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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뭐해요, 유모?”

(11)소서노의 아들 비류

by 이기담 Mar 21. 2025

  내 방 안의 함 뚜껑을 연다. 덮은 흰색 비단 천이 먼저 보인다. 그것을 걷어내자 보이는 알 수 없는 물건들. 하나씩 꺼내 본다. 


 청동거울. 목각인형, 다양한 형태의 돌들, 그리고 천에 싸인 방울 다발. 


  목각인형은 남자 형상이다. 정교하지 않으나 제법 얼굴의 선들이 정교하게 드러나 있다. 

  청동거울을 들어서 본다. 강대업으로 박물관에서 보았던 청동거울의 불분명한 반사면에 비류의 작은 얼굴이 비친다. 이렇듯 실물을 손으로 만져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흐릿한 청동거울 속의 비류의 얼굴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청동거울을 내려놓고 포도송이 같은 올록볼록 둥근 단면들이 보이는 방울 다발을 싼 천을 벗겨냈다.

  “차르랑…….”
  방울들이 일제히 소리를 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살핀다. 유모가 가까이 있다면 들을 수 있는 소리. 다행히 기척은 없다. 방울들은 가운데 기둥 둘레로 포도송이 알들처럼 달려 있다. 다시 방울을 조심스레 천으로 감싸놓고는 함 안을 들여다본다. 

  텅 빈 함 안. 

  대체 이것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왜 내 방에 있는가? 21세기 강대업이 아는 지식으로 이 물건들이 의미하는 건 미신적인 도구들이라는 것. 무당이 신을 받들고, 신에게 답을 얻는 도구로 쓰이는 것들이란 것. 그런데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이런 것들이 이 시대에도 있었다니 기이한 느낌이 든다. 긴 시간 동안에도 변치 않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하긴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특징은 지금의 시대나 강대업이 살았던 시대나 달라진 게 없으니 인간에게 의미하는 나름의 상징적 행위나 물건들에게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어떤 힘이 있을 터이다. 

  다시 의문에 집중. 

  ‘이것들은 왜 내 방에 있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한 가지는 유모와 관련이 있다는 것. 유모가 넣었거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유모는 알고 있다는 것. 유모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그것을 사내에게 주었다. 

  다시 함 속에 차례로 물건들을 넣는다. 가능한 한 있었던 그대로의 위치와 형태를 유지하려 애를 쓰며. 쉽지 않다. 목각이 먼저였나? 방울이 먼저였나? 아니면…….

  그때 째째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서 뭐해요, 유모?” 


  헉! 나도 모르게 쑤셔 넣듯 한꺼번에 넣어버리고는 함의 뚜껑을 닫는다. 다시 들리는 째째의 목소리.

  “뭐 하냐니까요? 유모?”

  나는 재빨리 함을 닫으며 되돌아섰다. 어느새 열린 문 사이로 유모가 보이고 그 뒤 째째도 보인다. 

  “비류 왕자님 뵈러 왔지.”

  태평스러운 유모의 목소리.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서 방 앞으로 간다. 

  “왜요?”

  표 안 나게 묻기.

  “대왕께서 찾으십니다.”

  그때 드는 의문. ‘오이가 아니고 유모가 왜?’ 대왕의 명이라면 거의 모두 오이가 처리하는데. 

  “무인각 앞으로 가 보시지요.”

  “왜 오이공이 안 왔어요?”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하여 내가 그 소식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비류왕자님.”

  “아.”

  수긍되는 설명.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째째야 가자.”
  유모를 뒤에 두고 무인각으로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의구심이 뒤에 남는다. 

  ‘유모가 내 방에 들어가 함을 열어보면 어떡하지?’ 

  ‘내가 보았다는 걸 알게 되면?’     




  무인각을 향해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내게 있는 것이 분명한 신이한 힘에 대해. 정리해 본다. 


  하나, 스크린에 나타나듯 허공에 글씨가 보이는 것. 


  내가 본 건 21세기에 존재하는 역사적 기록들이었다. 

  여기서 의문. 이 능력이 내게 가진 능력이라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21세기에도 남아있는 기록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진짜 사실로 있었던 기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 


  둘, 증강현실을 보는 것처럼 과거의 일을 보는 것. 


  여기도 의문. 내가 경험한 것만 볼 수 있는지, 내가 빠진 상황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궁금증은 연이어 계속된다. 

  ‘이 능력은 내게 계속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원하면 쓸 수 있는 능력인가?’

  소서노 앞에서 경험한 증강현실 같은 상황에 대한 염려도 있다. 현실과 증강 장면들이 엉키면서 혹여 정신적 혼란 같은 건 없을까? 하는.

  “챙그랑!”

  “휘이익!”

  “이얍!”

  무인각에 가까워지자 요란한 소리들이 귀를 휘어잡는다.

  “저 소리가 무엇입니까?”

  촐랑거리며 내 뒤를 따르던 째째의 말. 나는 대답 대신 조용하라, 손을 들어 제지한다.

  “챵!”

  “챙!”

  “휘리릭!”
  무사 넷이 무인각 너른 앞뜰에서 각각의 무기로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칼을 든 자, 창을 든 자, 쇠뭉치를 든 자, 그리고 단도와 표창을 든 자. 

  나는 놀라 나무 같은 붙박이가 된다. 어지러운 듯하나 그들의 대결은 현란하다. 금방이라도 그들 모두가 서로의 공격에 베이고 찔리고 맞아 죽어버릴 것만 같다. 네 명의 공격들이 너무 어지럽고 순식간이어서 눈으로 좇을 수가 없다.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네 명의 얽힘이 일순간이 일들이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는 째째. 

  “쉿!”

  이번엔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조용하라 명하고는 대결들을 살핀다. 

  “챙!”

  “채챙”

  “퍼벅!”

  “슈우웅!”


  끊임없이 계속되는 창과 부딪치는 칼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바람을 가르는 표창 소리.


  칼을 든 자는 마른 듯한 몸의 키가 큰 사내다. 공격해 들어오는 창이며 표창까지 현란하게 막아내고 들어온 공격을 방어하고 방어를 다시 반격하는 움직임이 홀로그램 속 빛의 움직임처럼 재빠르다. 

  쇠뭉치를 든 자는 칼을 든 자보다 키는 작으나 거구다. 몸무게로 친다면 칼을 든 자보다 10킬로그램 정도는 더 나갈 것 같다. 커다란 쇠뭉치를 휘리리릭, 휘저으며 공격한다. 칼이나 창을 든 자보다 움직이는 반경이 커서 빈틈 또한 많아 보이나 거구의 움직임에는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창을 든 자의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 21세기의 시각으로 보면 헬스로 다져진 다부진 몸. 창이 꽂힌 긴 창자루를 휘저으며 날 듯 공격과 방어를 이어간다. 

  표창을 든 사내는 키가 작다. 날렵하게 세 명의 사내들을 뒤쪽에서 원을 그리듯 공중제비를 하며 창을 날렸다. 표창의 공격 목표는 칼과 창, 그리고 쇠뭉치를 든 사내들의 몸이 아니라 그들이 휘두르는 칼에 있는 듯 움직이는 무기들에 표창이 날아가 부딪친다. 

  각각 자신이 가진 무기에 맞춰 움직이는 반경이 다르고 방어와 공격의 모습 또한 다르다는 걸 알겠다. 나는 말갈 사내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때처럼 눈 깜빡이지 않고 대결을 지켜본다.

  그 순간!

  “휘이익~”

  바람을 가르며 표창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어!”


  “안됏!”

  동시에 터지는 비명소리. 내 마음속에도 비명이 터졌다.


  ‘뭐얏!’

  다음 순간 터지는 또 다른 비명!

  “아악!”

  “악!!”


  “왕자마마!!” 

  “비류얏!!!”


<12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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