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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Oct 22. 2023

명절 물량 완료와 사람들과의 시간

 목표 달성과 행복했던 작은 회식

 그 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마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느라 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5일 정도 쉬고 나서 완전히 회복했던 체력도 다시금 몰아치는 9시 야근에 고갈되기 시작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정말 눈에 띄게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몸은 힘들었지만 지치진 않았던 것 같다. 조금만 하면 된다, 조금만 하면 끝난다 같은 생각으로 말이다.


  음료수를 돌린 날이 13일이었고 그 후로 이틀 뒤에는 신입들이 들어오는 등 작은 변화도 있었다. 솔직히 이제 명절이 코앞이다 보니까 다들 신입들을 크게 챙겨줄 만한 여유는 별로 없어 보였고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저 붙어서 잘 알려주는 정도였고 각자 자신들의 할 일을 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때가 추석이 2주가량 남은 시점이었으니까. 물량을 서둘러 소화해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클 수밖에 없었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눈에 띄는 사람 빼고는 신입이 누군지 잘 모르기도 했고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 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추석 직전이 아니라 조금 여유 있게 한 달 정도 먼저 들어와서 여유로운 상태에서 일도 여러 가지 해보고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 배려, 환영을 다른 신입들은 크게 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인 토요일은 특근을 하고 그다음 날이 일요일은 쉴 수 있었다. 일주일 중에 하루라도 쉬니까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 한 품목씩 물량을 목표치같이 완성해 나아가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으며, 기계 앞에서만 늘 있다가 도마에도 한 번씩 가게 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주의 중간에 코로나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몸이 많이 약해지고 그래서 아픈 바람에 일찍 조퇴를 하기도 했다. 다음 날 다시 출근을 하니 확실히 코로나 걸린 이후로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물량이 확실히 마무리되어 가면서 우리 공장이 아니라 다른 공장으로 지원을 가고 연휴에 추가로 다른 공장에 출근하는 것을 정해야만 했다. 

 연휴가 대체 공휴일을 포함해 6일로 길기 때문에 최소 하루 정도는 나와야 하고 더 나오면 좋다고 했다. 나는 일단 연휴 첫날에 가기로 했다. 그 뒤에도 그렇게 토요일까지도 특근으로 쭉 일을 했는데 도마에서 오늘 같은 도마의 있는 사람들끼리 회식처럼 모여서 밥을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다음 주 목요일이 추석 연휴의 시작이었는데 토요일인 오늘만 마저 하면 목표 물량을 다 끝낸다는 것이었다. 추석 하루 직전까지는 해야 물량을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일이나 일찍 마무리되어 버렸다. 

 오히려 우리가 더 빨리 끝나는 바람에, 원래 출근하기로 한 연휴 말고도 다음 주 추석 연휴 시작 직전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도 20명 정도씩 조를 짜서 추가로 하루씩 지원을 가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여태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 갑자기 한 순간에 끝나는 느낌이 들어서 얼떨떨하면서도 놀라웠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일이 마무리되면서 다음 주에 우리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만큼 부담이 적어지고 놀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 같이 밥을 먹자고 이미 이야기가 진작부터 나왔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당일날, 퇴근하기 얼마 안 남은 시점에 갑자기 권유를 받게 된듯한 느낌이었다. 너도 갈래?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기분도 좋고 일도 다 마무리됐고 일요일인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12시간, 14시간씩 한 공간에서 가장 오래 있고 함께 일하면서도 얼굴도 제대로 못 보거나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첫 시간이기도 했다. 입사한 이후로는 계속 바빴으니까. 우선 퇴근 후에 각자 사람들끼리 모여서 차를 나눠서 타고 산업단지를 빠져나와 이동을 했다. 도착한 곳은 아귀찜집이었다.

 우리끼리의 작은 회식 자리에는 익숙하고 어느 정도는 가까운 언니들도 오고 다소 친하지 않은 남자 사원들도 함께 오게 되었다. 언니들이야 밥도 같이 먹는 편이고 일할 때 자주 묻기도 하고 접하면서 어색하진 않은데, 남자들은 많이 어색했다. 그래도 나랑 같이 붙어서 일했던 동생이나 오빠는 그 자리에 없고 같이 일 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말을 별로 안 해본 사람들이나 일은 해봤지만 사이가 어색한 사람이 있는 식이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았을 때 약간 나를 사이에 두고 친한 둘이 양옆에서 대화를 하길래 다소 민망해져서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어색한 편의 그 남자애는 내 옆에 앉았는데 서로 이야기를 쉽사리 잘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하거나 조용히 음식을 먹거나 했던 것 같다. 사적인 자리는 처음이어서인지 일할 때와 달리 많이 어색하고 어쩔 줄 몰라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사적인 자리여서 그런지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보다가 한 마디씩 했는데, 일을 할 때도 한 번씩 지나가는 소리 정도로 들었던 나에 대한 칭찬을 보다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을 정말 잘한다면서, 옆에 있던 말이 없던 어색했던 남자애도 유일하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상대에 맞춰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사람에게 극찬하듯이 말해서 쑥스러우면서도 다행이고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아귀찜 집에서 1차를 마무리하고 2차는 술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많이 환영해 주었는데 마치 일하느라 바빠서 품고 있었지만 전하지 못했던 말들과 들었던 생각들을 한꺼번에 주는 기분이 좋았다. 대부분 칭찬과 고맙다는 말들이 많아서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나를 평상시에 예뻐해 주는 게 고마웠던 언니에게, 보답을 하고자 지나가다가 그 언니가 크로켓을 엄청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늦은 밤이었지만 약속에 다녀오던 길에 크로켓을 사서 다음날 출근해서 준 일이 있었다. 그 언니는 그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꺼내면서 자기를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해준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제력이 좋은 주변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했지만 내가 경제력만으로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던 일을 꺼내며 생각이 깊다는 이야기와 함께 술이 들어가서 못내 서운한 감정도 함께 있었는지 왜 편하게 해 주려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는 식의 말도 같이 했다. 그에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기사 중 한 명이었던 덜 친한 오빠로부터는 첫날부터 내가 되게 인상 깊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 봤을 때, 남자 프로와 우와 쟤 뭐야 하면서 감탄하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었는데, 첫날이라고 멀뚱하게 가만히 있지 않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 확실히 뭐 시킬 때까지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고 물어 가며 일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고 바쁘게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저 서투른 것에 대해 신경이 쓰여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이기라도 하려고 애를 쓴 것이었는데 그게 다행히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또한 거의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고, 그저 잘 못한 부분에 대해 무뚝뚝하게 이거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서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던 남자 사원으로부터도 술자리에서 일적인 것에 관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잘 못한 것 때문에 인상이 나쁘게 남았겠구나 싶어서 나를 싫어하는 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정 반대였다.

 그 남자사원은 프로같이 직급이 한 단계 높은 건 아니었지만 해포실이란 곳의 장(長)이었기 때문에 위치는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좋게 봤다고 하니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는데, 자기가 관심이 갔던 이유는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가 잘한다는 말에는 크게 관심을 갖게 되지 않지만 남자들까지 일을 잘한다는 많이 했기 때문에 관심이 많이 갔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농담처럼 자기네 일하는 곳으로 오라는 말도 반복해서 했다. 그리고 오빠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어서 놀라운 한 편으로 처음에 무서웠던 인상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지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외에도 몰랐던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되고 가까워지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번째 술자리도 훈훈하고 떠들썩하고 생각지도 못한 극찬과 환영, 마음을 전해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고 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하는 중에 지나가면서 한 번씩 하던 일적인 칭찬들이 빈 말은 아니었고 실질적 도움도 확실히 된 것 같아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2차를 끝내고 나오자 시간도 어느새 많이 늦어져 있었다.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3차로 노래방까지 가기로 했다.


 원래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즐겁게 따라갔고 왠지 집에 가기도 애매하고 아쉬워서 따라간 것이었다. 처음에는 방 문제로 기다리기도 하고 중간에 전에 가게 핸드폰을 두고 오는 등의 소동도 있어서 다소 어수선했는데 다소 기다리다 넓은 방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고 재미있게 놀았다.

 확실히 사회생활 많이 하고 나이 드신 언니나 오빠들이 분위기를 위해서 열심히 불살라서 노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즐거웠다. 나도 거기에 응하고 싶어서 부르고 싶은 노래들과 가능하면 신난 노래들을 부르고 다른 사람들이 부를 때는 몸을 들썩거리며 호응해 주려 애썼다.


그러다가 점차 시간도 많이 지나고 사람들도 피곤해지고 취기도 올라 졸려하는 사람들도 한 명씩 있었다. 나도 좀 피곤해져서 쉬고 있는데 아까 전에 한 살 어린 동생이 전에는 무슨 일 했냐 같은 걸 묻길래 대답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피로회복제 음료수는 왜 돌렸냐는 말에 그냥 알게 모르게 받은 게 많아서 보답을 한 번 하고 싶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다. 

 노래방에선 노래를 부르고 노는 것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가까이 붙어서 해야 했던 그런 사적인 대화가 더 즐겁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일하는 곳이 워낙 각자 할 일로 바빠서 말 몇 마디도 나누기 힘들었다 보니 말이다. 어쩌면 정말 사람들과 보내고 싶었던 시간은 그런 형태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방까지 마무리를 되고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 대중교통은 끊어져 버렸는데 나는 아까 이야기를 나누었던 1살 어린 동생과 함께 나랑은 아직 어색한 남자애의 차를 대리를 불러서 타고 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동생과 남자애는 서로 친한 사이라고 했다. 그래서 덕분에 차를 얻어 타고 집 근처에서 내릴 수 있었고 동생도 아직 남아 있던 전철로 인해 우리 동네에 있던 역에서 내리느라 함께 내릴 수 있었다. 그 뒤에 그 동생과도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나는 몇 분을 더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서도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가지 않았으면 엄청 아쉬울 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의 참석으로 알게 되고 얻게 된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더군다나 일이 다 마무리되어 마음이 편한 상태여서 더 마음껏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추석이 지나고 시월엔 퇴사를 계획했던 나를 재실업 신고로 나머지 실업급여를 받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서라도 계속 다니고 싶다고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적지 않은 돈이 푼돈으로 느껴질 만큼, 잘 모르고 들어왔던 이곳과 사람들이 이렇게나 좋아질 줄 몰랐고 그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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