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래, 그 28일간의 기다림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첫 번째 일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 (마태복음서 3:3)


요한의 광야의 길.JPG photo by noneunshinboo


떠나온 정든 고향 우르와 한동안 살았던 이집트 노예살이의 땅, 그리고 거기를 떠난 이유와 목적인 약속의 땅, 그 사이에 광야(曠野/廣野/desert/wilderness)가 있습니다. 옛 땅과 새 땅 그 사이, 옛 것과 새 것 그 사이, 옛 사람과 새 사람 그 사이에 광야는 있습니다.


거기, 두고 온 익숙한 안락함과 평온함 그리고 적당한 비옥함과 풍요로움. 여기, 꾸역 꾸역 끌고 온 거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그래서 드는 후회와 원망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이기(利己)와 욕망과 탐욕과 불안과 걱정. 그리고 저기, 들어갈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와 흥분 그리고 이제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새로운 나가 되겠다는 다짐. 그 사이에 광야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희망이고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눈 앞의 광야처럼 불편하고 불안합니다. 비옥한 땅이 언제든지 척박한 땅으로, 푸른 강이 언제든지 시커먼 죽음의 강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의욕과 기대는 언제든지 날개 없는 추락으로 바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없음과 있음을 관통하는 태초의 신비를 품은 광야처럼 기다림이 낙심과 좌절로, 희망이 절망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기다릴 수 있음은 나의 밖에서 오는 확신이나 확실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안에서 오는 나의 안에 계시는 이에 대한 믿음, 그 분으로부터 오는 희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습니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요한의 광야의 매화꽃.JPG photo by noneunshinboo


이육사(李陸史)의 시 광야(曠野)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노래하는 광야의 시인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외치는 광야의 요한이 서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가난한 땅에서 가난한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시인입니다. 그러나 신세 한탄, 현실 한탄 속 주저앉은 시인이 아닙니다. 이냥저냥 여기에 맞추어 살겠다 하는 시인이 아닙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며 어쩔 수 없고 할 수 없어 마냥 기다리는 시인도 아닙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음을 믿고 알고 희망의 씨를 뿌리는 시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생존 게임’으로 혹은 ‘지옥’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현실 같은 허구의 이야기, 허구 같은 현실의 이야기에 불쾌하고 슬프고 화도 나고 심란하고 우울하면서도 또 다시 찾아 보게 만드는 세상이 광야로 느껴지는 것은 저의 과민함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희망이 없다면, 우리에게 기다릴 누구가 없고 기대하는 무엇이 없다면 새로운 내일이 없다면, 그건 정말 광야도 못될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그 28일간의 기다림을 시작합니다.



* 11월 28일 대림절 첫 번째 일요일을 시작으로 12월 25일 성탄절까지 이어지는 28일간을 마태복음서를 읽으며 오신 아기 예수를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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