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지는 텃밭

김장을 했습니다

by 어린왕자


올 한 해 텃밭 농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갑니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로 매주 가던 텃밭도 한 번쯤 덜 가게 되고 물 주는 횟수도 겨울 들면서 거의 줄었습니다. 오며 가며 얼굴 비추는 정도로 잊은 듯 지냈습니다. 멀리 있는 친구집에 가면서 누런 호박 두 덩이를 따 준 이후 이주일 만에 배추를 수확하러 갔습니다. 50 포기를 심은 것 중 알이 꽉 찬 배추는 몇 포기 되지 않았고 듬성듬성 배춧잎 몇 개만 붙어있는 것도 많이 보입니다. 그것들은 쌈 싸 먹거나 국거리로 해 먹으면 좋을 것들입니다. 올해 배추 작황은 작년 수확의 반도 못 미치네요.


손에 잡으면 한 줌도 안 될 배추를 겉잎 따서 정리해 놓고 무도 뽑아봅니다. 무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토실한 무는 하나 없고 전부 총각무 수준입니다. 그런데 요것들이 나를 눈물 나게 합니다. 매주 마주 보며 잘 크고 있나 관심을 보여주고 물도 주고 응원해 주었던 일들이 벅차게 떠오릅니다. 친구가 잘 다듬어둔 김칫거리를 집에 갖고 와 싱크대 앞에서 그들을 씻겼습니다. 인삼 뿌리를 닮은 무도 있고 제법 잘생긴 무도 있고 그저 알타리 같은 무도 많지만 모두가 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산 것들이라면 무 크기가 작아 아마 버렸을 겁니다. 이것도 파냐면서 투정을 부렸겠죠. 인삼 뿌리처럼 가느다란 무 같은 것들을 팔기야 하진 않겠지만 내 손으로 키운 것들은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손으로 흙을 털고 씻어내면서 농사짓는 일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도저히 그냥 버릴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어제 저녁 배추를 다듬고 절여서 김장을 했습니다. 속이 노란 배추는 몇 포기 되지 않았고 무도 그리 통통한 건 없지만 열무김치 담근다 생각하고 버무렸습니다. 그러고는 오늘 점심으로 담근 김치를 먹었습니다. 익으면 더 맛있을 것 같네요.


아직도 텃밭에 걷어내지 못한 배추가 있습니다. 알이 차지 않은 배추지만 달달하니 맛있겠더라고요.


휑하고 텅 빈 텃밭에 겨울이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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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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