등을 꾸벅 거리며 골목 안으로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이 나이에... 이 나이 먹도록...’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순간 뜨거운 불덩이가 올라오는 고통이 목으로부터 전해졌다. 양쪽 눈두덩이도 날카로운 바늘 끝으로 전해지는 듯한 고통이 감전된 듯 찌릿하게 뜨거워졌다.

“미안해 은미야.”

자신을 원망하듯 혼잣말을 꺼내놓자 눈물은 흐느낌으로 변했고,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창가 쪽으로 돌아누운 채 울음소리를 목젖으로 억지로 꾸역꾸역 넘겼다. 얼마 동안 그렇게 웅크리고 혼자만의 몸부림을 쳤을까, 찬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쪽잠에 빠져들었다.

 

띠리링 띠리링~

휴대폰 알람 소리가 아닌 전화 벨 소리임을 느낀 찬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팀장의 전화다. 젠장 시간은 오전 8시 40분이었다.

“네 팀장님.”

“어디냐?”

“거의 도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어.”

비록 욕지거리 없이 전화를 끊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냉담함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찬혁은 서둘러 집에서 챙겨온 초코파이를 입에 밀어 넣고는 황급히 두유를 마신다. 입안은 뻑뻑함으로 아무런 맛도 못 느낀 채 목구멍으로 밀어 넘겼다. 그러고는 회사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이미 밖에는 눈이 부시도록 환한 아침햇살과 분주히 출근하는 사람들로 골목은 분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마당에는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팀장이 담배를 피우며 찬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잠 잔 거냐?”

“아네.. 죄송합니다.”

“일이 힘들어?”

“아닙니다.”

찬혁의 대답과는 달리 팀장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찬혁을 나무란다. 

“기계도 몇 대 안되는데 힘들게 뭐 있냐? 늦어도 십분 전에는 나와야지.”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서 들어가서 기계 위에 정리 좀 하고, 원료 준비 빨리해 놔라.”

“네.”

공장안 사출기계들은 웅 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치 어서 밥을 달라고 보채는 거대한 야생동물처럼 느껴졌다. 지각했기에 민망하고 정신도 없었지만 기계 소리 때문에 더욱 정신이 없었다. 찬혁은 쫓기듯 서둘러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기계 위의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늦잠 잤어요?”

민수가 다가와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내민다.

“아니 일찍 왔는데 잠깐 눈 좀 붙인다는 게... 휴.”

민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 하고 친다.

“또 팀장님한테 한소리 들으셨겠네.”

“응...”

“지금 팀장님은 사장님이 호출해서 사무실로 올라갔어요. 우리 담배나 한 대해요.”

“아 그래? 그럼 그럴까?”

두 사람은 공장 뒤쪽 구석에 있는 분쇄실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고 잠시 숨을 돌렸다. 각자 담배를 한 모금씩 머금은 후 뱉어내자 민수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형 굿 뉴스가 있어요.”

“무슨?”

찬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수를 바라보았다.

“조만간 형 부사수가 올 것 같아요.”

“진짜? 언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제 아버지가 사람을 더 구해야겠다고 하시면서 팀장님이랑 상의해 본다던데, 그래서 지금 팀장님이 사무실로 가신 듯해요.”

“아...”

찬혁은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기엔 적잖이 걱정이 앞섰다. 부사 수라면 자신이 이것저것 가르치고 알려줘야 하는데 아직도 사출기계를 혼자 다루지 못하는 실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직은 좀...”

눈치를 챈 민수가 찬혁의 말을 가로막는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 물량이 늘어나서 지금 직원들로는 앞으로 물량을 쳐내기 힘들거든요. 미리 뽑아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다른데 뺏길 수 있어요.”

찬혁은 민수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더 이상 뭐라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형 너무 걱정 말아요. 막히는 것 있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두 사람이 분쇄실에서 나오자 팀장이 사무실에서 나오며 찬혁과 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민수를 부르는 손짓을 했다. 찬혁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일하는 도중에 몰래 훔쳐봤다. 민수를 설득하는 모습의 팀장과 당황해하며 무언가 어필하는 민수의 모습을 보게 되자, 찬혁은 자신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찬혁은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결국 원료를 바닥에 쏟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당황한 찬혁은 팀장이 보게 될까 봐 쏟아진 원료를 쓸어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찬혁앞에 작업화가 눈에 들어왔다.

“사고 치셨군...”

순간 팀장인 줄 알고 깜짝 놀란 찬혁이 민수라는 것을 확인하자, 무안한 얼굴로 민수를 바라봤다.

“미안해 손이 미끄러워서..”

“어서 치워요 팀장이 보면 또 난리나요.”

“그래 알았어.”

찬혁은 빠른 손놀림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는 자리를 뜨지를 않았다. 그 순간 찬혁은 민수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음을 눈치챘다. 찬혁이 정리를 마치자 민수가 찬혁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형 아...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왜 무슨 일인데?”

“저기... 하여튼 이런 일은 꼭 나한테 맡긴다니까.”

“괜찮아 말해봐 무슨 일이야?”

“형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그래.”

민수는 찬혁의 눈을 피해서 고개를 숙여서 공장 바닥을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한번 내뱉은 후 결심이 선 듯 찬혁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일단 내일 한 사람이 면접을 보러 올 거예요.”

“그래? 그게 뭐 힘든 말이라고 그렇게 뜸을 들여?”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무슨...?”

찬혁은 모른 체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안 좋은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것쯤은 불쾌한 공기흐름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도 맡아온 익숙한 쾌쾌한 공장 냄새였지만, 그 느낌은 아주 달랐다. 빌어먹을 매캐하고 비릿한 원료 타는 냄새!

“오는 사람이... 팀장 이 아는 사람이구요. 그리고, 경력자예요.”

찬혁은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비록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팀장의 지인이라니 그것도 경력자라면 더더욱 설자리가 좁아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 직급은?”

“아직 정확한 건 모르지만 부팀장 일 듯싶어요.”

“그렇구나. 그건 사장님 의견이야?”

"아니에요. 사장님은 형님을 주임으로 올리고 초짜를 구하자는 의견이었는데, 팀장님이 당장 기계 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요구하셔서...”

찬혁은 모두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신이 인정을 받을만한 실력이었다면 사장도 민수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가재는 게 편인 것이었다.

“미안해요 형.”

“왜 니가 미안해해? 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데.”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네요.”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찬혁이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미 어두워진 얼굴을 눈치챈 민수가 찬혁의 어깨를 잡았다.

“형 기분도 그런데 오늘 제가 한잔 살게요. 끝나고 한잔해요.”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괜찮아.”

“에이 그러지 말고 저랑 한잔해요. 우리 한잔 같이 한지도 오래됐고..”

“아니 정말 괜찮아. 그리고 오늘 약속도 있어서 그래. 다음에 하자.”

“정말 약속 있는 거예요? 일부러 피하는 거 같은데..”

민수가 계속 보채자 찬혁은 순간 감정이 복받쳤다.

“정말 아니라니까 왜 그러는데?”

찬혁이 갑자기 큰소리를 치자 민수는 깜짝 놀라며 당황해했다.

“미안해 네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알았어요. 다음에 해요.”

무안한 얼굴로 민수가 자리를 뜨자, 찬혁은 공장 벽 위에 달린 창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작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았고 오히려 알 수 없는 후련함이 밀려왔다. 

찬혁은 남아있는 일거리를 마무리 지은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분쇄실로 들어갔다. 분쇄실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찬혁은 팀장에게로 다가갔다. 찬혁의 걸음걸이는 평소보다는 제법 힘이 실린 걸음이었다. 

“어디 있었던 거야? 시킨 거 다 끝났으면, 알바들 오기 전에 사상 좀 해.”

“팀장님.” 

“왜?”

“저 오늘 오후에 반차 좀 쓰겠습니다.”

“뭐? 반차?”

평소와는 다른 상기된 얼굴을 한 찬혁이었지만, 팀장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야 너는 눈치도 그렇게 없냐? 지금 일이 계속 밀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사람도 없어서 죽겠구만.”

평소에 찬혁이라면 이런 핀잔을 듣고 안절부절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찬혁의 말끝에는 힘이 있었고 단호했다.

“야 몸 안 아픈 사람이 어딨냐? 아프다고 쉬고, 집안일 있다고 쉬고 그러면 일은 누가 하냐? 또 너 오늘 지각까지 해놓고 그게..”

찬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팀장의 말을 끊었다. 

“팀장님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세요?”

찬혁의 높아진 언성과 상기된 표정을 본 팀장은 놀란 표정으로 찬혁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찬혁은 드디어 눌려왔던 감정을 끄집어내자 마음은 더욱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찬혁의 기분을 알 리가 없던 팀장은 더욱 심기가 불편했다.

“기술을 배운다기에 가르쳐 줬드만 어디서...”

“왜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저는 아프지도 못하고, 감정도 없는 기계인 줄 아세요?”

팀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찬혁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갑자기 공장에서 큰소리가 나자 민수가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형 왜 그러세요?”

“민수야 난 사람 아니냐? 몸이 안 좋아서 오후에 반차 좀 쓰겠다고 했더니, 아프지도 말라고 하잖아!”

“아 형님이 참으세요.”

“이게 참을 문제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

민수가 찬혁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려 하자 팀장이 결정타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따위 정신 상태로 일하려면 때려치워!”

그 순간 찬혁이 민수의 팔을 뿌리치고 팀장에게 달려갔다. 위협을 느낀 팀장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 내가 더러워서 때려치운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해두지. 내 정신 상태는 멀쩡해. 그러니 당신 정신 상태나 체크해 봐!”

팀장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있었고, 민수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마당에서 찬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무실에서는 사장이 창문을 통해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형님....”

“이제는 내가 미안하다. 더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사무실에서 사장이 팀장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팀장은 부리나케 사무실로 들어갔다. 찬혁은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민수에게 건네 주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해서 이렇게 됐네요.”

“아니야. 사실 진작 너에게 말하고 결정했어야 했어. 전부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오늘 너의 말 때문만은 아니야.”

민수가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쯧 하고 혀를 찬 후 담배연기를 깊숙이 빨아댄다.

“이대로 가시는 거예요? 하루 이틀 쉬면서 생각해 보시면 안 돼요? 제가 사장님한테 잘 말해놓을...”

찬혁이 민수의 말을 가로막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야 그러지 마라.”

“찬혁이 형...”

사무실에서 민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찬혁이 민수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동안 고마웠어. 자주 연락할게.”

“알았어요. 일단 들어가세요. 제가 전화드릴게요.”

“그래 잘 있어. 나중에 술 한잔하자.”

“그래요.”

“간다...”

찬혁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돌아서 걸어가자 민수가 사무실로 뛰어갔다. 찬혁이 마당을 벗어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입구에서 서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부시도록 흩날리던 벚꽃잎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하얀색과 연분홍빛을 띠며 파스텔톤의 그윽함을 뿌리고 있었다. 벚꽃을 바라보던 찬혁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쉬움 가득한 공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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