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첫 번째 주 목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 (5)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 . . .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 (마태복음서 7:13-14, 21:23, 새번역)
누구 . . . 세요? 혹시 저를 . . . 아세요?
하늘 나라로 가는 티켓, 한 장도 아니고 여러 장 손에 들고 쥐고 흔들며 구원은 그리고 천국은 이미 ‘따 놓은 당상(堂上)’인데, 거침없이 사는 우리라면 땀구멍이 서늘해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척 섭섭하고 서운한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십여 년 전 구월의 중간 어느 오후입니다.
이미 늦은 약속에 ‘스카이트레인(SkyTrain)’ – 밴쿠버 지하철/전철의 이름 – 을 타기 위해 저는 급히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저기 전철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걸로 봐서는 금방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오늘따라 계단은 왜 이리 많고 또 높은지, 집에서부터 뛰어 오느라 헉헉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뛰면서 주머니 속을 뒤져 ‘스카이트레인’ 티켓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급히 꺼내느라 여분으로 사 놓은 몇 장이 주머니에서 함께 따라나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걸 놓칠리 없는 저는 주섬주섬 주워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쑤–욱, 그때 누군가의 손이 제 눈 앞에 보입니다.
“WOULD YOU GIVE ME A TICKET?”
돌아볼 사이도 없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의 입에서 튀어 나온 아주 짧은 영어 단어.
“NO!”
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튀어 나온 그 ‘NO’ 란 말에 그 남자는 작게 놀랐고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그때의 짧은 한 순간 그리고 거기의 한 공간을 가득 채운 그 ‘NO’ 라는 소리에 너무 크게 놀라고 당황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저는 더 빨리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저기, 때 맞추어 들어오는 스카이트레인이 때 맞추어 도착한 저의 앞에 때 맞추어 섰고 그 문이 때 맞추어 열렸습니다.
그러나,
“NO!”
저는 그 ‘스카이트레인’을 타지 못했습니다. 탈 수가 없었습니다.
“NO!”
제가 그 남자에게 내뱉은 그 ‘NO’ 라는 말소리가 거기에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스카이트레인 문 앞에 선 저를 계속 따라왔습니다.
“NO!” . . . “NO!” . . . “NO!” . . .
스카이트레인의 문이 열리면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 스카이트레인이 저를 향해 계속 내뱉는 소리. 제 머리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제 주변에서 제 안에서 계속 메아리치고 있는 그 소리, ‘NO’.
그리고, 거기 ‘NO’ 라고 내뱉었던 그 순간, 그 짧은 그 순간에 저의 눈에 들어왔던 그 소리에 놀란 그 남자의 얼굴, 동시에 ‘그래 그럼’ 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벌써 다른 행인들에게로 향했던 그 남자의 얼굴, 바로 그 얼굴이 스카이트레인 안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남겨졌고, 스카이트레인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래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이리 저리 미친 놈처럼 티켓 자판기와 개찰구, 그리고 그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그 남자를 찾아다녔습니다. 제 손에는 저의 티켓과 여분의 티켓 몇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찾질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작은 배려와 친절과 도움이 필요했던 그 남자는 작게 놀랐고, 그 아주 작고 작은 배려와 친절과 도움을 거절했던 저는 너무도 크게 놀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NO’ 라고 소리 질렀던 나의 그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작게 놀랐던 그 남자의 얼굴, ‘그래 그럼’ 하며 돌아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찾던 그 실망한 얼굴, 그 피곤한 얼굴, 그 슬픈 얼굴을 기억합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했던 ‘NO’ 라는 말은 그 누군가가 저에게 하는 ‘NO’ 였습니다.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 .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NO!”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누가복음서 14:25-27)
저는 지금도 스카이트레인을 탈 때면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정말 ‘스카이트레인’이 왔을 때 그러면 안되는데 . . .
오늘 우리는 그 ‘스카이트레인’을 함께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