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속의 절집들...
#-16. 그리움을 묻는 곳, ‘내 맘속의 절집들’
절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 때부터였던 것같다. 제대를 하고 나니 몇 안 되는 남자 동기들은 입, 제대 일정이 달라 각기 다른 시기, 다른 학년으로 흩어져 있었고, 여자 동기들은 졸업을 앞둔 터라 학교에서 얼굴보기도 힘들었다. 나보다 3년이 어린 후배들과 어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문학’은 여전히 남자들에겐 비주류였고, 대다수 여자 후배들은 길에서 스쳐 지나는 중년 사내 대하듯 예비역에 무관심했다. 복학 때까진 아직 반 년 이상이 남았고 나는 그렇게 낯설기 짝이 없는 학교를 이방인처럼 떠다녀야 했다.
20대가 되어서도 낯선 도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보내야 하는 일상은 여전히 어둡고, 외로웠다. 오래도록 나와 내 주변을 힘들게 했던 그 우울의 근원은 유년기에서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늘 내 일상에 눌러 붙었던 그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외로움을 껴안은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나 이틀을 꼬박 산등성이와 씨름을 하고 오면 손가락, 발가락 하나 꼼짝 하지 못할 정도로 온몸의 근육들이 경직되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채 그렇게 잠들었다가 깨고, 깨고 나면 주린 배를 채우는 원초적인 시간들만으로도 하루는 금세 지났다. 그렇게 며칠을 웅크렸다가 친구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현상하고 산 여기저기에서 찍은 풍경들로 남은 여운을 갈무리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사진들 속에는 흐르는 시간들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미처 풀어내지 못한 내 일상의 사유들이 고여 있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오래 사진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산에서 찍는 사진의 대부분이 절집에 대한 것이란 걸. 산의 초입에 있는 ‘일주문’(산문, 山門)에서부터 ‘사천왕문’, ‘해탈문’에 이르기까지, 절집에 이르는 모든 길들과 길옆의 사리탑들, 그리고 곳곳에 올려진 소원탑들. 어떤 땐 처마의 단청과 전각의 문살들 하나하나까지. 그 풍경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읽어가며 나는 흔히 세속의 묵은 때를 그렇게 벗겨내는 나만의 의식에 빠져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장에 하나씩 절집과 관련된 책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내 맘속의 절집>, <사찰 기행>, <미의 순례> 등...기행문집들에서부터 불교문화와 불교철학을 다루는 책들로 사유는 깊어졌다. 대학에서도 전공보다는 ‘문화철학’, ‘불교철학’ 같은 수업들에 더 열심이었다.
그렇게 혼자인 시간은 고즈넉하게 외로웠고 그 고즈넉한 외로움은 내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 짙은 그림자가 가끔은 묵직하게 나를 흔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불쑥 길 위로 나섰다. 강의 중이거나 아니거나, 잠들기 전이거나 잠에서 깬 후거나, 낮이든 밤이든, 아직 동이 트기 전 신새벽에도, 불쑥불쑥 내 그림자는 나를 길 위로 밀어 올렸다.
부석사, 운문사, 선운사, 화엄사, 천은사, 갑사, 파계사, 운주사, 내소사, 적천사, 장춘사...
무수한 절집들과 절터들을 헤집고 다닌 날들...그렇게 켜켜이 쌓이는 길 위의 풍경들 속에서 나는 혼자이면서 세상 모든 것들과 함께였다. 그래서 내 그리움들은 세상 모든 것들에 닿아 있다. 내 눈에 담겨오는 풍경들 하나하나, 살갗을 스치는 알 듯 모를 듯한 미풍에도 내 그리움은 갯내같이 짙게 물컹거린다. 어느 날 그 물컹거리는 그리움들의 가시들을 가지런히 발라내고 싶은 욕구...그 그리움들이 다 흩어지게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