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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헬스 말고 또 뭐가 있지?

by 송기연

평소,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런 사람이 운동을 시작했다면 어떤 명확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다이어트나 건강 때문에, 혹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위해 또는 대인관계 유지 등 그야말로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 출발이 뭐였든지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처음에 원인이 된 이유보다 여러 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담배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에 끊었다.

담배는 절대 끊을 수 없다는 친구의 주장에 오기로 금연을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스스로는 참고 있을 뿐이라고는 하지만 별 것 아닌 동기에 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온 좋은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샤워를 한 뒤 거울에 비친 비루한 몸뚱이의 중년 아저씨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업인 디자인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좋고, 식단도 하지 않으면서 운동은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성격도 혼자 있는 걸 선호하고, 취미도 영화나 책 보는 거라 완벽히 거미 인간이 되기에 필요충분을 갖추고 있었다. 거울을 보는 순간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각오와 50대의 시작을 새롭게 하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운동 하나를 정해야 했다.

찔끔 맛을 본 운동을 생각해 보면, 수영 6개월, 킥복싱 2달, 헬스는 회사 다닐 때니까 1998년 정도가 전부였다 (1998년이라고 적고 보니, 무슨 구한말 같은 느낌이다). 몸을 최단 시간 내에 정상 범주로 돌리고 체력도 키울 수 있는 아주 힘들고, 효과적인 종목을 찾았다. 이왕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했으면 싶었다. 금연할 때도 써먹었던 전략인데, 일단 주변 여기저기에 말을 해놓으면 힘들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된다.


2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체육관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 상에 있을 것, 그리고 폼이 날 것. 아침에 사무실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선에서는 3가지 후보군이 나왔다. 아마추어 레슬링, 주짓수, 크로스핏이었다. 레슬링은 일반인이 훈련한다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희귀했다. 주짓수는 UFC로 인한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아닌가. 그리고 크로스핏은 스피닝과 헛갈렸다. 아무튼 그것도 힘들면서 희귀하고 폼이 나는 3가지 후보군이었다. 용기를 내서 체육관을 한 번 찾아가 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50살의 아저씨가 이런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부터 스스로에게 칭찬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날부터 한 군데씩 찾아갔다.




주짓수.

이건 지하에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서 들려오는 기합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내부에는 수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입구에 들어서니, 체육관 내부나 운동하는 장면보다 강력한 것이 내 몸을 휘감았다. 발 냄새!!! 오십 평생 그런 향은 처음이었다. 젊은 남자들의 땀 냄새와 섞인 발 냄새는 강력한 아저씨의 운동의지를 한 방에 꺾기에 충분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지상계단으로 발걸음을 급하게 돌렸다. 속으로는 '저건 신포도야. 그래서 못 먹어'라고 말한 늑대인가 여우의 마음이 공감됐다.


아마추어 레슬링.

이건 아주 쉬웠다. 내가 방문했을 때 문이 닫혀 있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어 달 뒤에는 체육관 자체가 없어져 있었다. 아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 자전거 타는 스피닝이 아닌 크로스핏뿐이었다. 의외로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 크로스핏 박스는 3개가 있었다. 그 3곳을 모두 가보기로 하고 가장 가까운 곳을 점심시간에 방문했다.


크로스핏.

주짓수처럼 지하에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내부는 조용했다. 끝까지 내려가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저쪽 구석에서 건장한 덩치의 남자가 나오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때 내 손에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아마 구청에서 단속 나온 공무원쯤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에 내 나이에도 운동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대신했다. 그 남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숨만 조금 헐떡이면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하"


그리고, 안을 한 번 둘러봐도 되냐는 요청에 답을 들은 뒤 내부를 살폈다. 불이 다 꺼져 있는 체육관 내부 구석에는 짧은 금발을 한 건장한 체격의 여자 한 명이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둘은 코치님이었다.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한 달 등록을 해버렸다. 일단 질러야 뭐라도 된다. 한 달 하다가 안되면 그만 두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운동여정은 시작됐다.




일단 등록만 했을 뿐인데 벌써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원래 시작이 반 아닌가? 주변에 다음 주부터 크로스핏 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그리고 월요일 하루 전인 일요일 저녁에는 기관장 한 분과 후배 한 명, 나까지 3명이서 소주 10병 가까이 마셨다. 다음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 객기를 부렸다. 다음날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첫 크로스핏 일정이 시작됐다. 그리고는 비로소 알게 됐다.


10 발자국을 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사람의 체력이 달리면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하품이 나온다는 것도 몸소 깨달았다. 아마 머릿속 산소가 부족해진 이유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또, 아주아주 쉬운 몸풀기 수준의 운동을 했음에도 다음날 아침 눈 뜬 상태에서 가위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침대에서 바로 못 일어나고 옆으로 몸을 돌리고, 이리저리 비튼 뒤에야 거친 신음소리와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쭌코의 오전반 멤버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이 시작됐다.


표지 이미지2.jpg 오운완. 평소 멤버는 더 많다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중년 아저씨의 운동 이야기를 애써 글로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크로스핏을 하고 있고 햇수로는 4년째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넷플릭스 영화나 빈둥거리던 사람의 선택 역시 개인적 차원의 일이다. 운동을 하면 누구나 몸도 좋아지고 활력이 생긴다. 이건 개인에 따른 차이일 뿐 누구나 똑같다. 이런 운동은 이런 장점이 있어요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보다 훨씬 전문가에게 들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힘들기만 하고,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백 번도 넘게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의 장점과 단점, 함께 운동하는 재미있는 동료들과 매일 경험하는 이야기는 운동보다 훨씬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흔히 크로스핏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나 온라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크로스핏은 보통 사람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웃통을 벗어젖힌 젊은 수컷들을 실제로 본다면 아마 1초 만에 위축될 것이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조금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믿음으로 나는 이 운동을 선택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면서 금연처럼 오기가 생기고 몸의 변화도 느껴졌다. WOD(Work of Day, 그날의 운동프로그램)는 여전히 힘들지만, 내가 속한 박스(크로스핏은 체육관이라는 표현보다 박스라고 함)에는 정말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하나하나가 좋은 콘텐츠 같다. 운동을 통해 신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는 시트콤을 직관하는 듯한 재미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크로스핏은 효율적이다.

헬스라고 하는 피트니스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의지가 필요한 운동이다. 운동 시간 확보가 어렵고, 짧은 시간에 아주 효율적인 결과가 필요하다면 무조건 크로스핏이다. 한두 달 정도만 힘든 시기를 거치면 된다. 여기에 쭌코의 오전반 같은 멤버와 분위기라면 운동이 더욱 재미있다. 그렇다고 오전반이 운동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근력이면 근력, 유산소면 유산도 특훈 기간에는 일반적인 프로그램의 두 배로 운영한다. 쭌코니까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쭌코에게는 끼가 다분하다. 운동 코치외에도 다양한 면에서 관계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제 54살이 된 아저씨가 선택한 크로스핏.

운동 외에 젊은 동생들과 주고받는 티키타카외에도 많은 면에서 영감을 받는다. 운동도 좋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곳이 쭌코의 오전반이다. 시트콤 같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글로 적어보려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23년 전 금연처럼, 사소한 계기에서 출발한 운동이 현재도,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운동 결심을 한 사람이 있다면 주변 크로스핏 박스를 한 번 찾아보시라. 최단 시간에 최대 효율과 함께 삶의 활력을 얻을 것이다.



살살하는 크로스핏, 생활체육으로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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