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은 제주에 왔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검은색 현무암의 바위가 듬성듬성 깔려있는 해안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드넓게 펼쳐지고 펼쳐져서 끝내 하늘에 닿아서야 시선이 멈출 수 있는 수평선에 이르는 그 경계. 눈을 살짝 감으면 하늘의 푸르름인지 바다의 푸르름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구름이 없는 하늘은 마치 바다와 이어진 듯 보여 육지보다도 더 크게만 느껴지던 바다. 그런 바다가 있어서 제주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길을 걷다 마주친 꽃들
그런데, 길을 걷다 보면 바다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궁화를 닮았는 데 색이 노래서 무슨 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던 꽃부터 이름을 알던 모르던 마주치던 자연의 꽃들이 마치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월드컵 파도타기 응원이라도 보는 듯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마 한적한 해안가이든 동네 골목길이든 꽃들도 무더위 속에 걷는 이들을 잘 보지 못하여 도보여행자가 반갑지 않았을까? 매일 땅을 밟고 걸으니 나 또한 흙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일부가 된 듯 꽃들의 표정이 보였다.
더위에 지쳐버린 곤충들
물론, 나를 반겨주는 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보 여행자를 반길 힘은 커녕 자신의 한 몸도 지탱할 수 없이 쓰러진 나비나 잠자리, 매미도 종종 보였다. 곤충들의 표정이 보였다.분명 더위를 피하고자 최선의 몸부림을 다 했을 텐데도 살 수 없었던 애절한 삶의 메아리 속에 사라진 곤충들. 그 가엾은 미물들을 이들보다 죄가 많을 내가 실수로 밟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 피해 걸었던 기억들이 선명하다. 그 불쌍한 곤충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 윤동주 시인의 '서시'의 한 구절(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이 입에 맴돌아, 길 속에 마치 시인의 시라도 보이는 듯 덥고 힘들어도 시인의 다짐(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을 되뇌며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왼) 2005년 당시 버스정류장, (우) 요즘 간간히 보이는 버스 정류장 모습출처 : 자기괴발자 헐랭이닷컴 블로그
도보여행자에게 크나큰 그늘로 쉼터를 마다하지 않던 버스정류장. 그 모습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박스 속에 긴 벤치가 있는 모습이 아니라 마을마다 특색 있게 꾸며진 경우가 많았다. 거기서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온전한 쉼을 가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여서 내일 걷게 될 곳은 어떤 모양의 버스정류장을 마주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었다. 그 궁금증으로 앞서 지나간 수많은 여행자들을 다시 걷게 했을, 그리고 지금의 나를 다시 걷게 할 힘과 용기를 보았다. 요즘은 버스정류장이 거의 획일적인 모양으로 변했기에, 그 당시의 다양한 버스 정류장의 모습을 다 남겨놓지 못함이 지금에서야 애석하다.
제주도 마을 이름 및 땅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
또한, 땅의 경계를 넘어설 때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마을 이름이나 경계의 표지판도 걸을 맛을 알려주는 것 중 하나였다. 도로명 주소로 바뀌기 전인 지번 주소가 온전히 쓰이던 그때에는 OO동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인 마을 단위의 이름이라면, 제주에서 마주친 마을 이름들은 뭔가 사연이나 스토리가 있는 듯 다소 서사적이었다. 무지개마을이라니... 내가 걷는 이곳이 무지개가 뜨는 희망의 땅 같아서 괜스레 행복해졌다. 남성마을인데,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문패(?)는 또 어떤가?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완전히 안전하게 보장된다는 안심을 주지 않는가? 물론, 남성마을의 "남"이 성별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뭔가 묘하게 범죄 없는 마을과 어우러져 도보 여행자의 마음을 언제 어디서 무언가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서 완전히 무장해제시켰다.
경고문 보면 정신이 번쩍~
때로는 잘못한 것 하나 없음에도,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내가 밟고 있는 곳이 경고 문구에 해당하는 곳인가 노심초사하며 경고 문구 하나에 완전히 소심해져서 쫄깃한 심장으로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걷게 되는 곳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쫄보인 여행자가 인기가 좋은 곳도 있었으니, 가끔 화장실 이용을 위해서 들렸던 경로당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노인들이 많은 곳이었나 생각될 정도로 마을마다 하나씩 경로당이 있었다. 젊은 이들은 다들 뭍으로 빠져버려서 제주도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건지 세상살이에 어두운 여행자는 경로당이 많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노상방뇨를 할 수 없는 도보 여행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때로는 잠겨있는 곳도 있었지만, 거진 잠겨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가끔은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혼자 계신 곳도 있었고 , 보통은 어르신들의 수다나 절대 도박은 아닌 카드놀이가 한창인 곳도 있었다. 우리가 화장실 이용을 부탁하기 위해서 들렀음에도 낯선 이의 출입이 드물어서인지 젊은이가 드물어서인지 어찌나 반겨주셨던지... 요즘 같은 세상에 무전여행하는 젊은이가 다 있다며 칭찬하시고서는 물도 주시고, 원하면 맥심 봉지 커피도 한잔 하고 가라고 곁을 내주셨던 곳도 있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계신 곳이면 물을 데워 커피 한잔 태워드리는 정도의 잔심부름을 해드리기도 했다. 여태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참으로 어색하고 어려웠는 데 걷다 보니 자연스레 낯선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그들의 표정을 읽으며 따뜻함을 읽을 수 있는 세상사는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걸어야지만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날씨와 빛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바다 표정이었다. 바다에도 표정이 있다니... 진정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도보여행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된 시야겠지만, 꼭 그리 보였다. 바다도 날씨 따라 태양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말이다.
때론 예닐곱 된 아이처럼 짓궂은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심통 나서 찡그린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론 엄마의 미소처럼 자애롭고 부드러운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때론 신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처럼 흥에 취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고,
때론 사랑에 빠진 듯 설레임과 행복 가득한 표정을 짓기도,
때론 이별한 듯 차갑고 외롭고 쓸쓸한 표정을 짓기도 하던 바다.
이런 바다는 차를 타고서 빨리 지나가버렸다면, 자전거라도 타고 지나쳤다면, 응당 볼 수 없었을 테다. 사실, 바다의 표정이라는 것을 안 봐도 그만이기도 하겠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여유 없는 것이라면 매일 우리를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무수한 일상의 일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여행이라면, 내가 밟고 서있는 땅과 그 땅과 어우러진 것들의 표정 정도는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그 무엇이면 좋겠다. 일상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쉬지 못했던 내 맘이 쉬어갈 수 있는 시간. 딱, 그 시간을 주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이 도보여행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제주도를 가고 한달살이까지 했었지만, 함께 간 지인들, 가족들 챙기느라 맘의 여유를 갖기는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떠올려 보면 이때만큼 떠오르는 장면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