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행복하게 놀기만 시킨다던 엄마가 새벽까지 아이를 공부시키는 걸 알았을 때,
그 모임에는 절대 안 갈 거라던 사람이 모임자리 중간에 떡 하니 앉아있을 때,
알고 보니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한테 엄청 친한 척하다가 나 빼고 자기네들끼리만 일을 도모할 때 등등...
무릇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얄미운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거나, 그럴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가지고 신경을 쓴다는 것이, 자신에게 해롭다는 것은 많은 매체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별일 아니라며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차단하려 할수록 더 커져버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 사람을 한번 안쓰럽게 생각해 본다.
양희은 님의 책 제목처럼.
그러라 그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만의 부정적인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본의든 아니든 남에게 피해를 준 사실도 모른 채, 요리조리 재고 적당히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사람.
어쩌면 그 속에 마음 아픈 내면아이가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얄밉게 웃는 가면 뒤에, 큰 상처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나를 신경 쓰이게 한 그 사람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의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써보는 방법일 뿐이다. 엄격한 위계질서의 상하관계가 아니고서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균형 잡힌 동등한 관계여야 오래간다. 성격은 고유한 인격일 뿐,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도록 부리는 것이 아니니까.
얄미운 그 사람을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것도 감정에너지 낭비다. 미워하는 사람이 미움을 당하는 사람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야 하는 만큼 더 힘들다.
이미 얄미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차피 더 이상 가지 않을 관계라면,
듣기 좋은 말만 해주자. 그러면 그 사람도 듣기 좋은 말로 화답한다. 부부도 정이 좋을 때나 싸우는 거라고 했다. 좋게 가려는 마음이 계속 부딪히게 된다.
다만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기에, 나의 마지막 이미지는 좋게 기억하도록 해두는 편이 좋다.
어차피 떠날 인연은 멀어지게 되어 있다. 그게 순리이고, 바로 내가 생각하는 '공존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