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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Dec 12. 2023

설마 너가 배신?

3일장을 치른 이후 재현은 허탈감에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레아를 정신없게 마주한 이후로 못 만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지이잉


“오빠. 괜찮아?”

“레아야… 미안. 드레스는 봤어?”

“응 예쁜 걸로 결정했어. 오빠 오늘도 좀 쉬어야겠지?”

“…. 어. 미안 내일 보자.”

“응.”


그렇게 전화를 끊고 레아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몸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무엇보다 레아가 너무 보고 싶어 재현은 무작정 레아 회사 앞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수척해진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았다. 아버지와 예상하지 못한 이별은 그에게 큰 허탈감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가 했던 모진 말들 보다는 어릴 때 목마를 태워줬던 일,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던 일 같은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다.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서러웠다. 그는 다시 몰려오는 설움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레아를 생각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지. 그렇게 생각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레아와 대화하면 조금 생기 있어질 것 같은 기대가 샘솟았다. 


그녀의 회사 근처 지하철 역에서 내려 그녀를 마중 나가려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차 한 대가 회사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파란색 스포츠카의 익숙한 번호판. 너무 많이 봐서 외워버린 1987번. 바로 진성이의 차였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서 진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높이 흔들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진….!”


아니 그의 이름을 외치기도 전에 그는 건물 뒤로 바로 몸을 숨겨야 했다. 마침 나온 레아가 익숙한 듯 진성을 반기더니 진성의 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그는 머리만 빼꼼 꺼내놓고 진성의 차가 유유히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얼른 휴대폰을 들고 레아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어, 오빠.”

“레아야.”

“응.”

“뭐 해?”

“나 오늘 야간이야. 일이 많이 밀렸네.”

“야간? 회사에 있어?”

“응.”

“늦게까지 있겠네?”

“응. 아마 한 9시까지?”

“저녁은?”

“여기서 대충 김밥이나 먹고 때워야지.”

“….. 응.”


진성은 그 자리에 서서 한 여름 무더위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유가 도대체 가늠이 안 됐다. 진성이랑 어딜 가는 걸까. 그는 머릿속이 까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현은 진성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진성이 레아를 차에 태우는 것을 생각하자 뒤통수에 피가 몰리는 기분을 느꼈다. 주먹을 불끈 쥐어 어디라도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최대한 침착하게 그들의 모습을 차근차근 생각해 봤다. 진성이를 반기는 그녀의 표정, 밝고 아름다웠다. 진성이 레아를 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 남자친구 같았다. 


그녀가 진성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타던 모습. 설레는 그들의 표정.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는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그녀가 드레스 일정을 미룰 때에도 야근을 한다고 했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곳은 외국계 회사라 야근이 별로 없는 곳인데 말이다.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설마….’ 하고 다시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침착하게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설마 나 빼고 서프라이즈라도 준비하는 것일까.’ ‘뭐 워낙… 친구들이니까 둘이 약속이 있을 수도 있지. 마침 나도 집에만 있겠다고 했고. 그런데 주하는? 데리러 가는 중인가?’  그것이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도달했다. ‘진성이 그 자식, 주하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주하가 시큰둥하니까 레아로 레이다를 돌린 거야? 그동안 레아랑 집에 같이 가더니 연분이라도 난 거야 뭐야!’ 그는 도무지 몰랐다. 그가 과한 의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찰나.


띠리리리링


휴대폰이 울렸다. 주하에게 전화 온 것이다. 


“어, 주하야.”

“오빠 괜찮아요?”


그녀의 첫마디는 ‘오빠 뭐 해.’ 정도가 아닌 사건 사고가 났을 때 물어보는 ‘괜찮아요?’였다. ‘뭐가 괜찮은 거지? 둘의 행각이 혹시 너에게 발칵 되었니? 너는 참 의리가 있구나! 빨리 나에게 진실을 말해 보렴! 둘이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그는 미간의 주름을 만들며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서 신중히 골라내고 있었다. 


“… 뭐… 왜? 뭐가?”

“오빠 컨디션이요. 아버지 그렇게 되시고 얼굴을 통 못 봤잖아요.”

“아… 어. 어.”


왠지 모를 허탈감과 안도의 숨이 가냘프게 새어 나왔다.  분노가 쌓이고 있던 와중에 분출해 내지 못한 아쉬움과 배신의 비극이 일단 아니라는 기쁨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었다. 김치와 생크림이 섞인 듯 구역질 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제야 얼굴의 근육을 조금 풀었다. 주하의 전화는 단순히 안부 전화였다. 


“그런데 주하야.”

“네.”

“너 진성이랑 오늘 안 만나?”

“네. 제가 오늘 부모님과 약속이 있어서. 우리가 뭐 맨날 만나는 사이는 아니에요. 오빠 하하.”

“아… 어 그래.”


‘진성이랑 제발 많이 만나 주하야.’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아직 의심에서 벗어난 상태는 아니었다.  아직 건질 수 있는 건 없었다. 따뜻한 주하의 위로의 전화가 끝나고 재현은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진성에게 전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말 그녀와 데이트라도 한다면 그는 그가 어떤 괴물로 변신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휴대폰만 쥐어짜듯 만질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뚜벅이 신세라는 것이 신경질날뿐이었다. 차만 있었더라면 바로 뒤따랐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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