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홀연히 조 사서가 사라지고 "늘"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그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건 이제 자신도 그림자 세상에 들어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과 주연이 점점 그림자화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밀려오는 절망의 어디 중간쯤의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잠시 후 "늘"은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듯 조 사서가 손에 쥐어준 종이를 외었다는 듯이 바닥에 구겨서 버리고 호숫가로 뛰어들었다. 이제 김 대표에게 가서 따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호숫가의 물들이 "늘"을 밀쳐내는 듯 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이 원한 건 "늘"이 아닌 조 사서였다는 듯이 더 이상 너는 그림자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듯이 호숫가에 있을 리 만무한 물결들이 일렁이며 "늘"을 떨어진 젖은 낙엽들과 함께 자꾸 물 밖으로 밀어 보냈다. 그리고 같은 행동을 몇 번을 시도한 끝에 "늘"은 김 대표가 더 이상 자신이 그림자 세상에 들어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김 대표의 그림자 세상이라는 건가..."
물들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오게 된 "늘"은 흠뻑 젖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망한 듯한 눈빛으로 아무도 없는 적막한 호수에 대고 외쳤다.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나는 절대 포기 안 해! 그리고 당신이 나를 찾아오게 만들 거야 반드시!"
예전이라면 포기하고 돌아갈 "늘"이었지만, 지금의 "늘"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건 아마도 몇 명의 그림자들을 만나면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온 변화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이 이제는 예전의 혼자였던 "늘"에서 자신이 자신의 그림자 "하늘"과 늘 함께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몸도 마음도 어느새 단단해져 있었다."늘"은 축축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 다짐했다.
'김 대표 나는 내일도 올 거야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야!'
라는 결심을 하자 당장 본인이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조 사서가 남긴 그와 주인과의 소설의 마무리 짓는 것! 그것만 올린다면 인간 세상도 그림자 세상도 누군가는 김 대표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그가 적어준 주소와 아이디 패스워드를 곱씹으며 "늘"은 주연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이 집으로 향하는 길에 쉽사리 조 사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야 얘기 들었어? 저기 인간과 그림자 상담소 영업 중지된 거 말이야 그 예약받던 그림자 조 사서가 그림자 영혼을 먹는 악령이었데 그래서 중단된 거라던데?"
"에이~ 설마!!
"진짜야! 그림자가 아니고 악령이었데 그림자 입주센터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야 다행히 김 대표가 바로 알아차리고 조치를 했다나 봐 그 박쥐 같은 악령이 그림자들의 영혼을 먹어서 인간 세상에 코로나라는 것도 유행한 거라던데?"
"뭐? 진짜야? 정말 무섭다. 바로 우리 옆에 그림자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그 악령이 있었다는 거네?"
"그러니까 정말 세상 무섭다. 너도 조심해 "늘"이라는 인간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조만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 김 대표가 빠르게 영업을 중지한 거래. 인간이 그 정도면... 우리는 아주 한주먹 거리야!"
"야 지금 지나가는 애 개 아니야? "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서 눈은 새빨간 거 봐 진짠가 봐!"
-웅성웅성-
예전에 들었으면 믿었을 그들의 이야기가 "늘"에게는 이제는 믿지 못할 거짓으로 범벅된 이야기로 들려왔다.
그리고 김 대표의 소문의 다음 목표는 본인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자신을 쳐다보는 그림자들을 무시한 채 걸음을 재촉해서 주연의 집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지문 없는 수진이 청소를 깨끗하게 해 준 덕분에 예전의 상태라면 쉽사리 찾을 수 없었던 주연의 노트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 사서가 알려준 사이트를 검색해서 그가 알려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치고 들어갔다.
ID: 야초툰의 그림자 / 비밀번호 : 비밀이에요
그곳엔 아직 발행하지 못한 한 권의 스토리 북이 있었다.
가제: 그림자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행히 그 스토리 북은 "늘"이 발행 버튼만 누르면 바로 인간 세계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공모전에 같이 올려지게 설정되어 있었으며, 그림자 세상에 있는 그림자 작가의 블라인드에서 바로 볼 수 있게 연동되어 있었다."늘"은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를 수도 있었지만, 남을 믿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듯이 늘 글을 발행하기 전에 재 확인하는 고질병이 생긴지라 "늘"은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왼쪽 상단에 있는 맞춤법 검사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수정 수정 버튼을 누르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김 대표의 계획 아래에 있었다.
실이의 소문도
주연의 그림자도
하지만 "늘"이라는 인간은 김 대표의 계획 안에도 밖에도 어디에도 없는 시나리오 었다.
맞춤법 검사 ->늘 or 들 //넘기기 or 수정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 사람으로 인해 김 대표의 풀 수 없던 실타래 같던 이야기도 풀 수가 있었다.
실이는 그러니까 김 대표의 아버지 그림자였다.
황혁의 텐트 앞에 동전이 찰랑이던 소리에 김 대표는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미친 듯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찾아보게 되었다.
'제발 불행해라 제발 불행해야 해 내가 복수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처절한 상태였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찾은 그의 아버지 그림자는 애교 많은 개의 그림자가 되어 한낮에도 뒹굴뒹굴 구르며 햇빛을 쐬고 자고 있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장면에 김 대표는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고, 행복하게 낮잠 자고 있던 그 그림자에게 자신과 똑같이 버려지는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 같다. 그날 김 대표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찾아와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버렸어 아니 내가 그를 버림받게 했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자신의 탓인 줄 알고 말이야.. 그 사람 아니.. 그.. 개는 그걸 느끼고 기억해야 해! 내가 느꼈던 고통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 말이야클클클클"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실이라는 강아지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주인을 놓쳐버린 멍청한 그림자"
"버림받은 그림자"
라는 꼬리표가 실이의 꼬리에 붙게 되었고, 그림자들은 실이가 가는 곳마다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그림자 세상에 파다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김 대표가 실이를 입주자 세상에 데려왔을 때 나를 찾아와 신신당부를 하며 말했다.
"실이라는 강아지가 앞으로 내가 했던 일을 할 거야! 소문 들었지? 그 개 말이야 주인을 놓쳐버린 멍청한 그림자 말이야.. 조 사서는 그냥 알고 있으면 돼! 이제 그는 버려질까 두려워 나를 따르게 되겠지. 그는 절대 나를 버릴 수 없어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말이야! 클클클클"
그는 가족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미친 듯이 웃어댔다. 마치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응어리들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는 듯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지만 며칠 못가 그는 불안한 듯 입술을 뜯으며 나를 찾아와 말했다.
"어떤 인간을 봤어... 그런데 그 인간의 몸에 이미 그림자가 있었어.. 말이 돼? 그림자와 한 몸인 인간이라니! 이건 말이 안 돼 내가 붙이지 않은 인연이 인간의 몸에 있다니 말이야! 그리고 마치 나를 속이려는 듯이 쌍둥이 중 한 아이에게 그림자가 붙어 있었어. 실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거야.. 없애야 해. 그것은 분명... 인간 영혼과 그림자 영혼을 흔들 수 있는 그 무엇인 거야.. 내가 막아야 해!"
그리고 그는 소리 없이 며칠간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이상한 말을 하던 그가 나타나지 않자 나는 실이에게 김 대표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불쌍한 실이는 그가 출장을 가서 며칠간 그림자 세상을 비웠다고 자신에게 그림자 세상을 맡긴다며 떠났다고 했다. 그때 실이는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듯 불안하고 슬퍼 보였다. 그때에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지만 차마 실이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김 대표와 관련된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추측했을 뿐이었다. 한 달 후 다시 만난 김 대표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계속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내가.. 없앴어. 그래 영혼 없는 인간은 이제 살아남을 수가 없을 거야.. 이제 내가 사랑했던 내 피리도 다시 볼 수 없겠지? 조 사서!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자 세상을 위해서 그런 거야..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야.. 어린 그 아이를.. 내가 그랬어 내가 그의 어머니한테 가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어 그러면 인간과 그림자의 경계가 흐릿해지거든.. 그리고 또..."
"김 대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처음으로 그가 무언가 나쁜 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에 그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내 추궁에 갑자기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싸늘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뀌더니 나에게 대답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 일도! 조사서 지금 당장 우리의 그림자 등록증에 그림자 하늘이라는 이름을 지워줘 아무도 찾지 못하게 말이야. 모든 흔적을 지워 그래 다시 그 피리가 태어난 것은 아무도 몰라야 해 "
그렇게 그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사라졌다.
아마도 그는 그가 이름을 바꿔서 운명이 바뀌어버린 하늘이라는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사라진 아이가 살아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계획에는 없었던 강한 모성애가 "늘"이라는 인간의 영혼이 빼앗겨 죽어가는 아이에게 그림자 영혼을 갖게 한 것이다. 영혼이 뺏긴 빈 몸에 그림자 거울을 통해 마치 그 그림자가 원래 그 아이의 영혼인 것처럼 속여 밀어 넣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김 대표가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림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소를 열게 되었을 때였다.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인간이 위로가 되었어요"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사는지.. 내가 더 낫지"
라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본능적으로 그 "늘"이 "하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김 대표는 내 옆에서 나직하게 속삭였었다.
"살아있었어.. 그 아이.. 그 피리는 아무도 불지 않았는데 혼자서 그림자들에게 소리를 내고 있었어 나를 끝내 무너트릴 파열음을 말이야!"
김 대표의 눈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