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첫 번째 주 화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 .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 .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 .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 .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 .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 ” (마태복음 5:3-12, 새번역)
그리고, 여기 시인 윤동주가 말하는 팔복(八福)입니다.
팔복(八福)
– 마태복음 5장 3~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산상수훈(산상설교/산상보훈)의 팔복을 다룬 성서 주석서, 해설서, 혹은 묵상의 글 중에 이 시 만큼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한 줄 한 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힘겹고 어렵게 써내려간 글이 있을까, 오롯한 자신의 진정(眞情)이 담긴 그 쓴 이의 절절한 아픔과 슬픔이 느껴지는 글이 있을까, 싶습니다.
가난한 시대, 아픈 시대입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시인의 슬픔이 있습니다. 충분히 가난하지 않고 충분히 아프지 않고 그래서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일 수 밖에 없는 시인의 부끄러운 슬픔일까? 눈 앞에 희망은 없어보이고 그렇다고 절망은 차마 할 수 없는 채로 살아가야 하는 시인의 깜깜한 슬픔일까? 아니면 무엇으로 꽉 채워진 듯 막혀버린 그 답답한 속 후련하게 슬퍼한 뒤, 그나마 절망으로 단련된 그 남은 희망이라도 붙잡기 위한 시인의 슬픈 희망일까?
가난한 시대, 몸과 마음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그 가난함을 함께 살지 못하는 나를 슬퍼하지 않으니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슬픈 시대, 이러저러한 이유로 슬플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지 못하는 나를 차마 슬퍼할 수 없으니 이것을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늑대처럼 사납고 뱀처럼 교활한 시대, 양처럼 온화하고 비둘기처럼 겸손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내가 슬프지 않으니 그것을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정의를 찾을 수 없는 시대, 그 말씀과 정의에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되지 못한 나를 슬퍼하지 않으니 마찬가지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비 없는 시대, 이리 치이고 저리 몰린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들을 못 본 척 선행과 자비 없는 나를 당연히 슬퍼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으니 분명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정직함이 없고 진실이 외면받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마음을 품고 옳은 행실과 말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되지 못하는 내가 슬프지 않으니 역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사전에나 있고 여전히 전쟁중인 시대, 사랑과 정의가 있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를 마땅히 슬퍼해야 하는데 그렇게 슬퍼하지 않으니 이 또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의(義)도 의리도 없는 시대, 예수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의로운 자의 길을 가지 않는 나를 슬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슬퍼하지 않으니 단연코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슬퍼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복이 있다 할 수 있으니 저희가 영원히 슬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시대의 아픔을 충분히 아파하지 못하는 자신을 슬퍼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 없는 양들, 길 잃은 양들, 가난한 양들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예수가 있습니다. 그 예수의 곁에서 함께 슬퍼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시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 시대를 그 사람들을 누구보다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절절하게 사랑했고 아파했고 또 슬퍼했던 시인이었음을. 그리고 그 시인 곁에서 함께 슬퍼하시는 예수입니다.
슬픈 예수 곁에 슬픈 시인.
슬픈 시인 곁에 슬픈 예수.
이제 시인은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시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시는 그 예수를 우리는 기다립니다.*
*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로마서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