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각을 엄마의 그릇에 절대 담을 수 없다.

어른만 심각하다. 정작 아이들은…? 즐겁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


둘째는 유치원에 다니고,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2024년이 생각났다.

항상 같은 기관에 다녔던 것이 <나의 경험의 전부>라

등하교 시 내 품이 2배를 들여야 했던 상황이 힘들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거리가 좀 있던지라, 항상 바쁘게 여기저기 바쁘게 다녔다.)

여기서 힘들었다 함은 항상 같이 등원 하원을 시키다가, 등하교로 분리되면서 내 일이 두 배가 늘어난 것과 같은 날 체육대회, 입학식, 학부모 참여수업 등등의 학교행사가 겹치는 날이 종종 있어 둘째 행사에는 참여를 못하거나 지각하는 일이 비번하게 발생했던 상황을 말한다.




물론 닥쳐서 벅찼던 일과가 펼쳐지며 힘들었지,

처음에는 다른 기관에 다니게 된 것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슨 연유 때문인지 갑자기 나와 동생이 생각났다.


지금 내 아이의 나이 무렵…

나와 동생은 완전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두 학년 차이가 나는 “아이의 학교”가 달라진다는 게 어른의 입장에서는 엄청 큰일인데

동생과 나는 이것을 <이상하다고 불편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른 학교로 배정이 된 이유는 행정법상 주소지 편입의 이슈였다.)


막상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면 6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상황이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상황을 그냥 받아들였을 뿐,

동생과 학교가 달라서 불편하다거나 억울함 또는 어색한 감정조차 없었다.

(소풍, 운동회 때 매번 날짜가 달라서 ‘엄마가 항상 두배로 김밥을 싸고 고생했겠구나.’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도 나의 경험을 거울삼은 후 생겨났다.)



그때의 내가 경험했던 상황은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는 없었고
오늘 아침까지도 그 상황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고, 다른 기관에 보내본 후에

몸소 불편함을 느낀 후에야 40년 전의 그때 이슈가 생각난 것이다.





지금의 나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어떤 특정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그게 싫고 말도 안 되고 하는 감정들은 엄마의 생각”인 것이지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고 즐겁겠구나.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과 근심 어린 시선은 오로지 ‘나의 것’일뿐

아이들은 그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걱정 또는 불안을 전혀 모를 수도 있겠다.

매번 엄마의 시선, 내 경험의 눈으로 아이를 지레 걱정하고 재단하는 엄마의 잣대를 인지하고 거두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도 아이 둘은 모든 상황이 불편함없이 즐거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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