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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Nov 30. 2022

윤동주(尹東柱) 당신에게...

오랜 첫사랑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윤동주(東柱) 당신에게

                           

당신을 처음 알게 됐을 때가 언제이던가?

그 길고 긴 세월의 터널을 거슬러 오르면 당신과의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제 기억 속엔 우리 집에 함께 살았던 스물여덟에 이른 별이 되어버린 제가 잘 따랐던 둘째 외삼촌 정도의 나이를 먹은 당신이 빛나는 청년의 모습으로 교복을 입고 거기 책 속에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정작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詩를 처음 읽었어요. <序詩>였지요...

열두 살 어린 제게는 잘 알 수 없는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참 좋았답니다.

'죽는 날까지'라는 말속에 결기가 느껴졌고, '하늘을 우러러'란 말속에 하나님을 믿는 제겐 그것도 공감이 됐어요.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도 생겼지요.

그때부터 이미 저는 호기심천국이었나 봐요..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땐 탐정소설을 좋아해서 '셜록 홈스'같은 탐정이 되겠단 생각도 했었지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추리와 상상의 날개를 달고 시인이 되었나 봅니다.


2022년 9월 17일 발행글 스크린샷


'잎새에 이는 바람'이 중학교를 갔을 때 즈음 우리 민족을 향해 행해진 일제의 만행이었단 걸 알게 됐지요.. 허나 그 전이나 지금도 전 바람을 무척 좋아해서 그렇게 국어시간 배우는 것이 의무적인 암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바람으로 당신이 '나는 괴로워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 바람은 부정적 의미가 맞았을 테지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열두 살 제게도 별은 아름다웠으니까요.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 사랑'한 당신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했을 때의 마음을 이제는 어른이 돼서 당신이 <序詩>를 쓰신 1941년 당시 당신 나이의 두 배가 되어서 감히 생각해 봅니다. 아프고, 서럽고, 추웠을 당신의 그 마음을...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을 맺는 당신의 詩처럼 정말 오늘 이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우고 있을 테지요.


한 번도 자신의 별을 갖지 못했던 당신,

1917년 12월 30일 겨우 이틀 만에 한 살을 먹고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조국의 광복을 꼭 6개월 남긴 채 차가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당신이 너무 안쓰러워서 울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며 함께 웃어보기를, 함께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눠보고, 함께 단풍이 든 오솔길을 걸어보기를 상상했던 그 소녀가 이제는 반백의 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제 인생의 잔고가 얼마나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언젠가 저도 당신이 계신 그곳에서 함께 웃어볼 날을 소망하며 여전히 당신의 詩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로 시인 李恩熙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尹東柱!

저의 인생에 오랜 이정표가 되어주셔서, 그리고 아직도 가슴 떨리게 해 주셔서...


2022년 11월 29일 화요일 밤 11시 27분이 지나갈 때...

恩熙 올림.


지난 2022년 5월 5일 결혼기념일에...




추신.


(매거진) 이은희 시집 『아이러니 너』 中


(매거진) 은희가 사랑하는 오늘의 시 한 편 中


종로구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


추신 2.


https://brunch.co.kr/brunchbook/shuvy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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