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소서노의 아들 비류
“온조는 제 방에 있을 게야. 당연히 유모도 함께 지.”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 당연히 왜 묻는지 묻지도 않는다. 어젯밤의 일을 생각한다. 내가 강대업과 합체된 사람이라는 걸 숨겨야 하는 한, 말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일의 전모를 알아낸 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그림을 만드는 일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결정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다시 묻는다.
“동부여에서는 무슨 요청을 하는 것입니까, 어마마마?”
피, 왕 조기교육을 시키는 게 누군데.
“궁금하옵니다. 어마마마.”
“옥저에서 노략질을 일삼는다는구나.”
“그러니 군사를 내어달라는 거예요, 어마마마?”
“그래.”
“동부여를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옵니까? 그래서 아바마마께서는 군사를 내어주기로 하신 것이옵니까?”
소서노가 놀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 대답한다.
“그렇다는구나.”
“동부여는, 우리 고구려와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나라이옵니까?”
다시 놀라는 소서노.
“아니다.”
분명한 대답.
“어찌 그러하옵니까?”
나는 듣고 싶다. 소서노의 원대한 포부를. 새나라를 건설하면서 소서노가 가진 원대할 꿈에 대해.
바로 이것! 소서노가 마땅히 가졌을 꿈! 내가 꾸고 있는 이 꿈!
나는 고개를 끄덕여 소서노의 의견에 불분명한 내 의견을 드러낸다. 또렷하기엔 아직 어리므로. 그런 몸을 가진 소년이므로.
“왜……안 되는 것이옵니까?”
“고조선을 무너지게 만든 한나라가 저리 강건하게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고조선의 후예들이 제각각 제가 잘났다고 우후죽순 있어서야 어찌 저 나라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눈을 빛내며 소서노의 말을 듣고는 묻는다.
“힘을 합치면 되는 거 아니옵니까?”
잠시 침묵하며 나를 보는 소서노.
“합치면 물론 안 될 것도 없지. 그런데 비류야.”
“네, 어마마마.”
“같은 균형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란다.”
어려운 말.
이것이 눈높이 설명. 나는 감탄한다.
“네, 어마마마. 소자 또한 그리할 것이옵니다.”
나는 강대업으로서, 소서노의 아들 비류로서 다짐을 담아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우리 비류라면 마땅히 그래야지! 그럴 수 있을 것이야!”
흐뭇한 미소가 소서노의 얼굴에 만연하다. 소서노가 두 팔을 벌려 이리 오라 하는데, 나는 묻는다.
“그런데 왜 아바마마는 그런 결정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소서노가 벌렸던 두 팔을 내리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건…….”
“그곳에 대왕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옵니까?”
소서노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알고 있었더냐?”
“예, 어마마마.”
“어찌?”
“어떻게 알았지……? 누구한테 들었는데……음……기억이 잘 안 나옵니다, 어마마마.”
얼렁뚱땅 어린아이 방식 넘어가기.
“그들이 할머니를 볼모로 삼은 것이옵니까?”
“그런 셈이겠구나.”
불확실한 추측의 말.
“하온데, 어찌하여 어마마마는 반대하시는 것이옵니까?”
소서노가 잠시 나를 응시한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갈등이 느껴진다. 무엇을 갈등하나. 내가 고주몽의 동부여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여겨서? 그곳에 고주몽의 첫 부인 예씨부인과 그 아들의 존재를 모른다고 여겨서?
어쩌면 지금 소서노는 예씨부인의 존재도, 유리의 존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취한 조치라는 것은 무엇일까?’
“동부여의 이번 행보는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염탐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그리고요?”
“군사를 청하면서 대왕과 나의 관계 또한 확인하려 할 것이다.”
“왜요?”
소서노가 웃었다.
“어마마마 왜요?”
“……비류야.”
말을 멈추고 나를 부른다. 나는 대답했다.
기분 좋은 칭찬. 하지만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
“어마마마.”
“오냐.”
“대왕께서 어마마마의 말을 듣고 군사를 보내지 않으실까요?”
“아닐 것이다.”
“그럼 어찌하옵니까?”
“하하하.”
소서노가 웃는다.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단다, 비류야.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되고.”
강대업으로서도 어려운 말이다, 이것은.
“네, 어마마마.”
잠시 생각에 빠진다. 소서노가 그런 나를 보더니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어마마마.”
“오냐.”
“청이 있사옵니다.”
“말해 보거라.”
“무예를 더욱더 연마하고 싶사옵니다.”
“그리하거라. 지금 스승에게 더욱 열심히 연마하거라.”
소서노의 눈이 커졌다. 대답은 빠르게 나온다.
나도 안다. 대왕 고주몽. 활로는 세상에서 당할 자가 없고, 지략으로도 세상의 선두다.
“지금 배우는 스승이 부족하다 여기는 것이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은 스승에게 배우고 싶사옵니다. 칼이면 칼, 창이면 창, 뭐든 뛰어나다는 고수들에게 배우고 싶사옵니다.”
소서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우리 비류가 이리 욕심이 많은 줄 미처 몰랐구나. 내가 몰랐어! 하하하!!”
“정말이옵니다. 어마마마.”
아홉 살 투정을 담은 말투로 나는 말한다. 많이 생각했다. 이 시대 최고 무예인이 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비류가 된 내가 갖춰야 할 마땅하고도 기본이어야 한다. 또한 강대업으로서도 그래보고 싶다. 21세기 강대업이 해보지 못한 일. 어릴 적 태권도장에서 겨우 1단 검은띠를 매어 본 게 최고의 경험이었던 내게도 무술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다만 이 시대에 무술은 그저 취미일 뿐.
“알았느니. 내 이 나라 안의 숨겨진 고수들을 찾아낼 것이야. 이 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있다면 찾아 네 스승을 만들 것이야.”
“신나옵니다, 어마마마!!”
진심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펄쩍펄쩍 뛰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한다.
“어마마마 감사하옵니다!! 고맙사옵니다!!”
나는 일어나 통통통, 방안을 뛰었다. 하하하, 소서노가 오래 웃었다. 어머니의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서. 유모에 대한 말을 하기 위해서.
“자, 이제 공부하러 갈 시간이구나.”
그런데 먼저 소서노가 말했다.
“예, 어마마마. 하온데, 어마마마?”
“오냐.”
“그래. 유모."
이상하다고 여기는 역력한 표정의 소서노. 하긴 비류가 물을 질문으로는 적절치 않다. 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째째를 시켜 물을 수 없고, 유모에겐 더더구나 물을 수 없고.
‘아, 오이에게는 물어도 되나?’
“어찌 그것이 궁금한 것이야?”
계획을 위해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필수. 내가 보았던 유모의 어젯밤 일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10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