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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Jun 23. 2024

애 수

11화

보석이 귀한 것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찬혁은 익산에 있는 공장에 면접을 보고 난 후 출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장 규모는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소기업도 아니었다. 경력은 어느 정도 부풀려서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그만큼 찬혁도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근무했던 어느 곳보다 중간관리자로서 좋은 연봉으로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힘든 부분이 있다면 주간 야간 2교대 근무라는 점과,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숙소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찬혁은 그동안 서먹서먹해진 두 사람 간의 관계에도 차라리 좋은 기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익산으로 내려가기 하루 전.

두 사람 간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만 하기에, 대화도 할 겸 외식을 하기로 했다. 각자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 상태였기에, 차가운 분위기가 함께한 식사 자리였다.

“은정이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찬혁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말을 걸었지만, 은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할 뿐이었다.

“말은 했는데 약속 있다고 그러더라. 그냥 우리끼리 먹어.”

“술 한잔할래?”

“됐어...”

고깃집 분위기는 늘 그랬듯이 여기저기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두 사람의 자리만은 그렇지 못했다. 집게로 고기를 뒤집고 있는 은미를 바라보며, 찬혁은 말없이 자신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자기야..”

“.....”

찬혁이 부르는 소리에 은미는 그저 고개를 들어서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잘 지내고 있어. 밥도 잘 챙겨 먹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야 뭐 집에서 일하는데 자기가 지방에서 혼자 지내니까 잘 지내야지. 밥도 잘 챙겨 먹어.”

“숙식제공이니까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으면 돼.”

“.....”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찬혁은 뭔가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고기를 구워서 서로 챙겨주며 술잔을 몇 번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소주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보였다. 

“나도 한 잔만...”

찬혁이 술병에 남은 술을 따라주자 은미는 단숨에 술잔을 비워냈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생각보다 많이 힘들 거야. 자기는 듣기 싫겠지만, 이번에는 힘들어도 꼭 잘 적응했으면 좋겠어.”

“괜찮아 자기 만나기 전에 혼자서도 살았는데.”

“혼자 자취하는 거랑 다르지.”

“어쩌겠어 별도리가 없으니 버텨야지.”

“......”

식사를 마칠 때까지 술잔은 두 사람의 대화보다 더 자주 비워졌다. 그리고 식당을 나온 두 사람은 여전히 침묵한 채 가까운 공원으로 걸어갔다. 술에 취한 듯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차가운 바람이 길 잃은 낙엽을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무심하게 내려놓고는 부지런히 도망갔다. 

“내가 밉지?”

망설인듯한 힘없는 찬혁의 목소리가 독백처럼 흘러나오자, 은미는 석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난 그냥... 이런 상황이 싫을 뿐이야.”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겠다. 나 같은 남자 만나서 고생만 하고...”

“그런 말 좀 하지 마. 나도 마찬가지지 뭐.”

은미는 찬혁의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없는 말이 듣기 싫었다. 은미는 짜증이 섞인 말을 뱉은 후 찬혁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걸어 나가자 찬혁이 은미를 불러 세웠다.

“자기야.”

찬혁의 부름에 은미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찬혁이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축 처진 어깨에 구부정한 모습과, 자신을 불러 놓고도 차마 얼굴을 쳐다볼 수 없는 듯한 표정에서 은미는 순간 안쓰러움 마저 들었다. 

“곰돌이... 그거.”

“인형? 그게 왜?”

“부탁인데 그건 버리지 말아 줘.”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왜 버려?”

“그냥...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버리지 말아 줘.”

“싱겁기는... 선물 받은 걸 내가 왜 버려. 그거 버린다 해도 쉽지 않아. 재활용도 안 돼서..”

“그래 어쨌든 약속해 줘.”

“알았어.”

은미는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뚱딴지같은 찬혁의 말이 별나게 느껴졌지만, 더 이상 큰 의미로 생각하지 않고 다시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러자 찬혁이 또다시 혼잣말하듯 말을 꺼냈다.

“곰돌이에 써진 글 있잖아, 내가 자기한테 해줄 수 있는 전부야. 내가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약속은 지킬게. 그러니 안 버리겠다고 해줘.”

“그래 알았다구. 춥다 어서 들어가자.”

“그리고 우리....”

“......”

“우리 그만 이쯤에서 당분간 생각할 시간을 갖자.”

“...... 그 말은.”

“그래. 어차피 내일 나는 멀리 가. 이왕 이렇게 됐으니 떨어져 있는 동안 정말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눈에 안 보여도 서로 생각나는지 잘 생각해 보자.”

“그렇구나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하는 게 편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편해서가 아니라...”

“그만! 더 이상 말싸움하기 싫어! 알았으니 그만해.”

은미는 말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웃으며 걸었던 공원 길은, 어둠을 간신히 밝혀주는 가로등 몇 개만이 마지막 연극 무대에서 인사를 하듯,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찬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찬혁은 부천으로 올 때처럼 조그만 경차에 짐을 꾸역꾸역 싣고 있었다. 하지만 부천으로 올 때처럼 희망에 찬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짐이 하나둘 실릴 때마다 그 무게만큼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드디어 마지막 가방을 넣고 돌아서자 은미와 은정이가 찬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잘 보살피고 너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

은정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피한 채 대답했다.

“결국 이렇게 가시네요. 잘 가세요.”

은정은 형식적으로 하듯이 차갑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찬혁은 은미에게 다가갔다.

“이제 갈게... 가끔 안부 전화할게.”

“그래 잘 가. 자기도 잘 지내고...”

“알았어.”

찬혁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차에 타려 할 때, 기명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왜?”

“오늘 가는 거냐?”

“이제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어.”

“그래? 너 내일 당장 출근 아니지?”

“응 모래부터 출근이야. 근데 왜?”

“그럼 가기 전에 나 좀 보자.”

“야 나 바빠. 가서 준비도 해야 하고...”

“잔말 말고 가기 전에 나 좀 보고가. 할 말 있어서 그래.”

“거 참 갑자기 왜?”

“고속도로 타기 전에 잠깐 보자.”

“어디로 가?”

“송도 운전연습하던 곳 알지? 그리로 와.”

“알았어.”

찬혁은 기명이의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연식도 오래되고 볼품없는 조그만 경차는 주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은 듯, 경쾌한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찬혁은 운전석에 앉아서 은미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에는 미묘하게나마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슬픈 기색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찬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고는 왈칵하고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자기야...”

“.....”

“갈게... 잘 지내야 해. 알았지?”

“......”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은미 역시, 굳게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가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전화는 받을 거지?”

“그럼... 당연하지.”

“알았어... 운전 조심하고...”

“그래..”

“그리고 있잖아...”

“어?”

“..... 아니야. 어서 가. 기명 씨 만나고 가려면 시간 없겠다.”

“그래 갈게. 잘 지내...”

“응....”

은미의 양쪽 뺨으로 굵은 눈물이 창가에 맺힌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찬혁은 운전대를 돌리며 가속 페달을 눌렀다. 그 순간 찬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금 가면 안 돼!’

찬혁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울림이, 아직도 남아있는 은미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이 방법이 최선이니까. 내가 은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전부니까...”

찬혁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듯, 혼잣말로 그 울림을 억누르며, 룸미러로 멀어져 가는 은미를 바라보았다.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찬혁은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큰소리로 울고 싶어도 울음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입술에 가득 고이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동안 은미와 함께 소소한 일상으로 행복했던 추억들이 쌓인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몇 백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득템한 기분으로 서로 하하 호호하며 동네가 떠나도록 웃으며 지나온 골목 귀퉁이와, 월급날 고생했다고 서로 토닥이며 맥주 한 잔에 행복했던 단골 치킨가게. 이 모든 것들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언제 다시 그런 날이 올지 모르는 것이다. 찬혁은 벌써부터 너무나도 그립다 못해서 그 그리움만큼 사무치도록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련하고 그리운 기억처럼, 그 기억과 함께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그만 경차는 부천을 뒤로한 채, 점점 작은 점이 되어 부천에서 멀어져 갔다. 

 

한 시간 뒤 인천 송도 인근 공터.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허름한 활어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찬혁이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무렵 기명이에게 주차 연습을 배우던 장소였다. 커다란 수족관이 달린 트럭에서 익숙한 차림새의 기명이가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고무 재질의 목이 긴 장화와 우스꽝스러운 고깔모자를 눌러썼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웃을 수가 없었다. 찬혁이 차에서 내리고는 담배를 입에 물려고 할 때였다. 기명이가 찬혁에게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뺨을 후려쳤다.

“야 뭐 하는 짓이야?”

극도로 흥분한 상태인 기명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찬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이 나쁜 새끼야! 이제 속이 후련하냐?”

“뭐?”

“비겁하게 도망가니까 후련하냐고!”

“이 새끼가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 내가 이러고 싶어서...”

찬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명이가 또다시 찬혁의 뺨을 힘껏 쳤다. 그러자 찬혁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기에 기명이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안 그래도 죽고 싶은 사람한테...”

“그래 차라리 디져라 이 새끼야! 그러고도 니가 남자 새끼냐? 니 입으로 한 약속도 깨고 그러고도 니가 남자 새끼냐고!”

“남의 얘기라고 막 말하지 마라! 친구니까 이 정도에서 참는 거니까 그만해.”

“그래? 그럼 참지 말고 덤벼 이 새끼야!”

“이게 정말...”

찬혁도 더 이상은 참지 않고 기명이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명이의 가벼운 손짓만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 자존심만 세서 뭐가 어째고 저째? 더 덤벼봐!”

바닥에 주저앉은 찬혁은 일어날 기운조차도 없었다. 마치 거대한 벽을 들이 받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 찬혁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기명이가 말을 이었다.

“너 잘 들어!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결과는 네가 스스로 자초한 거야. 나중에 나한테 울고불고 빌어도 소용없어. 알았어?”

찬혁은 기명이의 말을 듣고는 이상한 느낌이 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명이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왜 너한테....”

기명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귀찮다는 듯 팔을 뿌리쳤다.

“뭐 몰라서 물어? 눈치채고 있었잖아! 모르는 체 쌩 까긴 새끼가...”

“너.. 너 진짜.... 정말....”

기명이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찬혁을 째려보았다. 

“됐고! 너한테 기회는 더 이상 없어. 앞으로 넌..”

찬혁은 돌아선 기명이를 다급하게 돌려세웠다.

“말해! 말 하라구! 도대체 너 누구야!”

기명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팔짱을 끼고 찬혁을 노려보았다.

“왜? 내가 귀신처럼 보이나 보지?”

“아니 그게... 그러니까 뭐 하는.. 아니 너 뭐냐고?”

기명이가 허공을 무심히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니 수호천사다 임마. 됐냐?”

“수호.. 천... 사? 그게 대체 무슨...”

“왜? 검은색 삿갓이라도 써야 했나? 아니면 등에 날개라도 달고 나타나야 했나? 그런 걸 기대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이 도대체...”

찬혁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서 지쳐있는데,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뚱딴지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찬혁은 정신이 멍한 상태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을 맞추어 보아도, 자신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불현듯 오래전 은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비로운 존재 같았어] 

찬혁이 넋을 놓고 있자 기명이가 다소 누그러진 듯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들의 존재는 아 주 아주 오래됐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모든 게 너의 의지대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지금 이러는 건 너의 예정된 인생 경로 때문이야. 그걸 사람들은 운명이라고들 하지. 보통 조금씩은 인생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지 그런데, 넌 잘못된 방향으로 벗어났어. 그 때문에 나 역시 하지 말아야 할 쓸데없는 행동까지 하게 된 거야. 젠장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닌데 내 오지랖도... 나도 이제 인간이 다 됐나 보다.” 

기명이의 말에 찬혁은 여전히 멍하니 입만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야 정신 차려! 일단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수는 없고, 내려가서 일하고 있어. 상황을 살펴보고 연락 줄 테니까.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은미 씨가 말 한대로 진득이 좀 참아봐.”

넋이 나간 듯한 찬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야... 나도..”

“알아 다 안다고!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무도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기 연민에서 제발 빠져나오라고.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속 썩어가며 가족들 부양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세상 살아가는 것 같아?”

그 순간 찬혁이 눈을 부릅뜨며 기명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천사니 지랄이니 다 집어치우고! 그래도 넌 내 친군데 꼭 그렇게 말해야 되겠냐?”

찬혁은 유일한 자신의 편인 기명이 마저 냉정한 태도를 보이자 눌려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감정놀음할 시간이 없다. 내 존재를 알려준 이상 나도 더 이상 친구 입장에서만 말해 줄 순 없어!” 

기명이가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 하자 찬혁이 다급하게 불러 세운다.

“어쨌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기명이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측은한 눈빛으로 찬혁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 이

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말했듯이 내려가서 최선을 다해서 버티라고. 그런데 이번에도 좀 힘들 거야. 지금까지 겪은 일들보다... 그래도 버텨야 해! 내가 가끔 도와주긴 하겠지만, 너의 의지가 중요해. 만일 내려가서도 못 버틴다면 굉장히 힘든 상황에 직면할 거야. 그렇다고 너무 겁먹진 말고.” 

“정말 그게 다야? 그렇게만 하면 돼?”

“일단은 나도 거기까지밖에 몰라. 미래를 미리 다 알면 내가 신이지 안 그래? 방법은 있을 거야... 싫든 좋든 어차피 내가 너의 수호천사니까 도울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줄게. 으이구 도대체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니까.”

기명이는 찬혁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고는 차를 타고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기명이를 바라보던 찬혁은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머리가 복잡했고, 기명이의 말대로라면 앞으로의 일어날 미래가 걱정됐다. 

잠시 후 찬혁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미야 정말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찬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동을 걸고 익산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며 은미의 모습과 기명이의 말을 생각했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다. 자신이 바꿔버린 운명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찬혁은 그렇게 안개 낀 새벽처럼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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