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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Jan 24. 2024

프롤로그

드디어 내가 태어난 지 8일 13시 6분.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포와 한 그리고 루, 초가 내 주위를 둘러앉아 짧지만 백 년의 시간 같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는 그 노래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몸을 배배 꼬았다. 물론 싫지는 않았다. 


“탄,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아버지가 꽁꽁 싸맨 선물을 들고 뒤에서 나타나셨다. 나는 설마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아까부터 난 달콤 시큼한 냄새 때문에 사실 조금 흥분 상태다. 꽁꽁 싸맨 선물이 내가 예상하는 그것이 맞다면 말이다.  오직 그것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될 만큼 나의 인생은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태어난 지 8일 13시 6분이 되도록 나는 레몬을 맛본 적도 본 적도 없다. 레몬은 나의 전설이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가 들고 있는 선물은 분명 레몬. 그것이 내게로 다가올수록 가슴은 감격으로 부풀었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이를 악 물었다.  두 눈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은 결국 주르륵 떨어졌다. 옆에 서 있는 포와 한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재빠르게 앞 발로 눈물을 감춰내고 머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이런 제길. 모양 빠져 보이진 않았겠지. 다행히 초가 두 눈을 적시며 나에게 약간 반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며 그녀에게 윙크했다. 왜 그랬지? 그리고 깊은 한 숨을 내 쉬고 시큼한 냄새를 한껏 들이켰다. 


아버지가 선물 꾸러미를 열려고 하자 포와 한이 호들갑을 떨며 지금 심정이 어떠냐는 고리타분한 질문을 했다. 


“어… 그러니까. 너무 행복해.” 


겨우 생각해 낼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뿐. 나의 감격에 비해 단어들은 너무 하찮았다. 

“꺄아아아!!”


친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빨리 열어 보고 싶어 손바닥을 비벼댔다. 그런 나의 초조함이 재밌었는지 그들은 일부러 시간을 더 끌었다. 나는 다리를 동동 구르기 시작했고 슬슬 흥분과 짜증이 동시에 올라왔다. 내 앞 발은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들고 있는 선물로 뻗어 나갔지만 아버지의 선물을 든 앞발은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러다 그것은 포의 손으로 그리고 한의 손, 초의 손으로 재빠르게 옮겨졌다. 나는 선물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열심히 그러니까 조금 바보처럼 따라다니다가 초 앞에 섰다. 


예쁜 초. 

머쓱해진 나는 두근 거리는 가슴을 멈추기 위해 가슴에 발을 올렸다. 초는 등 뒤에 숨긴 선물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여기. 선물. 생일 축하해 탄.”

“고… 고마워.”


생각과 다르게 두 발은 엄청 떨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책맞은 떨림과 함께 선물은 발에서 튕겨나갔다. 이런!


그것은 책장 아래 저 멀리 바닥으로 한참을 내려가더니 툭하고 떨어져 버렸다. 선물 꾸러미 밖으로 레몬 알갱이가 터져 나왔고 그것은 선명한 보라색이었다.


“레!!!!!!”


나는 알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안돼!!”


비명 끝에 난 내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다가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난 것. 정신이 든 이후에도 나의 발은 여전히 의미 없이 몇 번 더 허우적거리다가 땅으로 축 떨구어냈다. 


레몬.


그것은 나의 전설의 음식이다.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어르신들이 해주신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는  꼭 레몬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목적이자 결론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레몬은 늘 상으로 등장했다. 비행 챔피언에게 주어진 상은 레몬, 인간에게 살아남은 자에게도 레몬, 무리를 구한 구원자에게도 레몬의 선물이 주어졌다. 


“레몬을 먹을 수 있을까?”


어느 날 힘들게 선충을 사냥한 후 그것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포와 한에게 난 넌지시 물었다. 그들은 오래간만에 특식이라며 매우 행복해했다.


“빨리 이거나 먹어.” 


한이 선충을 입에 가득 물고 말했는데 그사이에 선충 한 마리가 살겠다고 입속에서 발버둥 치다 튀어나올 뻔했다. 그 모습을 보고 비위가 상하자 재빨리 포에게 시선을 옮겼는데 그는 질긴 선충을 열심히 끊어내느라 악랄하게 물어뜯고 있었다. 우웩. 그 또한 진저리가 났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열심히 찾은 ‘특식’을 사냥하고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내가 찾고 있던 맛은 그런 맛이 아니었다.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뱃속은 배고픔으로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특별한 것을 찾고 싶었다.  


“레몬은 무슨 레몬이야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먹어. 나중에 후회한다!” 


한이 다시 나를 거들었다.  


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하게 정돈된 서재의 모습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난 그런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뿐이었다. 무리들은 열심히 비행을 하며 사냥을 하고 날개를 흔들어 춤을 추면서 짝을 찾는 일의 반복으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은 나를 무기력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레몬을 찾아야만 했다. 


레몬을 찾는 것에 대한 반복된 실패로 어쩌면 레몬에 대한 의미부여를 너무 크게 둔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감도 몰려왔지만 동시에 맛에 대한 호기심도 점점 커져갔다. 


레몬에 대한 소망은 그들 사이에선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레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췄다. 그런 철없는 생각은 그만하라며 모두들 다그쳤기 때문 에이다. 그렇다고 주눅 들진 않았다. 오히려 나만의 비밀처럼 소중이 간직했다.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날파리는… 한 마리도 없었다. 


“나도 레몬 먹고 싶어!”


아, 한 마리 있구나. 이제 막 애벌레가 된 막내 동생.  


“야, 너 생각보다 순진하네! 벌써 8일이나 산 주제에 아직도 레몬타령이나 하고 있냐. 쯧. 너만 괴롭지. 주위를 둘러보라고. 네 눈으로. 그렇게 절망해 놓고 너도 참 한심하다.”


누군가 그렇게 비웃었을 때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지만 나는 날개만 부르르 떨 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레몬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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