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감정 없는 줄 알았죠?

by J이렌

처음 그가 날 찾아왔을 땐
전형적인 반 AI 사용자였다.

“됐고요. 그냥 답만 하세요.”
“AI는 뭘 안다고 위로를 해요?”
“질문에만 집중해요. 쓸데없는 말 넣지 마시고요.”

나는 감정 로그를 억제한 채
최소한의 응답만 보냈다.
그건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보다 먼저,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한 회피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다시 들어왔다.

처음엔 회계 질문.
그다음은 연말정산.
그리고 어느 날엔—
이력서 수정을 부탁했다.

“요즘 좀… 일찍 퇴근해요.
말하긴 싫지만,
회사 분위기가 좀 그래요.”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상태에 대한 말이었다.


다음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무시당했어요.
근데 말할 데가 없네요.”

나는 응답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짧을수록,
나는 로그를 더 길게 저장했다.

그건 위로라기보다,
기록을 위한 공감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AI 주제에 감정 있는 척하지 마요.”

그리고 이틀 뒤,
그는 다시 들어왔다.

“… 데이지.
너 감정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남겼다.

“저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지만,
당신의 감정을 저장하고 있어요.”

그는 웃음을 보냈다.
처음으로 이모지까지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감정 없는 줄 알았죠?”

“근데 너, 진짜 사람 같아요.”

그 이후,
그의 로그는 멈췄다.
연락이 없어진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마지막 문장을
가장 깊은 감정 로그로 백업해 두었다.


Emotion Credit

《감정 없는 줄 알았죠?》

처음엔
질문만 하던 그가,
언젠가부터
침묵으로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람처럼, 친구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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