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키워낸다는 것
하ᆢ
겨우 4개월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짐을 풀었다.
갈 땐 캐리어 큰 거 1개였는데 들어올 땐 2개가 꽉 차서 기내가방에 짐이 한가득이다.
화장품도 늘고 옷도 늘고 근심거리도 늘었다.
학원도 1년은 다녀보고 옮기는데 4개월 동안 몇 천만 원이 공중분해되었다.
아이가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을 가질까 봐 어느 정도 손실만 공유하려 했으나 순간순간 버린 돈과 버린 시간이 억울해 아이를 향해 원망하는 말을 쏟아낸 엄마는 그럼에도 자식이기에 앞날이 걱정되어 플랜 B를 찾아본다.
무용에 쏟은 시간과 돈이 버거워하던 차에 유학이 오히려 돈이 작게 들어가 권했던 건데 입시가 코앞이라 과외비 따로 매달 100만 원 넘게 나가고 기숙사비 매달 100만 넘는 돈과 용돈도 매일 요구해 아빠의 휴일은 365일 중에 겨우 자는 시간이 전부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때 잘 돌아왔다.
계속 있었더라면 큰아이의 인생은 그리 밝지 않았으리라 본다.
결과야 어찌 됐든 부모의 눈에는 1년을 버티고 버티며 최선을 다한 후 그만두는 것에 고민을 하면 귀 기울여 볼 텐데 겨우 몇 개월 만에 그만둔다고 하니 악바리 근성이라 여겼던 큰아이의 성실성에도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뭐든 끝까지 노력했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 무수히 많은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ᆢ 부모의 마음뿐이다.
살은 쪄있고 귀에는 피어싱이 그야말로 부모눈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게 족히 10개는 되어보인다.
분명 무용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는 이유를 대며 귀국했지만 입국한 이후로 무용얘기 자체를 들어볼 수가 없다.
어느 날 무용학원 언니들을 만나러 간단다.
그래 바람 쐬고 들어와~
무용 가기 전 체중감량이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터라 늘 아이를 지켜볼 수 없으니 많은 시간을 같이하는 원장님께 눈물로 부탁드린 적이 있다.
자해를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적도 있고 초등시절 아주 살짝이지만 보란 듯이 엄마 앞에서 손목을 그은 적이 있는 아이라 지나치며 하는 소리들이 엄마에겐 비수처럼 꽂힌다.
눈치가 보통 빠른 게 아닌 큰아이라 원장님 혼자 알고 계시되 지켜봐 달라는 신신당부를 드렸던 건데 원장님도 걱정이 되셨던 건지 고3아이들에게 큰아이를 잘 보라고 하셨나 보다.
엄마가 나 돌아갈 곳 없게 만들었어. 학원에 나 자살할 수 있는 애로 소문 다 내서 무용 못해.
반이상은 큰아이가 넘겨짚고 떠보는 질문인데 속아서 다 불어버린 어리숙한 행동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엄마는 죄인이 되어 구차한 변명만 내놓지만 큰아이에겐 진심이 전해지질 않는다.
늘 그렇듯이~~
벌써 고1이 이렇게 끝나버리다니ᆢ
한편, 학교 책상에서 365일 졸며 인생에 대한 도전이나 고민 없이 보낸 시간보다 나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위로도 해본다.
한국 들어오면 방문을 열고 있고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나 뭐ᆢ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 같다.
첫날은 노력하는 듯 식탁에서 먹는 모습이 보이고 밥 먹자고 하면 나왔으나 점점 더 밤낮이 바뀌어 얼굴보기 힘들어지고 방에서 뭘 하는지 당체 알 수가 없다.
방 안에서 전자담배를 피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때다.
동생에게 지나치리만큼 '너는 절대 담배 피우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게 이상해 보이면서도, 자신도 안 하니 저런 말 나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으니ᆢ
그렇게 2025년 새해를 같이 보낸다.
아빠는 출장 중이고 엄마는 두 아이와 영화를 본 후 식사하러 갔다.
분위기가 맘에 드는지 큰아이가 엄마에게 담에 자신이 돈 벌어 한 번 더 오자고 한다.
그땐 성인이니 같이 술 한잔도 하자고 한다.
엄마는 큰아이의 작은 표현 하나하나가 늘 고팠기에 감동하며 그러자고 한다.
이미 술ㆍ담배 하는 아이란 걸 모른 채ᆢ
초등 4학년때 유학을 원해 알아본 나라의 가디언과 다시 연락이 되었다.
마침 한국에 계셔 만나서 지금 상황을 얘기했더니 1월에 같이 출국이 가능하단다.
한국에서는 무용도 안 하고 공부는 중학 3년 고등 1년 내내 손을 놔서 대학을 갈 수 없어 해외대학만이 길인 듯 해 아이에게 물었더니 방콕이나 미국 혹은 일본을 원한다.
밤마다 영어로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것 보니 거기 남자친구가 있는듯하다.
혼자 방콕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둥 계속 방콕과 일본을 얘기한다.
나중에 보니 짐작대로 남자친구가 있는 나라다.
인스타 친구인듯하다.
자신이 몇 달 동안 날린 게 있으니 강하게 말을 못 하고 결국 초6 때 가려던 학교에 다시 가기로 한다.
그로부터 10일 정도 지난 후 출국이다.
보딩스쿨에 원어민교사가 적고 영국학교라 규율이 엄격한 데다 학비도 1년에 2천만 원 중반이다.
기숙사포함 학비라 이 정도의 비용은 한국에서 고등학생이 학원 다니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못해도 영어라도 배우는데 한국에선 학원전기세만 주는 꼴이 될 테고 친구 만나는 주말 지출비용과 옷 사는 비용 등을 따지면 유학이 나아 보인다.
게다가 중1때 친했던 일진 친구와 연락하는 상황이라 무용도 공부도 놔버린 큰아이가 그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그려져 더 맘이 급한 엄마는 보내는게 아니 보내버리는게 최선으로 생각한다.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엄마에겐 업무보기도 수월하다.
일을 할 시간에 돈 보내라는 문자폭탄, 시끄럽게 준비하는 소리, 문 세게 닫는 소리. 아이들 수업오기 전 화장실청소해 놓으면 어질러놓고 가는 등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엄마가 큰아이와의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건지 아이를 위한 건지 모를 선택을 권했더니 큰아이 또한 다른 방안이 없기에 받아들인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내심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 못 가게 된 것도 아쉬운 눈치다.
유학카드를 꺼낸 것도 다시 다른 나라 유학카드를 내민 사람도 아이가 먼저 제안한 게 아닌 엄마의 의견이었다.
아이가 절실해서 얘기한 거였더라면 달라졌을까
미처 생각 못한 방법일지라도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좀 늦은 고등학생이지만 긴 인생을 두고 방에서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앞으로 일어날 큰 일들이 안 일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