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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Feb 19. 2023

행운과 불행이 만났다

불행에 단련된 사람은?

"너는 그렇게 화려한 앞모습을 하고 뒤통수는 없다며?'

불행이 행운에게 물었다.

"근데 너는 얼굴이 없잖아? 그러니 뵈는 게 없어 아무나 박고 다니지"

심술이난 행운이 불행에게 비꼬며 말했다. 뭔가 밀리는 느낌이 든 불행이 말했다.

"너의 그 화려한 모습에도 널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잖아. 게다가 변덕이 심해서 널 알아봐도 빨리 도망쳐 버리기도 하잖아."

불행의 말에 행운이 자신을 변호했다.

"나는 너처럼 아무에게나 다가가 들이받지 않지. 그리고 나는 뒤통수가 없어 뒤끝이 없어. 그러니 사람들한테 머리채를 잡힐 일도 없어."

불행이 행운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얼굴이 없어 아무나 들이받지만 현명한 인간들은 내 존재로 인해 극복이란 의지를 갖고 더 발전했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


그새 말싸움에 지친 행운과 불행은 끝없이 이어질 논쟁을 그만두고 싶었다. 행운과 불행이 동시에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합체가 되면?"

 둘은 까르르 웃으며 서로의 볼을 또 동시에 꼬집었다.

"우리는 섞일 수 없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행운과 불행이 함께 온다고 하면 섞여서 중성화될 거라고 생각할 거야. 마치 우리가 혼합 용액처럼 섞여 중성화되면 평범한 일상들이 될 거라고 생각할 거야. 우리가 물과 기름처럼 하나로 섞일 수 없는데."

"앞모습은 행운 뒤는 불행. 우리가 합체를 해도 우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사람이 뒤늦게 행운을 깨닫고 뒤통수를 잡으면 불행인 거네".

"그런데 행운 너를 놓친 걸 알고 달려와 뒤통쉬를 붙잡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내가 사라지는 건데"

불행은 행운 뒤에 붙어 합하면 자신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꼭 뒷북치면서 네 뒤통수를 휘어잡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내가 여태 발 빠르게 사라지곤 했던 이유도 내가 대머리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어. 이제  그 사람들은 너 불행을 잡는 거지."

"정말 그런 사람이 많다고?  우리 증명을 해보자."


둘은 가장 불행한 사람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그런데 행운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런데 이미 불행한 사람이 나를 놓치고 뒤늦게 너를 붙잡으면 어쩌지? 너무 불쌍하잖아."

"계속 불행한 거지 뭐. 이미 불행하니 별감흥도 없을 거야. 행운 네가 저 사람이 안타까우면 멀리서부터 요란하게 걸어가. 널 알아볼 수 있도록 말이라도 걸어보던가. "

고개를 끄덕인 행운이 가장 불행해 보이는 남루한 차림으로 터벅터벅 힘겹게 걷는 사람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행운이 그 사람에게 눈짓을 했지만 고생 끝에 머리도 이빨도 다 빠져버린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답답한 마음에 행운은 앞을 가로막았다. '이러면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보겠지'.  잠시 멈춰 고개를 드나 했지만 그 사람은 고개를 더욱 푹 숙이며 말했다.

" 앞을 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옆으로 비켜났다.

허탈한 마음에 행운이 말을 걸었다.

"걷기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 드릴까요?"

"말씀은 고맙지만 혼자가 편해요."

그 사람은 행운을 지나쳤다. 잠시 후 뒤를 돌아봤지만 행운의 뒤통수도 잡지 않았다. 행운은 다행이라 안도했고 불행은 그 사람이 늦게라도 달려와 머리채를 잡아챌 수 있다는 생각에 움찔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앙상한 머리카락을 날라며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행운과 불행이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손이 없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행운을 붙잡지도 불행의 머리채를 낚아채지도 못했다.

머쓱해진 행운이 불행에게 말했다.

"저 사람에게 우린 그냥 잡을 수 없는 존재였네. 하필 저런 사람을 골랐지"

"그러니까 제일 불행보인거지. 내가 하도 여러 번 들이받아 기억에 남는 사람인데 저 사람 그렇게 나한테 들이 받히고도 날 보면 피하질 않았어. 피할 힘도 없었는지. 오늘도 네가 앞에 없었으면 또 들이받을 뻔했네"

  손이 없는 사람은 발 밑의 장애물을 피하며 천천히  걸었다. 사실 그 사람은 멀리서 행운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고 행운의 향기를 맡고 살짝 고개를 들었었다.  코앞에 다가왔을 때 행운을 멈춰 세우고 텅 빈 인생을 꽉 채우게 대박 나게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행운의 뒤에서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그 사람은 유일한 자랑이던 비단결 같던 머리카락 마저 우수수 빠져 의기소침해서 다른 이의 머리카락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행운도 뒷머리가 없단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사람은 눈에 보인 그것이 불행의 머리카락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불행에게 받히지 않으려 행운을 비켜 서  더 고개를 숙였다.

'행운과 불행이 한 몸이었구나. 어쩐지.  행운을 만났으나 그를 붙잡지 않았으니 불행도 이젠 나를 지나치게 된 것이다. 행운을 덥석 받지 않아 다행이다. 행운은 잠깐이지만 불행은 모든 걸 삼켜 버리니까.   불행을 피했으니 오늘 나는 운이 좋았다.'

'행운과 불행이 한 몸이었구나. 어쩐지.  행운을 만났으나 그를 붙잡지 않았으니 불행도 이젠 나를 지나치게 된 것이다. 행운을 덥석 받지 않아 다행이다. 행운은 잠깐이지만 불행은 모든 걸 삼켜 버리니까.   불행을 피했으니 오늘 나는 운이 좋았다.'

 그 사람은 새삼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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