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거리
나는 요즘 뭐 하는 것 없이 지내고 있다. 그래도 밖은 잠깐씩 나간다. 도서관을 간다거나 운동을 간다거나 아니면 집 앞에 카페를 간다거나.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고 온 날에는 잠을 잘 때쯤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하루 인간이었나? 나는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가?
'나는 오늘 하루 인간이었나?'에 대한 답에 대해 생각해 보기에 앞서 질문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인간의 정의에 맞는 사람이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건 존재에 대해 묻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질문을 약간 정정해 보자면 '그 순간 인간으로서 존재하였는가?'로 바꿀 수 있겠다.
나를 혹은 상대방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인사가 아닐까 한다. 누군가를 보고 '안녕하세요?' 하는 것. 혹은 그렇게 화답하는 것. 자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나는 그 순간 인간으로서 존재하였는가? 그리고 상대방도 그러한가?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사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어졌다. 정확하게는 서로 주고받는 인사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바로 앞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장사가 꽤 잘 되는 편이다. 나는 집이 바로 앞이기에 보통 포장을 해 가는데, 덕분에 주문을 해두고 기다리는 일이 종종 있다. 주문을 하고 한쪽 구석에 가만히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도 인사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건 일 하는 사람의 인사소리뿐이다. 손님은 '님'이라서 그런 건가? 손님만 '님'이라서 그런 걸까? 한쪽 손만으로 치려한 박수 같다고나 할까? 결국 소리가 나지 않아 박수가 아니듯 인사도 마찬가지이다. 한쪽만 하는 인사는 인사가 아니다.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모습이 내가 사는 집 앞 카페만 이상해서 볼 수 있는 그런 게 아니기에 여기저기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존중받지 못한 존재들이 사라졌다. 뭐, 그래도 괜찮다. '나'는 어쨌든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 부분에서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과연 '나'는 끝까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최근에 읽었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아마 맞을 것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존재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적절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마치 지구와 달의 관계처럼 말이다. 만약 지구와 달이 지금보다 가까웠다면, 혹은 지금보다 멀었다면 지구에게 달은, 달에게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돌해서 둘 다 사라졌거나 아니면 서로를 영원히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누군가를 존재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자신과 적절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거리든 심리적인 거리든 말이다.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둘 다 중요하겠지만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 거리이다. 우리는 보통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에 심리적 거리까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이것도 꽤 최근이 되어서 느낀 건데 카페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거나 대형마트 등에서 무빙워크를 탈 때 과도하게 붙는 사람들이 확실히 더 늘었다. 이게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이나 어디 붐비는 공연장같이 사람이 몰려서 많은 인파 때문에 붙게 되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요즘은 카페 같은 경우 키오스크로 주문받는 곳이 많은데 그렇게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 앞에 서 있으면 다음 사람이 정말 뒤에 한걸음의 여유도 없이 바짝 붙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키오스크를 누르고 있는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경우도 많다. 달리 기다리는 사람이 더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무빙워크의 경우에도 웬만큼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이상 누군가 서 있으면 그 바로 옆에 가서 서는 경우는 잘 없었는데 요즘은 상당히 자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바짝 붙은 사람들은 대게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다.
단순히 누군가가 가깝게 붙은 것이 싫은 게 아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 싫은 것이다. 쉽게 말해 지구 쪽으로 달이 더 가깝게 붙은 것이다. 아니 내가 지구라고 한다면 지구 바로 옆으로 소행성이 바짝 붙어서 지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그 존재에 위협을 받게 된다. 예시가 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쓴 이유는 그렇게 나에게 붙은 사람들이 나를 하나의 인간이자 존재로 인식했다면 붙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는 살아 숨 쉬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냥 어떤 하나의 장애물일 뿐이다. 결국 나는 그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 솔직히 이런 게 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가게 들어가서 인사 좀 안 받으면 어떤가? 주문만 잘하고 음식만 잘 받아 나오면 그만 아닌가? 그냥 서로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거에 신경 쓰고 힘 빼느니 효율적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필요한 말만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좀 붙으면 어떤가?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가려고 빠르게 하려고 하지 않던가. 그냥 그러다 보니 좀 붙은 것일 뿐 거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나도 핸드폰이나 보고 있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어차피 흘러가고 지나갈 시간들 아닌가.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를, 인간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며 살 수 있을까? 사실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면 되지 않을까? 스스로만을 인간이라고 믿고 사는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