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사랑은 진짜였을까요?
"아기가 엄마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던 독립의 순간, 결과와 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과연 그 시간을 진정한 독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정 속에는 엄마의 의지가 가장 크게 개입되어 있었다. 세상 공기를 생에 있어 처음으로 들이마시는 깊은 들숨의 순간 아기가 깨닫게 된 사실은 현실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그녀를 잠시 부끄럽게 했다. 변화된 호흡이었을까, 자신은 전혀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던 관계가 시작되면서 그 순간의 두려움이나 설렘이었을까.
'순간 아기는 벅찬 호흡의 횟수를 고민했을까 아니면 호흡의 양을 어림으로 측정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의지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 구경을 시작하면서부터 애착이 더 한 것이나 신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기는 무의식에서도 그들에게 미치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기는 엄마와 유착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탯줄조차도 자신의 의지로 잘린 것이 아니었다. 이후 아기가 가냘픈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애써왔던 최소한의 노력도 맘대로 할 수는 없었다. 성장을 통해 비율과는 별개로 의식과 무의식은 점점 커졌고 의식의 세계에서의 아이는 여러 교육을 통해 학습을 했다. 그것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는 수애는 소중한 경험 이후 성공이라는 섣부른 총평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울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세상에는 아이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윤회의 삶이 비록 상상만으로 이루어 질지 그것이 현실이 되는 진실일지는 누구도 단정 짓기 어렵다. 아이는 윤회의 삶, 곳곳에 데자뷔의 순간들이 숨어있는 삶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 엄마의 몸에서 탯줄이 분리되는 순간 아이의 삶에서는 다시 죽음으로의 항해가 시작된다. 수애는 항해의 정점에서 엄마가 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결혼의 선택은 피해 갈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그녀가 사랑의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항상 휘둘리고 있었으며 사실은 사랑을 잘 몰랐던 그때, 주변에서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수애 주위에는 항상 그가 함께 있었다.
그걸 인연이라 할 수 있을까? 관계를 이어가려는 서로의 노력이었을까? 그때 이미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그 감정을 "사랑이야!" 하고 단정 짓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체적이거나 능동적 표현보다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받아내는 것,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감정에서 조차 받는 것에 더 익숙한 두 사람은 그때까지는 원인도 모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혼식이라는 예식을 잘 치렀다.
단상 위를 걸어 나가며 한 발 뗀 첫걸음에서 묵묵하지만 최선으로 절제된 아빠의 호흡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오히려 수애가 아빠를 이끌며 천천히 걸었다. 단상위 저 끝에 서 있는 남편과의 거리가 물리적 거리보다는 훨씬 길게 느껴졌다. 심호흡과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남편 앞으로 걸어갔을 때, 아빠가 꼭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남편에게 건네주었을 때도 수애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남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떨고 있는 그의 손이 보였다. 그의 두려움으로 사랑 안에는 설렘과 열정도 존재하지만 떨림과 수용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애는 식이 거행되는 중에도 끊임없이 되물었다. '과연 나는 사랑을 알긴 하는 걸까?' 사랑이 무엇인지라는 물음에는 역시 묵묵부답이며 뭐라고 정의조차 내릴 수 없었다. 기념 촬영을 하는 가운데 그제야 그녀 시선에 혼주석에 앉아있던 엄마의 눈빛과 입술의 움직임 그리고 힘들게 지나온 기억 속의 시간이 떠올랐다. 힘든 그 시간이 보이자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벅찬 감정이 밀려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쓴웃음 뒤에 감추어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하염없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반성과 감사의 이중적 마음과 혼주석을 힘없이 지키고 있는 부모님의 나약함이 수애에게 사랑으로 다가와 가슴이 먹먹했다. 세대가 바뀌면 언젠가는 다시 강해 지겠지만 나약한 모습의 자세를 한, 또 다른 부모가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들은 단상 위의 지나치게 밝고 순수해서 위태롭게 서 있는 남녀의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소망하리라. 잘 살아 주기를 갈망하며. 다시 부부의 2세에 대한 기대로 집안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가 생길 것이다.
삶은 무의미한 듯 보이지만 그것에는 유의미한 가치가 스며있으며 그녀는 늘 그것에 집중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결혼을 선택한 후의 결혼 생활은 책임에 의한 의무로 지나왔다. 가치를 찾지 못했던 결혼 생활에서 아이를 통해 수애와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사랑과 신뢰... 이만하면 삶은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이고 만져지고 재화화 된 뭔가를 찾을 수 있는 표면에 드러난 것 외에도 결혼 생활은 가치와 의미로 뭉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