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쯤
[6시쯤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새벽 6시는
신선함
새로움
개운함
그리고 고요함이 느껴져서 좋다.
새벽 6시의 여름은 밝아 오기 시작하고,
겨울 이면 아직 캄캄한 밖을,
창을 통해 바라보며,
따뜻한 물 한잔을 천천히 마시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
장기 하나하나가 새롭게 재생되는 기분이다.
미국에서의 오후 6시쯤은,
수업을 다 마치고,
혹은 일 하고 집에 온 시간이었고,
엘레나와 집에 있을 때는 이른 저녁을 먹고,
혹은 엘레나가 없는 날은,
소파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Bay view’를 바라보며,
북부 캘리포니아의 바람을 느끼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후의 6시쯤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 같고,
몸이 살짝 나른해지 것 같은 시간이라 좋다.
한국에서의 6시.
새벽 6시는 출근 준비로 바쁘고,
오후 6시는 퇴근 준비로 바쁘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의 새벽 6시, 오후 6시 둘 다,
37살에 새롭게 즐기고 있다.
평온함과 나른함 대신, 활기를 느낀다.
비록 하던 공부, 전공, 경력과 상관없이 영어 강사 일을 하지만,
새벽 혹은 퇴근 후에 와서,
공부하는 이들을 만나면,
그들의 나이, 직책과 상관없이,
함께 있으면 활력을 느낀다.
물론 삶의 고단함 과 지침도 묻어나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하려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몸과 정신에는 에너지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한 동안 그런 에너지, 그런 기분을 잊고 살았던 거 같다.]
현정은 노트를 꺼내 글을 긁적이다 보니,
그녀가 언제 가장 에너지가 가득 채워져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
현정은 한국에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006년 시카고로 떠났다.
왜 시카고였냐고 묻는다면,
시카고는 ‘windy city’로 불린다.
바람이 좋아서.
그리고 재즈와 갱스터의 도시이지 않던가.
재즈의 역사는, ‘African-American’의
‘억압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사회와 그들의 예술적 비전에 대한 제한’을
상기시켜 주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정은 억압과 차별보다는, 자유와 해방에 초점을 맞추었다.
갱스터는 그저 영화에서 본 대로, 호기심 정도.
시카고는 이런 배경에,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은 빌딩과 집들로,
예술적 감각과 미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도시고,
게다가 시카고 대학의 ‘computer science’는 미국에서 10번째 안에 들 정도로,
좋은 학교다.
바람.
자유와 해방.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urban city’
‘dandy’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도시.
그리고 학교도, 공부하는 전공도
‘good ranking’ 이 이유라면 이유다.
유학 기간 동안 현정은 쉴 틈 없이 살았다.
대학 4년, 전공과목에 영어까지 해야 해서,
늘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야,
영어가 제2 국어인 외국인 학생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에너지가 가장 많이 채워져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꽤 즐겁다.
그녀가 영어로 인해 겪었던 어려운 것들도 나눌 수 있어서 말이다.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서 취직이 되길 바랐지만,
실력 좋은 자 국민 애들도 많은데,
굳이 외국인에게 ,
’Visa’까지 스폰서 해주면서 고용할 회사가 얼마나 될까 했다.
하지만, 현정은 성적이 우수했고,
전공과 관련된 인턴쉽과 발룬티어를 보수와 상관없이,
거의 경력을 쌓는 거지 무보수인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으며,
교수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이 필요한 일들을 도왔다.
그런 그녀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추천서도 잘 받았고 ,
그녀의 학점, 경력 모두 훌륭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헤드 쿼터가 있는 ,
’IT’ 회사의 ‘Product manager’로 입사했다.
‘Product Manager’의 일은 제품과 고객의 요구, 기대가 모두 충족될 수 있도록,
제품에 대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팀을 운영하고,
필요한 업체에 설명해서, 비즈니스의 성과까지 올리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현정의 전공이 ‘computer science’ 라 컴퓨터와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이해가 높고,
게다가 그녀의 엄마 쪽에 흐르는 타고난 미적 감각과
그리고 아버지 재철의 비즈니스 수완을 그대로 닮은 현정은,
일을 꽤 잘했고,
성과도 좋아서,
입사한 지,
4년 만에, 회사 지원으로,
’Green card’ 도 받고,
승진도 했다.
그 무렵 회사 연말 파티에서,
회사 파티라서 간 현정은 투자자로 초대받아서 방문한 토드를 봤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그였다.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 사람? 누구더라?’
하며 어느 그룹에 가도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현정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런 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파티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빨리 집에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조용히, 혼자 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또한, 현정은 미국에서 살면서,
많은 이들이 파티와 술에 중독되어 삶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았고,
미국에서 혼자 지낸 현정은,
여자, 외국인 학생이었기에,
좀 더 조심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현정은 자신이 선택한 삶이 옳았고,
꽤 괜찮게 잘 살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사교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직장 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부터 연애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연애를 한다면, 현정은 재철 같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도,
적어도, 파티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 파티도 술 취하는 사람들도
멀리서도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즐기는 사람도,
그녀에게는 전혀 흥미 롭지가 않다.
현정은 마지못해 동료, 라이언과 잠깐 참석해,
사회성이 짙게 묻어나는 사무적이고 전문적이지만,
가식적이진 않은 친밀함을 담은 미소와 태도로
대화를 하고 적당한 때 사람들이 미친 듯이 취하고,
정신이 나가는 것을 보기 전에
파티를 나왔다.
토드는 멀리 서 있는 현정을 봤다.
사실 그는 이 안에 있는 이들 모두를 스캐닝했다.
그중, 현정도 눈에 띄었다.
키 가 큰,
드문 동양 여자.
그것 하나만으로도 미국 사회에서 현정은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그리고 현정이 눈에 띈 다른 이유는,
이 파티에서 그를 주목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단 한 사람 만이 이 파티도, 그도 시큰둥하게,
미국 여자들처럼 발랄하지 않고,
호기심도 없고,
차갑고 건조한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그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져,
눈에 띄었다.
그는 현정을 보며,
파티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표정은 저런 건가라고 생각하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다,
잠깐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고개를 돌리면,
어느 순간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Todd Chen.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계 미국인 3세로,
그의 조상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그 당시, 땅, 건물, 주식을 많이 사서 후손들이 그 덕을 보고 살고 있는,
이른바, 미국인 이민자 금수저이다.
그는 건물을 관리하고, 주식이나 거래하는 별 직업 없이,
가업이라면 가업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는 돈 많은 한량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미국에서 꽤 좋은 대학에서 비즈니스와 금융을 전공했고,
그는 투자에 대한 재능과, 감각과 머리가 있어,
재산을 더 불리고 있었다.
그는 주로 ‘IT’ 회사에 투자를 했고,
그 회사들이 이제 막 성장하는 회사지만,
미래에는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투자를 해서,
투자로 꽤 재미를 보고 있을 때였다.
훤칠한 외모와 유복하게 자란 여유,
게다가 그의 특유의 섹시한 매력미에,
그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과 예절까지 갖추어,
메너도 좋은 데다,
사교적 이기까지 해서
그의 주변에는 그의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젊은 사업가들,
그리고, 그런 사업가들을 동경하는 여자들,
그리고 그와 함께 파티를 즐기는 돈 많은 이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는 그런 주변의 관심을 즐기는,
사업가,
투자자,
파티광이다.
그 뒤로, 회사는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금요일 저녁,
회사 건물 루프탑에서 파티를 했고,
토드는 직원 마냥, 사실 임원이나 ‘CEO’ 정도 되는 위치로 파티에 참석했다.
이 파티에서 토드만큼
주목받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Catherine, M Olsen.
그녀는 이 회사의 파티에 어떻게 왔으며,
왜 왔는지 알 수 없는 여자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분야와 연계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토드는 처음에,
이 여자가 이 파티를 주관하는 업체 사장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입은 옷차림,
그 옷차림으로 드러난 몸매,
그녀의 말과 몸짓이 회사원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토드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 더라, 이야기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왔고,
그녀의 가족은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으며, 매장도 여러 개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가족 회사 제품인 화장품을 쓰고,
그녀의 ‘sns’에 올리기도 하지만,
그녀까지 일하지 않아도, 그녀의 가족 사업은 꽤 크고 잘 돼서,
그녀는 가끔 ‘sns’ 나 하면서,
사치스럽게,
파티나 다니며,
시간과 돈을 쓴다고 한다.
그녀는 북유럽 조상과, 이곳으로 이주한 이들이, 라티나, 백인, 흑인이 섞이면서,
‘dark brown’의 피부와, 짙고 깊은 상거풀이 있는 큰 눈망울에,
북 유럽인의 푸른 눈동자,
그리고 얇고 오뚝한 코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묘한 매력을 가진 얼굴과,
모래시계 같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짓는 웃음,
사교성, 발랄함, 게다가 부족하지 않은 재력까지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고,
남자들은 그녀와 썸을 만들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렇게 만든 인맥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나가는 셀럽이 됐고,
각종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남부 보다 북부 사람들이 조금 더 맘에 들었다.
잘 만 만나면,
똑똑한 머리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 그
리고, 그녀의 눈웃음에 쉽게 넘어오는,
너드 같지만, 순순하고 열정이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서린은 이곳에서 토드를 봤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만 들었지,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붉은 사파이어처럼 밝게 빛나는 그.
어느 한 곳에도 집중하지 않는 눈 빛.
하지만,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눈에 더 들어오게,
더 열심히
열렬히
관심을 가지게 하는 그 눈빛과 웃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 가진 듯한 여유와 자신감.
그러면서도, 허락하지 않으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차가움 속에
금세 침대로 달려 들 듯한,
숨 막히는 매력이 넘치는 그였다.
그녀는
토드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그의 옆으로 점점 다가갔고,
그의 눈에 띄기 위해,
웃고 떠들고
간간히 그의 손목이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터치하기도 했으며,
드레스의 앞부분이 깊게 빠져 보이는,
풍만한 가슴을 실수하듯 그 앞에 보였다.
토드는 그의 옆에서 의도적으로 그의 관심을 갖기 위해 행동하는 그녀를 봤고,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미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녀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육감적이다.
토드도 이야기 중간중간 케서린의 허리에 손을 두르거나 귓속말을 하며,
그녀의 보이라고 드러낸 풍만한 가슴을 쳐다봤고,
그녀는 토드의 그런 행동과 눈빛에 더 반응하며,
토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케서린은 기다렸다는 듯,
토드의 팬트 하우스로 갔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토드의 입에 입맞춤을 한다.
한껏 달아 오른 그녀는
토드의 바지를 벗기고 그의 것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꽤 만족한 듯 보인다.
토드는 그 후로도 그녀를 여러 번 만났고,
그녀와의 잠자리는 늘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케서린은 사교적이다.
그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시고, 떠들며 놀 수 있었다.
토드는 그녀와 계속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그녀가 그의 집에 와 있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네가 좋다면, 내 집에 와 있어도 좋아.
둘이 있게 된다면,
좀 더 큰 집으로 갈 수도 있어.
라고 말하려 했다.
그날 파티에,
숨은 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몸에 착 붙은
옷 이라기보다는
거의 피부처럼 보이는, 어깨와 목선이 다 드러난,
하얀색 시스르 드레스를 입은 케서린은 ,
토드를 순간순간 유혹하고 방해하고 성가시게 하면서,
관심을 그녀로 돌리게 하려고 한다.
토드는 그날 비즈니스 상 중요한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토드가 가장 혐오하는 상황이다.
왜? 비즈니스를 이 밤에,
그것도 파티에서, 술을 마시며 하지?
그런데, 이 놈이 지금이 좋다고,
흔쾌히 이야기를 하자
제안했다.
정신 나간 놈
그런데 토드가 꽤 정성을 들인 투자건이라,
이 놈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제기랄.
몸 반쪽은 이 놈에게 돌려,
이 놈 이야기에 귀를 기울 이고,
몸 반은 케서린에게 맡기고,
이야기 중간중간, 그녀에게,
“Honey, can you wait for me?”
라고 말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고,
지루해진 그녀는 잠시 자리를 뜬다.
토드는 그제 서야 한숨을 돌리고,
이 정신 나간 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집중해서 빨리 끝내고 여기를 나가,
그녀와 집으로 달려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집중을 해서 그런지 대화는 빨리 끝났는데,
정말 정신 나간 이 놈은,
그럼 월요일 오전에 사무실에서 만나 다시 이야기하자고 한다.
제기랄.
됐다고,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오기가 생겼다
다음번에는 이 놈이,
제발 좀, 투자해 달라고 매달리게 하리라.
주변을 둘러보지만,
케서린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나?
발코니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나?
케서린은 멀리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그를 봤다.
블랙
블랙 슈트
블랙의 짧은 머리
훤칠한 키에,
적당히 마른 몸매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남자.
그도 케서린을 봤다.
안 볼 수가 없는 여자지.
둘은 눈짓을 교환했다.
그녀 앞에 선 그가 말한다.
“You are so gorgeous.”
“You are right. But my partner is busy today. To surprise him, I didn't even wear underwear.”
“Could you show me?”
“Could you make me fun?”
토드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발코니에도 나가 봤다고,
다시 화장실 앞으로 가 본다.
길이 엇갈렸나
하고 돌아 오려 는데,
복도 끝 옆 벽에서 남자가 걸어 나온다
저곳에 문이 있었나?
서로 눈인사를 가볍게 주고받고,
남자가 그를 스쳐 지나가고,
토드도 다시 몸을 돌려 가려는데,
같은 곳에서 여자가 걸어 나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말은 보통 토드가 듣는 쪽이었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내가 있는데 왜 그랬어?
라고 물었다.
그녀는,
너도 나만 만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심각한 사이도 아닌데,
서로 즐기고 각자 즐기는 게 나빠?
라고 말했다.
이것도 주로 토드가 여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길바닥에서,
그것도 여자에게,
결국,
“꺼져, 이 양아치야.”
라며 소리까지 지르고 말았다.
제기랄.
오늘 무슨 날인가?
좀 걷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이미 가고 없다.
미안해.
안 그럴게.
같이 가자.
할 여자가 아니지.
그 뒤로 토드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여자도, 모임도.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다.
지루한 이 기분.
그리고 케서린을 사랑했을 것 같은 그 참담한 기분.
고작 그런 여자에게 사랑이라고 느꼈다니.
그래서 드는 배신감.
소중한 내 것을 잃은 기분.
제기랄.
정말 사랑했나 봐.
케서린은 토드와 그렇게 끝낼 마음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나던 남자 중,
그는 최고니까.
하지만,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했다.
더 많이 만나고 싶어 할까?
아니면 이러다 말까?
그의 주변을 늘 둘러싸는 여자들과의 신경전도
신경이 쓰이다 못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를 위해 반짝 이는 보석들은 너무 많으니까.
그녀가 언제까지 그에게 빛나 보일까.
케서린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싫었다.
이런 생각은 주로 남자 쪽이 하지 않았던가.
그녀를 잃을까.
놓칠까.
안절부절 못하면서 매달리는 것.
그런데 지금 그 걸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네가 아니어도, 나를 기쁘게 할 이들은 많아.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매달려
하는 마음이었다.
화가 나 있는 그에게,
그런 게 아니야.
미안해.
안 그럴게.
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그가 그녀를 받아 줄까?
받아주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고,
그녀의 가치가 빛을 잃을 것 같아,
쿨 하게,
너도 그러지 않아?
나라고 못할 게 있니?
라고 대응했다.
토드의 입에서,
난, 너만 만나.
널 만난 후에는 너만 만났어.
라는 말을 아주 조금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지.
그녀도 뒤돌아 가는 그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
뒤돌아 섰다.
그렇게 둘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
토드는 다시 파티에 참석했고,
슬쩍 케서린도 있나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뒤로 다른 파티에도 참석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제기랄.
왜 자꾸 그녀를 찾는 거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국에 갔다고 한다.
그 남자와
블랙
블랙 슈트
블랙의 짧은 머리
훤칠한 키에, 적당히 마른 몸매.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그 남자와
그가 사는 영국으로 같이 갔단다.
그렇게 짧은 순간 만나고,
그 사이 사랑이라도 빠졌나?
영국까지 따라 가게.
토드는, 그녀를 잊기로 한다.
사랑했던 것은 아니야
라고 다짐도 한다.
그녀가 나빴어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야 사랑한 게 아닌 게 되니까.
그래, 너나 나나, 각자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지.
락고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Hey. Hyunjung. Are you leaving?”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려는데 라이언에게 걸렸다.
제일 걸리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걸리다니.
“Yeah. I have a headache.”
라이언은 현정이 뭐라고 말하든 말든 이미 그녀의 변명 거리는 다 안다는 듯,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Do you know, who I am talking to?”
라이언의 얼굴이 들떠 보인다.
“Hey. Todd. She is my coworker, Hunjung. Hunjung, he is Todd.”
“Hi. I am Todd. Nice meet you.”
“Hi. Todd. Nice meet you too.”
둘이 영어 교재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어색하게 인사하고, 악수를 한다.
서
로들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고,
얼굴도 회사 파티에서 여러 번 마주쳤으니,
인사와 대화만 안 했을 뿐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라이언. 그는 신나게 떠들고.
토드. 그는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현정. 그녀는 이곳을 나갈 적당한 기회를 찾고.
라이언. 웃어주며 듣는 토드에게 신이 나서 더 떠들고.
토드. 현정이 의식되고.
현정. 그래 이 타임이야.
“Todd. I am glad to see you today. Ryan, I have to go, enjoy a party. See you next week.”
그녀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그들이 안녕이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리를 뜬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토드가 나온다.
이런 ‘cliché’ 같으니라고.
꼭 엘리베이터는 일층 아니면,
꼭 대기층에 있어서 기다리게 하고,
그러다 누군가가 같이 나와,
말을 걸고.
역시 진부하다.
현정 옆에 선 그가 말한다.
“I just left. I’m tired today.”
누가 물어봤나
현정은 대답 대신 사무적인 미소를 가볍게 짓고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바라본다.
“I know you and I’ve seen you here several times."
그가 또 말을 건넨다.
“Yeah. I know you are an investor in this company, but you are not an investor in my department.”
현정의 말에 토드가 소리를 내어 웃으며 말한다.
“So, you are not interested in me? I’m not an investor in your department, so you have no purpose or reason to talk with me?”
“Not really. But it is not working hour and there is no business content.”
“Do you live near here? I can escort you.”
“Thank you but I am ok.”
현정은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토드가 잠시 서 있자,
현정은 그가 엘리베이터를 탈 마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한 손은 안녕으로 손을 흔들고,
한 손은 닫힘 버튼을 누른다.
토드는 잠시, 그녀와의 짧은 대화에서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든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그녀의 일관된 업무적이고 사무적인 태도.
망설임 없는 거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만들어 버린 ‘boundary.’
에서,
깊은 감명까지 든다.
토드는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 가,
라이언에게 간다.
그 와 좀 더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다.
라이언을 매수? 한 토드는,
자연스럽게 현정을 만난다.
단 둘이는 아니지만, 여러 명 사이에서,
그래도,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What's all this about?”
토드가 커피와 도넛을 가득 사들고, 현정의 사무실을 왔다.
“You said, I did not invest in your department. So I invested in coffee and donuts for your department.”
무슨 연예인 커피차도 아니고.
직원들이 고맙다며,
토드에게 인사를 하며,
바쁘게 자리를 오가며 커피와 도넛을 먹는다.
오후 2시
커피와 도넛은 못 참지.
“Let’s have some lunch. Or we could have a late lunch?”
“I am busy.”
“Well. How about early dinner?”
“I am also busy”
그때,
라이언이 와서는
좋아
라고 말한다.
네가 왜? 여기서?
좋아.
라고 말하지?
“We all decided to go eat ‘Galbi’ together.”
현정은 라이언의 말에 의아해 묻는다.
“All together?”
“Yes. Ma’am. You. Me. Todd and our team.”
“Our team? together?”
토드가 대답한다.
“Instead of investing in departments, I’m going to invest in meals.”
토드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은 현정은,
라이언을 보며 재차 묻는다.
그러니까,
지금 이거 회식인거지?
우리 팀이 언제 부터 같이 식사를 했지?
그런거 다들 너무 싫어 하지 않나?
현정의 질문에
라이언은, 그저
"Why not?"
이라고만 대답한다.
그래 좋아.
그렇다 치고,
그런데,
“Why ‘Galbi’ ”
현정의 질문에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묻는다.
“Why not ‘Galbi’?”
“It’s a stereotypes to think that all Koreans like ‘Galbi.”
“It is a stereotypes to think that when Americans go out to eat ‘Galbi’ with Koreans,
they go there for the Koreans.”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토드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라이언을 매수? 한건 최고의 투자 기술이었다고 생각하며.
“How many people are in the team? Should I make a reservation?”
토드가 말하자,
라이언은,
오예 갈비 신나
라고 말하고,
이미 예약도 했다고 말한다.
둘이 언제부터 친했어라고 현정이 묻자,
둘은 말을 맞춘 듯,
“Why not?”
“We are very friendly.”
“We are so sociable.”
이라고 말한다.
둘 다 그런 성향인 건 알겠는데,
왜 친 해졌냐고?
친해질 만한 이유가 있어?
둘은 그저 웃을 뿐,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