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먼저 무너진 나를 마주한 날

조급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by 부엄쓰c


일요일 오후,

아이와 함께 미술 숙제를 하고 있었다.


4B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는 과제.

아이는 또박또박, 천천히, 정성껏 칠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처음엔 기특했지만,

점점 내 속이 타들어갔다.

사실, 나는 피곤했고 허리도 아팠다.

그 상황을 오래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학교에서 또 지적받으면 어쩌지?’


결국, 나는 말을 꺼냈다.

“엄마가 좀 알려줄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조금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 순간,

아이가 짜증 섞인 얼굴로

연필과 종이를 확 가져가려 했다.


나는 멈칫했다.

곧이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와주겠다는 데 왜 저래?’

‘어른 말을 무시하는 거야?’


감정이 터졌다.

나는 연필을 바닥에 던졌다.

지우개도, 물티슈도, 이어서… 수건까지.


수건이 아이에게 맞았다.

아이도 나에게 수건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

수건으로 아이를 때렸다.


그때, 아이 입에서 튀어나온 말.

“미쳤나…”


그 한 마디에,

나는 수건으로 몇 번 더 때렸다.


그리고, 침묵.

모든 게 조용해졌다.


잠시 후,

우리는 마주 앉았다.


아이는 작게 말했다.

“못할 것 같아서 그랬어…”


나는 대답했다.

“그럼 말을 하지, 왜 짜증부터 냈어?”


아이는 말했다고 했지만,

나는 짜증으로만 받아들였다.


서로의 말은,

서로에게 닿지 않은 채

서운함과 분노로 엇갈려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어른이 도와주려는 걸 무시한다고 느껴질 땐

엄마는 그렇게까지 화가 나.”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럼… 이제 내가 다시 해볼게.”


그날 밤,

우리는 산책을 했다.


아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어른 말은 바로 들어야 해?”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어른은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어.

그걸 지키기 위해 말하는 거야.”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걷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이해한 듯한 표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까 엄마가 수건 던지고, 때린 거… 정말 미안해.”


아이는 작게 대답했다.

“나도… 수건 던지고, 그런 말 해서 미안해.”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는 느리지만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나는 그걸 못 기다렸다.


‘더 잘하게 해주고 싶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학교에서 또 지적받을까

내가 쫄았던 거였다.


그 불안이

아이가 따라올 틈도 없이

먼저 앞질러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수건을 던지고 때리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누군가 알까 두려울 만큼 마음이 저려온다.


아이보다 먼저 무너진 어른으로서,

그날의 나는 참 작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건 아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 역시도,

아직, 다 자라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늘의 실천

아이가 느리더라도,

내 불안을 먼저 들여다보기.


나에게 남기는 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앞서가지 말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음엔, 기다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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