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20..3..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도망쳤다. 아니, 떠났다.
사실 이 빈칸에 어떤 동사를 넣어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이건 나만 나오는 드라마니까, 이건 환상 속 주인공으로 살아왔던 고백이니까.
2년 전 그날, 그러니까 미래에 눈곱만큼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나는 '내일'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 반대로 사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죽음으로든 이대로든 사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몸속의 모든 세포들이 파업을 한 것 마냥 감각의 신호가 꺼진 채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하늘은 나를 가엾이 여겨 제주도로 향하게 했다. 3년 전 아빠가 대장암수술을 받았을 때 같은 병동을 썼던 아주머니와 친해졌는데 일이 없으면 놀러 오라는 전화를 걸어주신 거다. 제주도에는 가장 오래된 친구가 살고 있어서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볼 겸 가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 전화는 나를 다시 살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름까지 귀여운 종달리라는 곳에서 친구를 5년 만에 만났다. 친구가족이 제주도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그들의 생활이 부러워서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 안에서 결정을 내리고는 1년만 살아보겠다고 왔지만 어느새 3년 차가 됐다는 지난 굴곡들을,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생명력을,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 얼굴을 죽어가는 나는 들었다.
"너도 여기 잘 맞을 것 같아. 너의 취향이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아직도 잊히지 않은 친구의 나지막한 음성.
도화선이 된 그 음성이 잠자고 있던 영혼의 붓을 들게 했다. 이곳에서 사는 내 모습을 그렸다. 상상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웃고 있어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쫓아가는 삶이 아닌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나의 ‘내일’이 그려졌다.
나는 베프답게 (?) 2주 만에 서울집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갔다. 그리고 반년을 살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매일 같은 시각 정류장에 서서 매일 달라지는 들숨의 온도를 마셨다. 넷플릭스 대신 바다를 보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봤다. 영화 대신 사람들을 봤다. 삶을 봤다. 쓰레기봉투를 사는 법부터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까지 이곳의 일상은 모든 게 달랐다. 밥을 챙겨 먹고 반려견을 챙기고 출근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짧은 겨울의 해를 잘 보내는 일이 오늘 할 일의 전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엇을 미친 듯이 바라지 않고 무엇을 그토록 갈망하며 그 무엇이 되고자 매일매일 자신을 갉아내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때 알았다. 멀어진 건 거처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거리가 생겼음을. 틈이 생긴 그제야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떨어져서 보니 놓치고 있던 것들이 보였다. 소중한 것들이 보였다. 안쓰러운 내가 보였다. 이기적인 내가 보였다. 나는 제일 먼저 해야 할 나 자신을 챙기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숨'을 쉬는 삶, '삶'을 사는 일상,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깨닫게 해주는 곳, 이곳은 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포근하고 안전하게 나를 품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지금껏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게 맡기고 살아왔다는 것을, 나 자신을 지키고 책임지는 일을 회피했다는 것을,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렇다. 나는 경험주의자다. 하여간 직접 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남들이 맛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식당보다 산책하다 발견하는 곳이나 점찍어둔 곳을 찾아가는 걸 더 좋아한다. 나는 여러 방면에서 나만의 취향이 뚜렷하다. 약간의 단점이라면 궁금증이 해소되면 즉시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엉덩이가 참 가볍다. 그러다 보니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었고 그래서 전문성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흥미의 변덕이 심했다. 내 인생에서 싫증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궁금증이 새로이 태어났으며 시간이 쌓일수록 더 알고 싶어 지는 건 연기와 인간 그리고 겨울이(반려견) 뿐이었다.
취향이 강하다는 말은 편식과 편협의 유의어 같다. 호와 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라 웬만해서는 그 사이가 바뀌는 걸 본 적이 없다. 27년 동안 족발을 못 먹다가 쫄깃한 맛을 알게 되면서 극호가 된 일? (껍데기도 마찬가지) 그리고 산과 사랑에 빠져 혼자서도 등산을 하게 된 일.. 뭐 이 정도다. 뜬금없이 경험주의자라고 고백을 한 이유는 이렇게 밑밥을 깐 이유는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됐다는 말을 꺼내기 위해서다. 너무나도 다른 너와 내가 다시 만나는 일처럼, 다시 오를 이유라고는 단 하나도 없던 산을 이제는 '매우 좋음'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된 운명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말 우연이었다. 올해 5월 말, 독립영화 촬영을 끝내고 휴식차 제주도에 갔었다. 여행자의 신분보다는 주민처럼 머무는 걸 좋아해서 이때도 계획이라고는 없는 마냥 바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 즈음 지나자 친정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에도 슬슬 하품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야지 싶어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제주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그때, 우연히 철쭉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심심하면 윗세오름에 올라가 봐. 지금 활짝 폈을걸? 진짜 예뻐.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 봐.”
‘지금 아니면 못 봐.. 지금 아니면 못 봐..’ 이게 얼마나 도파민을 유혹하는 말인가. 사진을 찾아보니 철쭉도 예쁘지만 주변의 경치가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속에 나오는 신비의 언덕처럼 보였다. 푸른 언덕 사이사이에 핀 진분홍의 철쭉이 부끄럽고 귀여운 새색시 같았다. 나의 호기심이 미친 듯이 심장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무 할 일도 없는 나에게 당장 내일 떠나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가자!’
관악산에서 처절하게 당했던 경험과 만만하지 않은 ‘오름’들을 올라본 경험을 배움 삼아 상대를 먼저 파악했다. 관악산에 같이 갔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난이도를 체크하고 블로그를 통해 대략적인 시간, 코스, 준비물, 주차장, 출발시간까지 스케치를 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주차장에 도착해서 올라가면 된다 이거지. 카메라 챙겼고 오이 챙겼고, 물이랑 티슈, 이제 김밥만 말면 되겠다! ' 모든 게 완벽했다. 단 한 가지, 비 소식만 뺀다면 말이다.
한라산에서 만나는 비구름의 패기를 알턱이 없었다. 한라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뭐랄까, 머리로 먹는 짬뽕이 해물의 감칠맛과 고추기름의 얼큰함, 양파의 달달함과 면발의 찰짐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주차장에 가까워질수록 어둑해지는 하늘색이 내 눈엔 그저 신기하게 보였다. '다른 곳이야..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아!'
유리창에 묻은 빗방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 아쉬웠다. 가방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만 넣어서 만든 김밥이 있었고 마음속에는 패기가 있었다.
‘일단 가보지 뭐, 가다가 너무 많이 내리면 내려오면 되지!’
(직감적으로 카메라는 차에 두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우두두두- 우두두- 다다다- '
나뭇잎에 닿는 빗소리, 물을 머금고 내는 숲냄새, 차가운 아침공기와 낮은 명도의 풍경은 시작부터 나를 유혹했다. 혼자 하는 산행은 처음이라 약간의 경계심도 있었지만 앞에 가는 커플들을 속으로 의지하니 안심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계단이라면 피하던 두 다리가 성큼성큼 움직이는 게 아닌가? 마치 천하장사처럼 기세등등하게 오르는데 내 다리가 맞나 싶었다. 묵직해지는 허벅지의 느낌까지 짜릿했다. 꼴딱하게 오르는 이 숨이, 왠지 좋았다.
30분 정도 오르자 본격적인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데크가 시작되면서 비바람은 거세졌다. 옆에 루프를 잡지 않으면 몸의 균형이 흔들릴 정도였고 안개는 날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져 갔다. 뺨을 때리는 비바람에 혹여나 내 김밥이 젖지는 않을까, 옷이 뚫리지는 않을까 하며 생존(?)을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웃겼다. 평소 비를 일부러 맞으러 나갈 만큼 빗줄기 안에 있는 쾌감을 좋아하는 나에게 완벽한 무대였지만 이건 연극이 아닌 리얼이기에 아찔함과 공포심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추질 않았다. 내려갈 생각은 일체 들지도 않았다. 문제 될 게 없었다. 숨이 쉬기 힘들 만큼 올라오면 즉각 쉬면 됐다. 나무 밑에 숨어 오이를 먹었고 생생한 몰골로 셀카를 찍는 여유도 부렸다. 숨이 돌아오면 다시 오르고 또 힘들어지면 잠시 멈췄다. 밑에 깔린 안개를 보며 보이지 않는 아래의 풍경을 상상했고 머털도사처럼 구름 위에 떠 있는 내 모습에 다리가 살짝 저리기도 했다. 재난영화 현장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미친 사람처럼 행복했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계속 났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위에는 철쭉이 보이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에 즐거워하고 어떤 풍경에 특히 감동하는지 아는 게 재밌었고 나이키의 방수성능에 놀라워하며 오이의 청량함에 감탄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완전해진 나 자신을. 숨, 기분, 감정, 나를 둘러싼 환경까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로 나는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등산객들 사이의 에티켓인가? 내려오는 분들이 종종 인사를 건네주셨다. 인사를 받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 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떤 아저씨는 '안녕 못해유~' 라며 주변 모두를 웃게 했다. 모든 게 놀이처럼 느껴졌다. 예상대로 철쭉은 안개를 뚫고 나오지 못했고 언덕의 활량함도 듬성듬성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안갯 속을 헤쳐나가는 이 기분, 이대로도 충분하고 완벽했다. 나는 그 어떤 목적 없이도 발을 내디뎠고 즐거워했고 만끽했다. 순간순간에 존재할 뿐 다른 건 없었다. 충만해지는 마음은 내가 이런 과정에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잘 갈 수 있는 여정의 방식을 찾은 것 같았다. 느리더라도 희로애락이 있는 삶, 살아있음을 잊지 않는 삶, 성공보다는 성장을 추구하는 삶, 즐거움을 잃지 않는 일상, 안녕을 건네는 하루, 오늘의 산행처럼 앞으로의 인생여정이 그러하길, 그렇게 살아야겠다 다짐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진부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니까.
'나는' 같았지만 '내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기에 빚을 지며 살아가게 되었다. 마침내 정상에서 먹은 인생 최고의 김밥은 바로, '내일' 에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으로 흐르고 있다 해도
그 안에는 그것 만의 삶이 있는 거야
그 삶을 발견하느냐 그냥 지나치느냐는
나의 영혼이 어느 때를 보내고 있느냐에 차이일 뿐
너의 잘 못은 하나도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