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는 독립시키기 위해 키우는 거란다

by 코니

문을 열자 까만 고요가 날 기다리고 있다. 당연한 것을 뭘 기대했는지. 지난 석 달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한 가슴을 애써 외면해 왔다. 바로 이 순간을 떠올리며. 그저 자식 발목 붙잡는 부모는 되지 말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짐했었다. 단단히 맘먹은 줄 알았건만 들려야 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갑자기 미칠 것 같다.



"엄마, 엄마, 엄마. 나 안 보고 싶었어? 왜 이리 늦게 오는 거야? 빨리 이리 와 봐"

분명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두 팔로 날 꼭 안아야 하는데. 대신 싸늘한 침묵만이 날 감싸 안는다. 잘 정리하지 못한 채 마음 한켠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슬픔이 별 수고 없이 목구멍으로 차 올라온다.



깜깜한 아이방에 들어가 한동안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아무리 울고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텅 빈 방은 가슴에 뚫린 구멍을 더 키운다. 내가 장난 삼아 우는 줄 알았던 남편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랑 헤어질 때 가볍게 안아주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섰다. 제일 씩씩하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며 들썩이는 내 어깨를 토닥여준다. 허전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을 내가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내색할 틈도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옆에 남편이라도 있으니.



갑자기 휴대폰이 울린다. 울고 있는 날 향해 남편이 아이일 거라고 얼른 받아보란다. 눈물을 대충 닦고 휴대폰을 집어드니 아이가 아니다. 심란해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고맙게 전화까지 해준 지인이다. 어떻게 아이 떼놓고 발이 떨어지더냐는 그냥 농담 같은 인사말에 또다시 무너진다.

"그러니깐 지금 이렇게 울고 있잖아요"

그러고는 남사스럽게 휴대폰을 붙잡고 또 운다. 꽤 당황했을 텐데도 지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날 위로해 준다.

"오은영 박사가 그러던데 아이는 독립시키기 위해 키운대. 그러니 자기야, 너무 슬퍼하지 마"



잠시 후 이번엔 진짜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눈물을 참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간다.

"저녁은 뭐 먹었어? 냉면? 혼자? 이 추운데? 별 먹고 싶은 게 없다고?"

아이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근데... 엄마, 엄마 감기 걸렸어?"

코 맹맹한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가 보다.

"아니, 너 보고 싶어 울어서 그래"

"진짜?"

"넌 엄마 안 보고 싶지?"

"아니, 나도 엄마 보고 싶어"




아이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낯설고 두려웠다. 그래서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무리라고 남편에게 우겼다. 사실 집에서 싸 온 김밥을 먹는다고 잠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쉰 것뿐인데 기숙사까지 6시간 반이나 걸렸다. 다시 그 시간을 운전해서 집으로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전날 밤 야근 후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운전대를 잡았다. 결국 안동에서 하룻밤을 자고 청송과 영덕, 경주를 거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남편의 팔짱을 꼭 낀 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잠시 모든 걸 잊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을 줄 알고.



결과적으로 그 방황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와버렸으니. 하지만 어떻게든 한 번은 부닥쳐야 할 순간이었다. 두려움에 조금 늦추려 해도 결국은 마주하게 된다. 보기 흉하게 어린애마냥 목청껏 울었지만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게 한바탕 호들갑을 피운 후에야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랑은 신혼 이후 거의 각방을 쓰다시피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내 옆은 지금껏 아이 차지였다. 잠들 때까지 같이 낄낄거리며 장난치다 꼭 껴안고 잠이 들곤 했는데.



전기장판으로 따끈하게 데워진 이불 속에 들어가니 딱딱했던 몸이 녹아내린다. 혼자 자니 널찍하고 좋기만 하다 생각한 것도 잠시 이내 곧 모든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안 그래도 넓은 방이 더 넓어 보인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온다. 밤마다 안고 자던 두 개의 인형중 하나만 기숙사에 가져가겠다고 아이는 말했다. 하지만 놔두면 볼 때마다 아이 생각이 날 것 같아 모두 꾸역꾸역 가방에 넣어줬다. 그냥 하나는 남겨두고 내가 안고 잘 걸 그랬나 보다. 분명 아이 냄새가 남아 있을 텐데. 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얼른 생각을 돌리려 머리를 흔들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를 되뇐다. 자기 전 이렇게 체면을 걸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며칠 전 한 기사에서 봤다.




수능이 끝나고 서울로 같이 면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솔직히 설마 했었다. 고민 끝에 제일 마지막에 지원한 곳이라 합격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1차 합격 후 면접 보러 갈 때도 이미 다른 곳이 합격선이라 그냥 여행 삼아 부담 없이 가보자고 아이랑 얘기했었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고 보니 수시 합격한 3곳 중 가장 나은 곳이기에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내 곁을 떠나 멀리 보내긴 싫었지만 나 좋자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순 없었다. 아이도 그전부터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어 했기에 남편과 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그게 아이의 미래를 위한 정답일 테니깐.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후 알 수 없는 슬픔에 점점 빠져들었다. 가끔 얄미운 짓을 할 때면 얼른 서울로 올라가 버려라 했다가도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비고 있으면 다가오는 날짜가 마냥 두렵기만 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어수선한 마음으로 지난 석 달을 보냈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방에 들어가 남겨진 짐을 정리하니 또다시 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코를 훌쩍이며 한동안 또 질질 짠다. 큰애도 집에서 차로 4시간이나 걸리는 곳에서 자취와 대학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그땐 뒤치다꺼리할 일이 줄게 되었다며 오히려 신나 했다. 작년 2월 입대하여 인제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올 때도 덤덤하기만 했다. 훈련소에서 눈물을 훔치는 몇몇 엄마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저 군에서 고생도 좀 하고 제발 철 좀 들어 나오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딸은 좀 다른가 보다. 막내라서 더 그런가. 알게 모르게 그 어린것에 내가 많이 의지했나 보다.




이틀을 그렇게 울며 지낸 뒤 다행히 더 이상은 질질 짜지 않는다. 아이 없는 공간에도 차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아니, 익숙해지려 노력 중이다. 생각보다 더 씩씩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 그사이 아이와 밤마다 나누는 전화통화는 새로운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서서히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서 독립을 시작한다.



keyword
코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구독자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