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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용기 사이

2. 사랑은 정말 공정해야 할까요?

by 무 한소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보였던 큰 변화는 '자유'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보면 모순되게도 그녀가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유'였다. 좀 더 정당한 자유, 떳떳한 입장에서 누리는 자유를 원했다. 성인이 되고서도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태도에 조금씩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독립적이지 못한 습관 때문이었을까? 반드시 책임이 동반되는 자유가 결혼의 가장 큰 이유였는데 새로운 자유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시선이었고 입장이었다. 절제되고 사라진 시간 속 수애의 자유는 보였지만 상대의 자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패턴을 이어가던 어느 날, 상대의 시간 부분집합인 자유 그리고 결혼 생활의 의무가 깊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변화를 위한 노력은 시작된다.



결혼의 안정된 모습과 마음으로 선택한 책임을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녀가 삶에서 처음으로 준비하고 일관되게 꾸준히 해 온 것은 바로 결혼 후 실천한 '역지사지'의 마음이었다. 다시 말해 시선이 점차 바뀌었는데 시선은 '나'로부터 상대와 타자로 변했고 그들의 사라진 자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마음으로 시작해서 긴 시간 노력과 실천으로 지내왔다. 오랫동안 서로의 노력으로 지켜온 결혼 생활에서 '석과 불식'이 다시 수애를 잡아준 것은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 씨 과일은 손을 대지 말고 다음, 미래를 위해 남겨두고 준비하자는 맘이 반복해서 그녀를 토닥인다. 인간의 존재론보다 더 무게를 둔 관계에 있어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되뇌며 반복해서 타자가 되어 보려고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였다.


위축되고 피폐해지며 스스로 눌려서 꼼짝도 못 하는 자신의 마음을 녹여주기로 결심하고 혼자서만 하던 활동을 지역사회로 옮겨갔다. 그녀는 책 읽어주는 봉사 활동이었던 '북 스타트'를 먼저 시작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던 동아리에 들어갔다. 두 가지로 나누어 봉사와 동아리... 그림책을 읽고 생각 나눔을 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읽어주는 동아리였다.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을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의 진심과 가치에 대한 나눔의 역할을 하고자 책 읽어주기 활동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시작을 계기로 수애의 결혼 생활에서도 아이를 키울 때의 기준이 단단해졌다. 그림책 토론방은 글 책의 독서 토론 모임과는 모양과 색깔, 진행방향이 많이 달랐다. 토론 모임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스스로 시각이 달라졌던 것 같다. 책을 보는 시점 또한 다양해졌다.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며 생각은 깊어졌고 감정의 범위도 확장되었다.


결혼을 하며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건 이해와 수용이었고 결국 입장 차이를 인정하는 거였다. 다름을 인정해야 했는데 그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시작은 처음에는 남편과 사이에서 그 두 번째가 아이와의 관계였다. 그 외의 관계에서는 앞선 두 관계가 평안함에 따라 순탄해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혹자들은 부부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고부갈등이나 시댁이나 처가 친정과의 관계에서의 문제로 원만했던 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무엇보다 수애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활동 자체가 지치고 힘이 들었는데 책 읽어주기는 힐링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내적, 외적인 효과가 동시에 드러났다. 읽기의 과정에서 글과 그림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스스로 감정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흐름을 천천히 살필 수 있었다. 또 그때 느꼈던 그림과 글을 향한 애정으로 그 속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림책은 마치 그림으로 드러난 서정시와 같이 내면 깊숙이 감춰진 감정을 찾아 파고들었다. 타자에게 수애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리란 생각은 었지만 적어도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을 스스로 알아채고 그중 사랑의 감정만은 전달되리란 확신이 있었다.


이제는 생각과 몸이 많이 성장해 버린 아이에게 여전히 그림책이나 글책을 읽어주고 있지만 필요성은 여전하다. 더욱 강해졌다. 아이의 태도나 애착은 점점 안일하고 덜하지만 그녀의 마음과 실천은 점점 커졌고 둘 사이 밀당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실에서의 그 순간이 미소 짓게 한다. 그건 결혼을 하는 두 사람(부부)의 결혼 조건에도 반드시 포함이 되어야 할 만큼 그녀와 남편, 그리고 자녀를 연결해 주는 삶의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딸아이와 함께 참여하고 있는 토론방에서 몇 주에 한 번씩 그림책 읽기도 진행해 나가고 있다. 물론 그림책 추천은 그녀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다. 그림책은 그림에서 먼저 우리를 잠시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글을 읽어 나가며 두 번째 생각을 하게 한다. 때론 그림이 글을 빛내주어 감동을 몇 배로 만들어 준다. 그림책에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림책에는 어른인 우리의 모습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 그림책은 우리 모두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부모라는 의무로 똘똘 뭉쳐서 책을 읽어 주었다. 분명 그때 그들과 나누었던 시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 수애는 모녀 관계가 아닌 한 인간으로 다양한 사고와 시선을 인정하고 그 생각을 존중하며 나눌 수 있다.



결혼 생활에서, 그 어떤 갈등적인 상황에서 또 우울감이 온통 그녀를 덮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버티게 해 준 건 '책'이었다. 책은 결혼 생활의 햇수가 더해갈 때마다 한 권씩 늘어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가운데 한 번씩 조화롭게 들어가 있는 그림책이 수애를 향해 뿌듯해하며 미소 짓는다. 그녀의 삶은 이렇게 흘러 가리라. 그녀의 결혼 생활이 때론 바쁘고 가끔은 천천히 지나간다. 그 가운데 항상 곁을 함께 하는 책과 동반한 삶에서 감정과 마음은 안정되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모습을 발휘한 것 역시도 책 읽어주기였던 거 같다.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결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순간의 시간 속에 그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결혼의 시작에서부터 아주 편안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오늘도 수애는 읽고 읽어준다. 끊임없이 쓰고 생각과 마음을 나눌 것이다. 감정을 나누고 휘둘리지 않으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책을 그리고 그림책을 읽고 나눔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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