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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Oct 31. 2024

저도 정말 기가 죽어요, 어쩌겠어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7. 제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면 기가 죽는데, ~

[7. 제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면 기가 죽는데, 어떡하죠?]

p.62
잘 쓴 글을 보고 기죽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니 기죽는다는 사실엔 기죽지 말고, 
내가 기죽었다는 사실을 글로 써보자. 
그게 글 쓰는 사람의 임무다.

오늘도 글감을 여러분 곁에 살며시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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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감을 붙잡았다. 예전 글쓰기 모임 친구의 글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소설을 써보겠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설명문'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어 써서 공유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글 속에는 그녀가 들어있었다. 잔잔한 부처 같은(!) 미소를 갖고 조용히 이야기하던 그녀, 그러나 그 속에 보이는 '선택' 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강인한 것들이었다. 틀을 뛰어넘는 선택들을 했다는 이야기처럼 작성하기도 했다. 마치 수면 위를 떠도는 백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에세이로 써낸 글이지만, 그 또한 그녀의 사생활이라 밝히기는 어렵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은 끝을 맺지 못한 상태였다. 누군가를 '죽이는' 범죄자 주인공도 그 끝을 맺지 못했다. ( 정말이다. 사건 현장을 만들어놓고서는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지우기 시작한 당사자도 결국, 자신의 마지막 '인터넷 사용기록'을 지우지 못했다. ( 사용기록을 지우러 들어갔지만, 그 탈퇴 '기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가 자신의 정보를 지울 자유는 아예 없었다)


반면 내 동료의 글 속 주인공은 그 끝을 항상 맺어왔다. A를 하고 싶어 했던 그녀는 B를 하기로 했다. B속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골라 겪었고 결국 끝을 보았다. B를 안 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C를 선택했고 같은 프로세스로 움직였다. 게다가 그녀의 글이 조금 더 현실감 있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나의 글이 더 초라해 보였다. 설명문 같은 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니 상상 속에서 쓰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볼 수는 없잖는가. 내 상상력을 '마치 타인의 머릿속에서는 진실처럼' 느껴지게 표현했어야 했다. 타인의 머릿속에 드라마를 펼쳐놓는 그런 묘사.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것, 그러면서도 결론을 짓는 스토리... 그런 게 없는 내 글이 다시 보였다. 나도 그녀도 똑같은 1시간을 들여 쓴 글이지만 그 생김새가 달랐다. 


그녀의 글을 몇 번이고 더 곱씹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필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남들처럼 그 글을 분해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 만한 분석력도 없었다. 그냥 그녀의 글을 주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이런,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속 고민에 닿아 같이 '슬픔의 진동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정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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