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갑자기 죽었느니라.”

(10)소서노의 아들 비류

by 이기담 Mar 14. 2025

  소서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제 유모는 어떻게 죽은 것이옵니까?”

  더욱 어두워지는 소서노의 표정.

  “갑자기 죽었느니라.”


  ‘갑자기’라는 말에 훅, 치고 들어오는 음모의 예감. 


  “갑자기요, 어마마마?”

  “그래. 갑자기 자다가 밤에 그리되었느니라.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느니라.”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소서노의 얼굴. 모든 것을 들어야 아는 나로서는 답답하다. 어린 비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한 그 일을 소서노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그런데 21세기 증강현실처럼 하나의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당황!



  여섯 살 비류가 유모와 자고 있다. 비류가 잠꼬대를 하며 움직인다. 유모가 잠결에 비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등을 쓸어안는다.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손길,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포근한 움직임. 

  문이 열린다. 복면을 한 누군가 들어선다. 어둠과 한 몸이고자 입은 온통 검은색 옷. 움직임이 가볍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 자가 재빨리 아기 비류 곁으로 간다. 비류를 보다가 유모를 본다. 검은 자가 손을 들어 올린다. 손에 들린 제법 바늘 하나. 사내가 유모의 목덜미 쪽으로 바늘 든 손을 들이민다. 

  유모가 몸을 움직인다. 멈추는 검은 자의 손. 유모가 비류 어깨 언저리에 가 있던 팔을 가져와 똑바로 눕는다. 사내의 몸은 사물처럼 멈춤 상태. 

  그렇게 일 각 이 각 삼 각…….

  유모가 다시 몸을 움직여 몸을 모로 세워 내쪽에 팔을 뻗는다. 마치 자는 도중에도 비류의 안위를 챙기는 모양새다. 

  사내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사내가 유모의 뒷덜미에 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유모의 몸이 아주 조금 바르르, 경련하더니 멈춘다. 사물처럼 지켜보던 사내가 유모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댄다. 잠시 그렇게 사물처럼 정지. 

  사내가 비류를 본다. 사내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간다.      



  광경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당황! 


  '이건, 내가 가진 또 다른 능력?!' 스크린처럼 눈앞에서 글자가 보이더니 이제는 증강현실을 보는 것처럼 과거의 일이 보인다! 이런 능력이라면 대환영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보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더구나 강대업도 능수능란 마음을 속이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표정 관리 또한 어수룩하기 그지없었고. 

  “비류야?”

  소서노가 나를 부른다. 

  “예, 어마마마…….”

  "무얼 생각하느냐?"

  “잠시 유모 생각을.”

  “생각나는 것이라도 있느냐?”
  다시 당황. 증강으로 본 광경과 묻는 소서노의 질문이 엉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저으며 역으로 질문한다.

  “갑자기라면 무엇 때문에 갑자기 죽었는지 알아냈사옵니까?”

  이번엔 소서노가 고개를 젓는다.

  “일어날 시각이 되어도 나오지 않아 들어가 발견했느니라. 어찌 된 일인지 그날은 너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오면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모르옵니까? 아직까지도 몰라요?”


  “그렇구나.”

  의술이 발달된 21세기에도 밤새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되는 일은 허다하다. 바늘로 급소를 찔러 살해했으니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의 정체 또한 알려질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유모는 자다가 죽어 발견된 것이다. 

  의문이 든다. '유모는 그저 나의 유모일 뿐인 사람.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 이 사람을 왜?' 있다면 유모는 고주몽과 소서노의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미래의 왕위를 이를 왕자를 키우고 있다는 것.

  “만약 제 유모가 죽지 않았다면 온조도 유모가 키웠을 것이옵니까?”

  “아마도……. 그런데 비류야. 왜 그러는 것이냐?”
  의아함이 도는 소서노의 얼굴. 

  “어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야?”
  “이상하옵니까, 어마마마?”
  “그래, 너 답지가 않구나. 너 같지 않아.”

  비류는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는 말. 
  “헤헤.”

  나는 아홉 살 웃음을 짓는다. 

  “어젯밤 꿈을 꾸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유모의 표정이 마치 억울하다, 억울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사옵니다. 하여 물은 것이옵니다.”

  “이상하구나. 그런 꿈이라니.”

  그러면서도 다시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소서노.

  “갑자기 죽었다면 혹 다른 연유가 있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옵니까?”
  “그야, 그렇지.”

  설사 지금 다시 그때의 일을 조사한다고 해도 시간은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내가 증강으로 그것을 보았다고 해도 그 자의 정체를 밝힐 가능성은 없다. 그러다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직접적인 단서는 없을 것이나, 그 일은 성공하였으니, 성공으로 이룬 결과는 지금, 오늘, 여기에, 변화한 현실에 숨어 있을 것이다! 


  숨어 있는 음모를 찾아내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  주도면밀하게 모든 현실들을 살펴야 알 수 있는 일!


  나는 말한다. 

  “어마마마. 지금 유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온조의 유모가 되었는지 궁금하옵니다.”

  “왜 자꾸 그러느냐, 비류야?”

  “그냥 궁금해졌사옵니다. 유모가 생각나니 그런 거 같사옵니다. 어마마마.”
  소서노가 되짚듯 잠시 말을 하지 않는다. 유모를 처음 보던 그때를 되짚는 건가? 아니면 다시 이상해진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건가?  

  소서노의 말을 기다리며 나는 앞서 나타난 증강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린다. 혹 소서노의 마음속까지 보이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욕심마저 슬몃 가지면서.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다. 없다. 눈앞에는 말 없는 소서노뿐이다. 이때다.

  “왕비마마. 온조이옵니다.”
  이것은 유모 목소리. 마음이 이상하게 소란스러워진다. 

  “오, 마침 왔구나.”

  유모가 온조를 안고 들어서고, 나는 유모를 보았다. 어젯밤 몰래 낯선 사내를 만나 무언가를 주던 그 유모. 

  “비류 왕자님도 계셨습니다.”
  온조가 소서노보다 내게 먼저 오겠다는 듯 두 팔을 나를 향해 벌린다. 

  “형이 더 좋은 모양이로구나.”

  소서노의 말.

  “시간이 지나면 더욱 그럴 것이옵니다. 마마.”

  유모의 말.

  “그런가?”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 소서노의 말.

  “예, 왕비마마. 아이들은 자라면서 제 또래와 어울리기를 더 좋아하는 법이니까요.”

  유모의 말. 나는 다가온 온조를 안는다. 

  “그렇지. 유모가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 키웠다고 했었지?”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런데 그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예, 수십 년 전 돈 역병에 그만…….”

  “그랬지, 그렇다고 했었지. 안 되었네…….”

  슬픈 표정을 짓는 유모.


  “자네가 언제 궐에 들어왔지? 온조가 태어나기 서너 달 전이었지, 아마?”


  “예, 왕비마마. 꼭 넉 달 전이었사옵니다.”

  “그래, 맞아. 그때였어.”

  나는 온조를 어르며 귀 기울여 둘의 대화를 듣는다. 나는 재빨리 유모가 궐에 들어온 시간을 계산한다. 온조가 두 살, 정확히 태어나 1년 3달이 되었으니 유모가 궐에 들어온 건 1년 7개월. 유모가 죽은 뒤 1년여 뒤. 둘의 사건을 연결시키기에 시간의 간격은 멀다. 

  소서노가 유모에게 묻는다.

  “유모 고향이 어디라고?”

  “정가래라는 곳이옵니다.”

  “정가래라면 동부여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마마.”
  “가만, 그럼 유모를 소개한 이가 만필이니, 만필도 정가래 사람인가?”

  “그러하옵니다. 제 사촌 동생이옵니다, 왕비마마.”

  만필이 누구지? 비류의 기억 속에 만필은 없다. 

  “어마마마.”
  내가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든다. 소서노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한다.


  “만필은 대왕의 호위무사니라.”


  “아아.”
  나는 명랑하게 말하고는 재빨리 유모의 표정을 살폈다. 평안한 표정. 그 어디에도 어젯밤의 행동을 짐작할 수 없는 얼굴. 내가 본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상의 얼굴. 고민이다. 어떻게 하지?


  ‘유모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알아내지?’


<11화로 이어집니다>

이전 09화 "유모는, 어떤 사람이옵니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