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소서노의 아들 비류
한꺼번에 터진 비명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하겠는데 내 몸이 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고, 째째가 그런 나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내 앞에 째째가 쓰러져 있다. 어깨를 부여잡고서.
“째째야!”
“괜찮습니까, 마마!!”
내 말과 오이의 말이 동시다. 오이가 나를 향해 달려와 내 몸을 살핀다.
아직 모르겠다. 내가 다친 것인가, 아닌가. 확실한 건 째째가 다쳤다는 것! 확실한 건 마지막 순간에 째째가 내 앞으로 튀어나와 나 대신 자신의 몸으로 표창을 막아냈다는 것!
“째째야, 괜찮으냐?”
“으허엉.”
째째가 울음을 터트린다.
“다친 데가 없으십니까?”
오이가 나의 몸을 살핀다. 괜찮은 거 같다.
“째째가 다쳤어. 째째가 나 대신에 다쳤어요.”
“제법이구나.”
고주몽이 어느새 앞에 와 있었다. 나에 대한 것인지, 째째에 대한 것인지 분간 가지 않은 말. 시선이 나에게 멈춰 있으니 나에게 한 말인가?
“잘 피하였다.”
나에게 하는 말.
괜찮으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째째가 흐어엉, 울던 울음을 뚝, 그쳤다. 칭찬받을 일을 하지 못한 거 같다. 그런데 고주몽이 칭찬한다. 아무튼.
“죽여주시옵소서!”
표창을 쥔 키 작은 사내가 대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거라. 일부러 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하오나!”
표창 든 사내를 보다 시선을 든다. 두어 발자국쯤 뒤에 세 사내가 시립해 있다.
“데려가서 치료해 주거라. 깊진 않을 것이나 덧나지 않게 잘 치료하거라.”
오이가 째째에게 일어나라 말한다. 부축하지는 않는다. 째째가 나를 본다. 나는 째째의 왼쪽 어깨에 꽂혀 있는 표창을 본다. 고주몽이 깊진 않을 것이다, 말하였으나 표창은 제법 깊숙이 박혀 있다.
“치료하고 있어.”
‘내가 갈게.’ 나의 뒷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째째가 고개를 끄덕인다. 울음의 끝은 남아있으나, 한결 의젓해진 표정이다. 고주몽이 내게 말한다.
“따라오거라.”
대왕이 움직이자 표창 사내가 일어섰다. 고주몽은 네 명의 사내들이 자신이 가진 무기들을 제각각 손에 든 채 시립해 있는 앞으로 가 섰다.
“보았느냐?”
“예, 아바마마.”
“어떠하더냐?”
그들을 평가하라는 것인가? 단순히 소감을 이야기하라는 것인가?
“대……단 한 듯하옵니다. 아바마마.”
얼버무리듯 대답한다.
“네가 청을 하였다고?”
“……?”
“어마마마께 여러 가지 무술을 배우고 싶다 청을 넣지 않았더냐?”
아! 그랬다. 나는 그러했다, 말한다.
“하여 내 시험을 하고 있었느니라. 어떠하냐? 저들을 네 스승으로 삼을만하겠느냐?”
“잘……모르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진심이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안다 생각하고 하는 질문인가? 강대업도 모르겠다.
“그럴 테지.”
잠시 네 사내를 보는 고주몽. 그가 마저 말한다.
이건 너무 빠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보다 빠르다. 세계의 흐름을 선도한다는 대한민국의 ‘배달 문화’ 보다 빠르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해 놓은 것 같다.
‘소서노의 부탁이었나?’
‘어머니 소서노의 말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이 사람들은 고주몽이 선택한 사람들인가?’
의문이 꼬리를 무는데, 고주몽이 그들에게 명한다.
“예를 갖추어라.”
차, 착! 바른 자세를 더 바르게 하는 소리.
“예! 대왕!!”
네 명의 사내들이 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들에게 함께 목을 숙여 예를 받았다. 스승으로서의 예우와 부하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하는 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사내 네 명이 소리 합쳐 말했다.
“왕자마마를 목숨으로 모시겠사옵니다!”
“온 마음을 다할 것이옵니다!”
기쁘기보다 얼떨떨하다. 고주몽이 네 명이 사내들에게 쉬라 손짓으로 명했다.
“헌데 말이다. 비류야.”
“예, 아바마마.”
“저들에게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아바마마?”
나는 동그란 눈으로 고주몽을 본다. 어머니 소서노에게 동부여의 도움 요청 내용에 대해 들었고, 고주몽이 동부여의 청을 받아들여 군사들을 출정시킨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이 사안에 대해 소서노와 고주몽의 부딪침이 있는 것도 알고 있으나 지금 고주몽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동부여로 우리 고구려 군사들이 출정할 것이다.”
“그러하옵니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협보와 마리가 갈 것이야.”
나는 여전히 고주몽의 말을, 말이 품고 있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네가 왕자로서 나의 위치를 대신해야 하느니. 할 수 있겠느냐?”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아홉 살 내게 대왕 고주몽을 대신해 군 지휘권을 행사하라는 것인가? 21세기로 치면 해외 파병하는 군사들의 통치권을 아홉 살 어린 내게 주는 것? 물론 보필자는 있다. 동부여에서부터 탈출할 때 함께 온 절친 마리와 협보.
고주몽은 무엇을 원하는가? 어머니 소서노는 이 일을 알고 있을까? 고주몽은 소서노의 동의를 받은 걸까?
생각해 본다. 가능한 한 신중히, 그러나 재빨리. 강대업이 합체된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전쟁터의 경험은 미래의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마리와 협보에게 나는 철저하게 보호될 것이고,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전쟁터란 누구의 생사도 보장할 수 없는 곳.
“하오면 저 스승들에게 저는 언제부터 무술을 배우는 것이옵니까?”
대답 대신 질문.
나는 그들을 보았다. 분명 대왕이 편히 하라, 일렀는데 그들은 여전히 부동의 결기에 찬 자세다. 나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나에 대한 것인지 고주몽에 대한 것인지 모르겠다.
빛 덩어리 속에 내가 있다. 빛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온갖 총천연색 아름다운 빛 축제인데, 그 속의 나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아아악!”
“으으윽!”
할 수 있는 모든 비명, 할 수 있는 모든 애걸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고통.
“아윽, 제발!”
생각났다. 그때도 그러했다. 내가 죽은 뒤, 회귀하기 전에도 이런 고통을 겪었다. 겪어야 했다.
잠들기 전 했던 생각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자기 전 회귀하기 전 만났던 ‘빛덩어리’에게 불만을 한 보따리 던졌었더랬다.
‘아, 능력이 뭔지 친절히 알려주면 안 되나? 내가 가진 능력들 전부가 뭔지 다 알려주라고. 이렇게 무작정, 막연하게 기다리게 하는 건 불공평하쥐!’ ‘그리고 모든 능력은 원할 때만! 꼭 필요할 때만! 어? 그러는 걸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라고…….
사실 그 빛덩어리가 내게 이런 능력을 준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따지듯 대거리를 했었다.
“그래서야? 어? 다시 회귀에서 데려가려고 이러는 거야? 이러는 거냐고!!”
고통이 더 심해진다.
“아아악! 그만!!!”
옥죄이던 심장이 일순 터지는 듯한 충격이 왔다. 그리고. 번쩍 떠진 눈.
나는 다음 순간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어둠이다.
잠시 어둠이 익어진 뒤에 보이는 비류 방의 형체. 방을 살피다 나는 그만 허걱,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내 앞에, 함 앞에 앉아있었다!
<13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