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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누구나 쳐맞기 전까진 계획이 있다

2025년 1월 17일(금)

by all or review Jan 25. 2025


실패한 계획 1, 음식


눈을 뜬 건 8시. 씻고 아침을 먹으러 뷔페에 올라 갑니다. 먹을 만한 것, 그러니까 밥의 퀄리티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죠. 단지 먹을 수 있을만한 것을 찾았습니다.


'제발 아무 것도 조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원물'을 먹고 싶었죠. 이를 테면 삶은 계란, 빵, 샐러드 같은 것들이요. 제가 입이 짧은 편이 아닌데도 이정도면,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나 싶었습니다. 정말 특이한 방식으로 조리해서 상상의 영역을 뛰어넘어버립니다.


당연히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만요. 제일 맛있는 건 초코 크로와상과 과일입니다. 이건 제 친구와 크루즈 여행 마지막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쳐 판별한 핵심적인 꿀팁입니다. 코스타 세레나를 타보신 분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만으로 향하는 첫 일출 바다는 구름이 많았고, 생각보다 잔잔했다

아침을 먹곤 바깥 구경을 한 번 합니다. 갑판에 나가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수평선을 보죠. 250해리 정도를 왔고 파고는 1.5m라는 정보들이 선내 방송을 통해 나옵니다.


아무리 이 큰 여객선의 선장님이 방송을 통해 직접 말씀하신다지만요. 그 딴게 귀에 들리겠습니까. 그냥 마냥 좋은 거죠.



이 땐 '강연+식사'만 반복될 줄 몰랐다


10시입니다.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러 대극장에 갑니다. 대극장에서 열리는 유홍준 교수님의 강연을 듣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됩니다.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또 밥을 먹으라니 식폭행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근데 유홍준 교수님 강의 진짜 재밌음. 약간 내 스타일임. 뜬금없는 유머가 개웃김.


불행 중 다행은 오늘 점심은 ‘채식데이’였기 때문에 점심은 나름 가볍다는 점이었죠. 태어나서 자발적으로 샐러드를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이 처음입니다. 소스도 뿌리지 않습니다. 너무 묽어서 뿌리지 않는 편이 더 나으니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음식들, 저는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오후 1시입니다. 그린대여소에 가서 환경재단이 준비한 물품들을 구경해봅니다. 고체 치약, 대나무 칫솔, 발포 세정제, 환경 관련도서 등등 열심히 준비하신 티가 팍팍 났습니다. ‘나뭇잎 스탬프’도 받았네요. 방으로 돌아와 친구와 수다를 좀 떨고, 어제 못 가본 곳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2시입니다.

조선일보 칼럼, 이슬아 작가와의 합작 서적, 그랜드마스터클래스 강연까지 남궁인 교수님 익히 많이 접했데, 실제로 보니까 그냥 사람이었음. 좋은 뜻임. 진짜 좋은 뜻임.
핵개인의 시대는 '맞지, 맞지'하며 고개 끄덕이다가 끝나버림..

남궁인 교수님과 송길영 작가님의 강연을 연달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들었다’과 봐야할 정도였습니다. 강연 사이엔 30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간식을 주기 때문이죠.


베이커리류와 과일이 푸짐하게 깔립니다. 차라리 식사보다 나을 정도였습니다. 지나가는 분이 스치듯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는 초코 크로와상이 제일 맛있어” 음... 이하 동문입니다.


친구는 헬스를 하러 갔고, 저는 송길영 작가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로 흩어집니다. 18시에 송길영 작가의 강연이 끝나면 9층 수영장 앞아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송길영 작가의 강연이 끝난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벌써 저녁 먹어?’


뷔페가 아니면 이런 정찬을 먹을 수 있다. 겉보기엔 그럴듯한데, 내실은 없다. 맛 없다는 말을 잘 돌려하는 중이다.

저녁은 19시 45분에 함께 온 다른 일행분들과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이 대부분 시니어(60세 이상)이시다보니 '음식이 입에 잘 맞느니, 어제 자는데 소리가 시끄러워서 방을 바꿨느니' 등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크루즈는 이런 모습이다


이해할 수 없는 크루즈 공연들.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이탈리아어로 말씀하시는데, 신기하긴 함.

저녁을 먹은 뒤엔 씻고 잠시 쉬다가 이탈리안 공연을 봅니다. 넬라판타지아로 시작해서 화려한 누님들의 춤사위로 끝나는 이 공연은 ‘크루즈’란 무엇인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위에선 환경재단 광고가, 아래에선 유흥의 노래가 풍기는 아이러니한 모습

여기서 잠시. 크루즈는 ‘향락 그 자체’입니다. 23시 30분에 시작하는 빙고와 카지노. 술과 면세점의 유혹 등등 저와는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저 장면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습니다. 착한 광고와 나쁜 음악이 한 공간에 이상하게 함께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걸 무작정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크루즈 자체를 즐기려고 오시는 분들도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 스스로는 ‘자본주의의 절정’으로 향하는 크루즈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노홍철과 이정모, 그리고 대만 계획까지


내일 프로그램이 담긴 신문이 왔습니다. 내일 오전 프로그램 강연자 목록을 흝다가 ‘노홍철’이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야, 너 여기서 노홍철 봤어?” “아니” “노홍철이.. 사람들 눈에 안 띨 수도 있나?” “글쎄. 박상영 작가도 알아봤는데 우리가 노홍철을 못 알아봤네.”


이정모 전 서울시립과학관장님의 강연과 노홍철의 강연을 듣기로 결정합니다.


드디어 내일 오후엔 대만에 내릴 겁니다. 내려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겁니다.  

   

내일의 계획을 모두 세우고, 잠에 들기 직전 시각은 23시 50분이었습니다. 넷플릭스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15분 보다가 졸려서 껐습니다.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날래?” “7시에 일어나서 씻고 바로 밥 먹으러 가서, 오전에 무료 마사지 한 번 땡기고, 9시에 이정모 관장님 강연부터 달리자” “오키”


복싱선수 알리가 얘기했던가요.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요. 처맞기 전까진.



오늘의 그린보트 꿀팁 3가지

1. 조리되지 않은 음식이 제일 맛있다. 특히 과일을 많이 먹자. 어른들도 인정하신 건 오렌지, 멜론 당도가 높다는 거다.

2.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면 가끔 유명인사와 만날 수 있다. 혹시 모르니 가급적 명함을 챙겨 다니자. 좋은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3. 크루즈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면 좋다. 실제 탑승객 연령대도 매우 높다. 4-50대 부부가 함께 가면 제일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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