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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라는 온도

2. 사랑은 정말 공정해야 하나요?

by 무 한소

하루 24시간 안에 놓여 있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 안에 함께 하고 있는 주변의 많은 것, 자연...


그녀의 24시간은 이렇게 의무로 매 순간 채워진다. 의무 곳곳에 '더 함'과 '덜 함'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매 순간 주어진 여유와 맛, 때론 느껴지는 숨결에도 맘을 다한다. 최선이라는 것은 의무에 붙어 다니는 보너스 상품처럼 보이지만 그것으로 때론 의무가 더 복잡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04:45 고요한 정적을 깨고 조용히 시작해서 점점 강하게 울어대는 소리가 때때로 몹시 반갑다. 가끔은 울기 전부터 울어댈 것을 걱정하며 내가 먼저 선을 그어버리기도 한다. 과감하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리고 설정해 둔 알림보다 새벽을 먼저 시작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수애는 주어진 찰나보다 하루 시작의 순간을 먼저 경험한 것일까?


오늘은 울어대는 그 소리를 따라 숲 속을 천천히 거닐며 자연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곳에 푹 빠져 헤쳐 나오는 것을 잠시 보류한다.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던 순간 소리가 다시 찾아왔다. 정확하게 5분 간격으로... 그리고 이번엔 그녀의 음악적 취향을 확신이라도 한 듯 '라 트라비아타'에서의 축배의 노래로 새벽을 과감히 깨운다. 벌떡 일어나 그 소리를 두 손에 담아 가슴에 안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세상과 구분된 공부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는다. 아직은 새벽이라 긴장한 세포와 몸의 근육이 부자연스럽다. 최소한의 예의로 잠시 몸을 이완시키고 필사를 하려고 책을 다. 하지만, 오늘은 필사를 하기에는 마음이 왠지 불안하다. 어젯밤 독서 후 정리를 하다가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숨결 때문일까?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어내며 고조된 그 감정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영향인지 그것은 책상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감정 정리를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들숨 이후 과감히 책을 다시 펼쳐서 감정과 내용을 정리하고 고른 호흡으로 마무리 짓는다. 흐르는 눈물로 시작된 먹먹함이 멈추지 않는다.



가족 한 명 한 명이 다시 보인다. 수애가 선택한 '결혼'이 가족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다주었다. 의무로 순간을 살아가는 내가 실천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 마치 결혼에서부터 시작된 거처럼... 선택의 시작은 가벼웠다. 경쾌하기까지 했다. 넘치고 복잡한 의무가 그녀를 괴롭게 하며 감정에 있어서 주체적이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에서 모순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결혼 이후부터 시작된 관계로 지금까지 몽글몽글 피어오른 감정들이 쌓여 구름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있는 그녀 시선에서의 하늘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고 수애의 존재감이다.


이제 곧 아들을 깨워야 하고 아이가 집을 나서기까지 30~40분을 온전히 아들의 시간 안에 잠시 들어가 자신의 시간을 양보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거처럼 순간을 보낼 것이다. 마치 그것이 미덕인 거처럼. 이후 다시 공부방으로 돌아와 커피와 빵으로 포장된 그녀만의 시간을 잠시 누린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정리한다. 가끔은 필사도 좋다.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찾아와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그 시간 공부방 안에는 온통 수애의 숨결뿐이다. 그 숨결이 때론 무겁기도 하고 숨이 차 오르기도 한다. 오늘은 그 숨결이 움직임에 의해 바람이 된 것인지 호흡으로 만들어진 건지 적당히 떨리며 긴장감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듯 그 숨결 안에 스스로 녹아들지 못했다.


곧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며 오늘의 일정들이 1, 2, 3, 4, 5... 대기하고 있으며 준비된 무한한 자연수가 나열되듯 밀려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대기하고 있는 그 숫자들처럼 일의 모습이나 종류는 전혀 다르다. 묶음으로 분류해 모둠별 집합으로 분류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그것들을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순차적으로 끝내는 것도 벅차지만은 않다. 의무에서 한 단계를 넘어선 것일까? 타자에게 얘기할 때만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게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의무를 소명으로 전환하고 다시 생각해 봐요.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소명을 위해서 해야 할 번호가 매겨진 그것들 하나하나가 이젠 부담이 되거나 그녀를 곤란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수애의 24시간 안에 오늘 유독 최선을 다했던 겨울 끝자락의 바람과 여러 번의 타이밍을 노려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 안에 깔맞춤을 한 함박눈, 절대적인 시간관념으로 주위를 물들이는 태양, 무의식의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심어주듯 카페에서 확실하게 자신을 어필하며 은은하게 번지는 음악소리와 커피 향, 그것을 완전히 덮어버린 쿠키까지... 쿠키가 구워져 나오면서 그 어떤 재료보다 맛과 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버터의 노력, 분위기 있는 카페 안의 어두운 명도를 적당히 조절해 주려는 듯 미세하지만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는 스탠드의 역할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무드등까지 그녀의 주변에서 함께 한 숨결 속에 녹아 있는 그것들이 새삼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것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그곳엔 결혼 전 그리고 결혼 이후의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그것들의 시간 안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는지 우리의 일상 안에 그것들이 부드러운 침범을 해서 여유로운 내 시간을 조급하게 나누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수애는 다만 의무를 다했다. 의무를 다 하지 않고 한다! 했다!로 정의하고 싶다. 자신도, 너도 가족들도 그리고 그것들도.


이젠 의무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결혼은 선택이며 선택 이후엔 의무지만 의무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의무는 '최선'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그녀 행동에서 여러 가지를 스스로 억압하고, 이겨내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때론 수애를 숨 막히게 하지만 그것 없이는 자신의 존재도 말할 수 없다.


공부방 안의 그녀만의 숨결 속에 경이로 가득한 호흡을 하며 눈을 감는다. 수애의 선택으로 온전히 이루어져야 할 결혼 안에 정상으로 보이는 의무가 함께한다. 삶은 수애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했다. 그래서 매 순간의 삶은 벅차고 힘이 들었다. 이후의 삶은 망각의 시간을 겪었는지 평범한 듯 무력함마저 느껴진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삶이 어느 날은 아쉬움으로 후회가 밀려오겠지만 찰나가 꽤 긴 시간 기억되고 손끝의 따뜻함을 실어 그녀를 토닥여준다. 깊은숨을 뱉어내며 그거면 되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덜 한' 때론 '더 한' 의무, 무엇이든 찰나가 모여 현재를 있게 한 역사가 기록될 것이다. 가끔은 만들어진 결혼 생활에 최선이라는 단어를 적용해 가며 의무를 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 되어 오늘의 순간까지 이른다 해도 '의무'와 '최선'의 오차의 범위는 한계가 있다.


수애가 선택한 결혼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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